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신분석학
    2025-05-19
    검색기록 지우기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8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안티 오이디푸스(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민음사 펴냄) 철학자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과타리의 유명한 정치철학서를 꼼꼼히 번역했다. 1968년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학생·근로자를 주축으로 프랑스에서 촉발된 사회변혁운동인 ‘68운동’ 이후 상황을 반성적으로 사유한 책. 프로이트 중심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에 문제의식을 가진 과타리가 주류 철학계와 동떨어진 주장을 펴던 들뢰즈와 68혁명을 계기로 만나 세상에 낸 첫 작품이다. 두 사람이 68혁명 이후 10여년간 매달렸던 문제 ‘자본주의와 분열증’ 천착의 시초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키워드는 욕망. 프로이트가 정의한 ‘무의식’‘욕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니체의 주장에 동조해 기계(machine), 부분대상(objet partiel) 개념을 새로 정의해 분열-분석으로 나아갔다. 68혁명이 그랬듯이 강렬하게 욕망을 분출했던 사람들이 쉽게 보수화할 수 있는 이유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704쪽. 3만 3000원.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정광 지음, 김영사 펴냄) ‘조선시대에 지금 못지않은 양질의 체계적인 외국어교육이 있었다?’ 고려시대 통문관에서 시작돼 조선시대 갑오개혁까지 지속된 국립 외국어교육기관 사역원의 실상을 파헤쳤다. 저자는 중국어교육 교재 ‘노걸대’와 원나라에서 몽골인이 만든 한자발음 사전 ‘몽고자운’를 처음 소개해 센세이션을 불렀던 언어학자. 30년에 걸친 연구결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책은 사역원을 통한 외국어교육이 제도와 운영방식, 내용에서 지금에 뒤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기교육과 집중 반복, 생생한 회화교육, 변화된 언어의 보완, 전국적 교육이 그것이다. 5살 때 지금의 일본어과인 왜학 생도로 들어갔다는 인물은 대표 사례. 외국에 보내는 사절에 언어교재를 수정하는 인원이 꼭 수행했고 외국과 접촉이 있는 지방에 교사를 파견, 현지에서 생도를 모집하고 교육을 수행했던 사례도 소개된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우리 민족사의 특징적 현상으로 본다. 536쪽. 1만 8800원.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류동민 지음, 코난북스 펴냄) 서울의 작동원리를 들어 ‘한국 현주소와 미래’를 짚은 책. 난해한 경제용어 대신 축적된 문제들, 그리고 지금 부대끼는 현실을 체험에 바탕한 경제학자 입장에서 부각시켰다. 케인스의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며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피케티 비율’, 영국 ‘인클로저’ 등 경제학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고, 들어맞지 않는지가 쉽게 풀어진다. 이를테면 케인스의 ‘금리생활자의 안락사’ 개념에선 렌트(지대)가 모든 가격설정의 상수 역할을 하는 현실이 대비된다. 아파트 값과 피케티의 불평등 지표인 ‘부/소득 비율’을 연계하고 지주들이 농민을 쫓아낸 인클로저 운동에서 ‘용산참사’의 그늘을 끌어올리는 식이다. 그렇게 집약한 서울 모습은 ‘알아서 살아남기’가 만연한 공간이다. 개인 능력주의 신화가 한계에 온 우리 사회는 어찌 될 것인가. 저자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도 최소한의 도시권과 공공적 권리를 보장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285쪽. 1만 4000원 생물철학(최종덕 지음, 생각의힘 펴냄) ‘생명의 역사를 관통하는 변화의 철학’이란 부제 그대로 현대 생물학의 핵심 주제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생물종의 분류, 유기체 고유의 방법론, 진화론적 변화의 존재론, 진화론의 인과율…. 생물학의 탐구대상을 단순한 무기물질의 영역이 아닌, 운동하는 주체로 넓힌 게 책의 특징. 진리를 정지된 스틸 컷의 집합에서 풀어내는 과학의 방법론과는 다른 차원으로 생물을 바라보고 있다. ‘생물학에서 진화를 말하지 않고는 그 어느 것도 의미가 없다’는 도브잔스키의 지론에 가까운 책. 생물학적 자아개념부터 인간 도덕심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와 생물학 지식의 사회적 영향력 등 생물학과 철학의 만남이 흥미롭게 풀어진다. ‘자연주의 인간학’이라는 저자 표현대로 인간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끄는 게 특장이라면 특장. 자연선택의 결과 생물종 모두가 존재론적으로 동등해졌다는 입장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 점이 도드라진다. 554쪽. 2만 5000원
  • 6. 방년 20세의 슬픈 겨울…늘어나는 여성 자살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 방년 20세의 슬픈 겨울…늘어나는 여성 자살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한국 자살률 OECD 최고 수준…지난해 하루 평균 40명 스스로 목숨 끊어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201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만 4427명으로 1년 전보다 267명(1.9%) 늘었다. 하루 평균 39.5명이 자살로 생을 마ㅁ감한 것. (중략)연령별로 보면 1년 전보다 30대(3.8%), 40대(6.1%), 50대(7.9%)의 자살률이 증가했다. 자살은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로 꼽혔다.지난 9월 23일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46년 전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기사를 소개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당시에도 한국은 최고의 자살률 국가였습니다. 물론 세계 최빈국에 가까웠던 당시와 지금의 자살 원인은 상당히 다르지만 말입니다. 당시에는 특히 여성 자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컸던 모양입니다. 내용을 한번 보시지요. ▒▒▒▒▒▒▒▒▒▒▒▒▒▒▒▒▒▒▒▒▒▒▒▒▒▒▒▒▒▒ “잠깐 참으셔요” 방년 20세의 겨울…늘어나는 여성자살 전체 사인(死因)의 제2위-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6일자, 1971년 5월 16일자, 1972년 4월 2일자 종합 딱한 여심(女心)몇 가지 사례1: 한낮에 서울 마포의 한 여관에서 이모(20·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 지역 산골 출신인 이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놀다가 4년 전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식모살이, 병원 종업원, 다방 종업원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지만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그녀의 인생은 고달프기만 했다. 이씨는 넉달 전 다방일을 하면서 알게 된 전기회사 직공(23)과 사흘을 한방에서 지내다가 마지막 날 생을 마감하는 극약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경찰은 “오늘도 지겨운 하루가 지났다”,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들고” 등 이씨의 수첩 메모로 미루어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냈다.(1972년 3월) 사례2: 경기 화성군 반월면의 박모(23·여)씨는 신혼 첫날밤을 치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는 김모(26)씨와 결혼, 첫날밤을 보냈느데 일을 마친 뒤 신랑 김씨가 대뜸 “처녀가 아니다”라면서 이혼을 요구하자 “숫처녀임을 입증하겠다”며 극약을 먹고 자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1971년 5월) 사례3: 최모(32·여)씨는 어머니날(현 어버이날)에 세 딸과 함께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결국 자신과 두 딸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0월 남편과 사별한 최씨는 “남은 두 아들을 공부시켜 달라”는 요로에 보내는 유서를 남겼다.(1968년 5월) 사례4: 김모(27·여)씨는 이룰 수 없는 결혼을 비관, 애인 집의 연탄난로에 머리를 묻고 자살했다. 김씨는 애인과 깊은 관계를 맺어 임신까지 했으나 사회적인 흠(전과자)이 있는 남자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는 집안의 반대에 좌절, 자살을 선택했다. “엄마의 훌륭한 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그분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 그의 유서다.(1968년 6월) 사례5: 이모(21·여)씨는 조흥은행 본점 12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이씨는 모 공대건축과 2년생. 2년 동안 서울대, 연세대를 계속 낙방한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968년 6월) 사례6: 홍모(35)씨는 11세 어린 연하 애인(24)과 인천의 한 여관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손아래 남자와의 사랑이 빚은 비극적인 정사(情死)였다. (1968년 1월) ▒▒▒▒▒▒▒▒▒▒▒▒▒▒▒▒▒▒▒▒▒▒▒▒▒▒▒▒▒▒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 지라”(마태복음 27장 5절) 유다 이후 많은 인간 가족이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로 자살을 했다. 클레오파트라나 오필리아, 마릴린 먼로는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심(女心)의 선각자이지만 현대인에 있어, 특히 여자의 경우 자살은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까지 언제부터인가 심상에 뿌리박혀 버리고 말았다. 세계에서 자살률(인구 10만명당)이 제일 높은 나라는 덴마크로 29명에 이른다.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각 2명 꼴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25명 정도로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덴마크 등과는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판이하게 다른다. 우리나라의 자살이 ‘가난형’인데 반해 덴마크 같은 쪽은 ‘부자형’으로 통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너무나 스트레스가 없어도 파멸적인 고적감을 느끼게 된다는데 덴마크같은 선진국의 자살이 이런 케이스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살 기도자는 여성 쪽에 많은데, 남자와의 비율이 1대 1.3 정도다. 그러나 여자에겐 자살 미수가 많아 실제로 사망하는 숫자는 남녀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최근 자살 추세를 보면 10대와 젊은 여성층에서 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한국적인 경향이라고 한다.   인간해약(解約) - 20세가 절정 1967년 한 해 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 시내에서의 여성의 자살은 전체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결핵, 3위는 암이다. 우석의대 산부인과 교실에서 최근 조사한 사인별 사망통계에 의하면 총 대상 1900명 중 결핵으로 인한 사망은 309명이며 2위인 자살은 288명, 3위인 암은 209명이었다. 그 다음이 뇌일혈(뇌졸중) 167명, 모성 사망(임신·분만 관련 사망) 128명, 고혈압 110명 순이다. 자살자 중 36%인 105명은 겨울에 사망했으며 여름 80명, 가을 53명, 봄 50명 등이었다.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여성군(群)은 어느 연령층일까? 우석의대의 조사에 의하면 288명의 자살여성 중 33%인 95명은 20세에서 24세까지의 방년. 다음이 15세에서 19세까지의 10대 여성이며(47명), 25~29세는 46명, 30~34세는 36명, 35~39세는 21명, 40~44세는 18명, 그리고 45~50세는 21명으로 되어있다. 결국 많은 수의 24세 이하 꽃다운 처녀들이 겨울을 택해 스스로 인간해약(人間解約)을 하고 있다고 우석대 조사팀은 말하고 있다. 여자들은 왜 자살에 매료되는가? 장병임 교수(서울문리대)는 가능한 자살예방 수단으로 초자아(超自我)를 역설한다. “정신분석학상의 초자아는 교육이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은 90%가 애정 문제에 원인이 있는데 이것은 가정교육이라는 하나의 절대수단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요즘 부모들은 딸에게 이성교제(정신적인)는 허용하면서 막상 정조관에 있어서는 애매하고 엄격한 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젊은 여성들의의식의 파탄은 부모에게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자살예비역 하루 20명꼴…‘살 수 없어’ 아닌 ‘싫어서’ 성모병원 안에 있는 음독자살예방센터에는 해마다 약 900명의 음독자가 들어온다. 1967년 한 해 동안 이곳 신세를 진 자살 기도자만 해도 남자 355명에 여자 488명 등 도합 843명. 그런가 하면 서울, 연세, 우석, 적십자 등 비교적 큰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실려오는 자살예비역만 해도 하루 20여명을 헤아린다. 지난 1963~67년 5년 동안 성모병원의 자살예방센터에서 치료받은 음독자는 모두 4548명에 이르고 있다. 남자 1975명, 여자 2573명으로 여성 우세는 여기서도 예외가 없다. 전체 자살기도자의 57%인 2591명이 20대, 17.5%인 792명이 10대다. 16.3%는 30대, 9.23%는 40대다. 여성자살자에게는 자살원인, 자살방법, 연령분포 등 자살 주변에 얽힌 심리적 델리커시가 현란하리만큼 많다. 한마디로 ‘살 수 없어 죽는다’보다는 ‘살기 싫어서 죽는다’가 그녀들의 죽음의 변(辯)인 셈이다. 20대 여성의 경우 자살 원인의 46%가 애정 갈등으로 되어 있으나 간접적이고 충동적인 것까지 합하면 거의 90%가 애정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도니제티의 멜로디 같은 ‘사랑의 묘약’이 그녀들의 목마른 상심엔 필요하다는 얘기다. 좀 묵은 통계지만 이 땅 춘향의 후예들에게는 거의 자연스럽다고 할 정도로 자살에의 향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수년 전 가톨릭의대에서 3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고생의 49%, 여대생의 62%가 “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의지 박약에서 오는 생활의 도피”라는 뒤르켕의 자살론은 이젠 아무래도 너무 낡은 관념론인 것 같다.  ”한국은 자살자의 천국” 장병임 교수는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의 자살을 최대한 막는 효과적인 처방으로 “올바른 성교육의 실시”를 주창한다. 이성교제 자체를 터부시 하든지, 그렇지 않을 바에야 최소한 정조관에 대한 개념의 정립 만큼은 딸들에게 세워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한국가이던스센터에 찾아오는 여성 중 자살에의 의지를 호소하는 층은 하이틴과 25세 이전의 미혼여성들. 카운셀링의 내용도 이상적인 상대를 얻기 위한 것보다는 이미 저질러진 사건들, 이를테면 처녀성의 상실이라든지 혼전임신 같은 건강치 못한 “어찌 하오리까”뿐이라고 장 교수는 개탄한다. 음독자살예방센터 김종은 교수는 이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자살예방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 자살자의 반이 약물에 의한 자살을 기도하고 있으며, 약물의 58%가 정신신경안정제인 만큼 이들 약품의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자살약으로 이용되는 정신신경안정제를 거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 태국 정도 뿐이라고 한다. 외국의 경우 한 번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으레 정신과에 입원시키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35%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음독자살예방센터의 집계에 의하면 자살 재기도자는 전체의 10%이며 “또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만도 전체 자살기도자의 43%나 되는 딱한 실정이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사건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명화는 알고 있다, 당신의 무의식

    명화는 알고 있다, 당신의 무의식

    통찰의 시대/에릭 캔델 지음/이한음 옮김/알에이치코리아/772쪽/3만원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동, 정서, 감정이입, 의식의 본질을 부분적으로나마 규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0년전이다. 인지심리학이 생물학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정서적 신경미학의 토대가 마련되면서부터다. 뇌과학과 미술 사이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연구해 온 노력 덕분에 우리는 미술작품을 볼 때 관람자의 뇌에서 어떤 과정이 진행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간 ‘통찰의 시대’는 세계적인 뇌과학자 에릭 캔델(86)이 뇌과학과 예술사, 심리학, 정신분석, 인문학 등의 통섭적 접근을 통해 예술에 빠져드는 인간의 무의식을 깊이 있게 파헤친 책이다. 과학과 예술이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캔델은 과학과 예술이 교류를 시작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빈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당시 빈은 모더니즘의 출현을 이끌었던 유럽의 문화적 수도였다. 지적인 우수성과 문화적 성취를 강조하는 분위기에 매료된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여들었고 건축, 디자인, 미술, 음악 등에서 새로운 표현형식을 탐구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이런 지적·문화적 환경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거리는 더욱 좁아졌으며 과학과 예술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큰 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 캔델은 이 시기의 빈, 이른바 ‘빈 1900’의 대표적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어 코코슈카, 에곤 실레의 그림을 중심으로 당대의 과학적 사유와 지적인 환경이 세 화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특히 이들이 남긴 모더니즘 초상화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무의식을 파헤치기 시작했는지를 살핀다. 그는 “빈 모더니스트들의 초상화와 모델의 내면 감정을 묘사하려는 그들의 의식적이면서 인상적인 시도는 심리학적·생물학적 통찰이 우리가 예술과 맺는 관계를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사례”라며 “의학자와 생물학자뿐 아니라 정신분석학자와도 이루어진 상호작용은 세 화가의 초상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빈의 모더니즘이 지닌 특징 중 하나로 지식을 통합하고 일관화하려는 노력을 꼽으면서 빈 의대가 지식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그곳에서 의사교육을 받았고, 클림트의 미술과 과학에 관한 사유에 영향을 미쳤다. 세기의 전환기에 빈에서 화가, 저술가, 의사, 과학자, 평론가, 언론인 모두가 끈끈하게 얽힌 인맥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도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이 가능했던 중요한 요인이다. 빈의 지식인들은 카페와 살롱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자신의 생각과 지식, 가치를 나눴다. 저술가이자 예술평론가인 베르타 주커칸들이 정기적으로 주최한 살롱은 빈에서 저술가, 화가, 과학자를 한데 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학적 개념과 예술적 개념의 자유로운 교환을 내세운 베르타의 살롱에서 클림트는 생물학자와 의학자, 정신의학자들을 만났다. 빈 의대 해부학 교수였던 베르타의 남편 에밀 주커칸들은 클림트에게 시신해부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체를 깊이 이해하도록 했고 발생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소개했다. 클림트가 미술과 생물학의 진리를 연결하는 길을 닦자 그의 후계자인 코코슈카와 실레는 기존관념에 대담하게 도전하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코코슈카는 인간의 정신 깊숙이 놓여 있는 무의식적 본능을 화폭에 포착했다. 실레는 남의 무의식적인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클림트의 그림이 관능미를 지닌 것과 달리 비판적이고 예리한 자기분석을 시도했던 코코슈카와 실레의 그림은 어딘지 불쾌하고 불안하다. 캔델은 “클림트와 코코슈카, 실레는 관람자에게 삶의 표면 아래 놓인 무의식적인 본능적 충동에 관한 새로운 진리를 가르쳤다”고 평가한다. 캔델은 빈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한 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매료돼 뉴욕대 의대에 입학했고 인간정신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뇌과학자가 됐으며 2000년엔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책 후반부에서 캔델은 첨단 뇌과학이 밝혀낸 시지각에 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다루면서 미술 작품 앞에 선 관람자에게 나타나는 감정적 기본요소와 감정이입, 창의성의 생물학적 매커니즘을 짚어본다. 서로 동떨어진 듯한 주제를 깊이 있고 명쾌하게 엮어낸 세계적 석학의 통찰력과 함께 평생 동안 그를 매료시킨 전환기 빈의 모더니즘에 대한 진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무의식·욕망… 김기덕 다시 읽는다

    주류 영화계에서 소외돼 온 김기덕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읽기가 시작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영화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한다: 정신분석학으로 풀어 읽는 영화’를 주제로 기획전을 연다. 김 감독의 작품은 물론 ‘안티크라이스트’(2009)와 ‘님포매니악 볼륨 1’(2013), ‘님포매니악 볼륨 2’(2013) 등을 연출하며 영화 외적인 논란의 중심에 섰던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더불어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캐나다 감독의 ‘M버터플라이’,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 등 19편의 영화가 31일까지 상영된다.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획전 개막일 영화 상영 직후 김소연 연세대 강사가 ‘서사와 도상’을 주제로 김 감독의 영화를 분석하는 강의를 한다. 이와 함께 주말마다 김 강사, 신형철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김서영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등이 ‘욕망과 사랑의 구조’, ‘귀가하는 여자들과 자유의 문제’, ‘마조히스트를 위한 윤리적 변명’ 등을 주제로 7차례 강의를 진행한다. 기획전의 핵심은 김 감독이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사마리아’와 같은 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빈집’, 2012년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를 비롯해 ‘파란대문’(1998), ‘섬’(2000), ‘나쁜 남자’(2001), ‘수취인불명’(2001), ‘해안선’(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활’(2005), ‘시간’(2006), ‘숨’(2007) 등 전체 19편 중 12편이 김 감독의 작품이다. 전통적인 영화 문법에 충실하지도 않은 데다 날것의 거친 느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김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주류 영화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깊이 있는 비평적 연구 대상에서 외면받는 등 국내 영화 평단과의 오랜 불화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풍경이다. 특히 그의 영화 속에 드러나는 예상을 뛰어넘는 폭력의 일방성과 충동적인 욕망의 표출은 보통의 관객들에게조차 불편함을 안겨주기 일쑤였다. 물론 이는 고스란히 기존 영화의 식상함을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법으로서의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지며 ‘김기덕 마니아’를 낳는 배경이 되기도 했고, 각종 국제영화제를 휩쓰는 동력이 됐다. 정민화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는 “그동안 제대로 된 비평적 연구도 부재했을 뿐 아니라 주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만 파편적으로 해석돼 온 김 감독의 작품을 정신분석학, 특히 자크 라캉의 무의식과 욕망이라는 관점을 통해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영화 상영 및 강연 일정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중종의 시대(계승범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16세기 전반 중종 대에 발생한 사림과 사화 등 여러 가지 변화 속에서 유교라는 소프트웨어가 정착되어 간 과정을 살핀다. 1392년 새 왕조 건국과 동시에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고려의 체제가 상당 부분 지속됐다. 저자는 조선이 조선다워진 시기는 16세기 전반부터라며 조선왕조의 상부구조에서 발생한 주목할 만한 변화의 실제와 의미를 살핀다. 특히 국내 정치무대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한 사림이 성리학적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고 현실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정풍운동을 집중 조명한다. 성종~중종 연간에 발생한 사림과 훈구의 정치충돌에 대해 저자는 이질적 사회계층 간 충돌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 쇄신 운동이었으며 이후 사대와 유교가 실질적 합체를 이뤄 조선다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강조한다. 336쪽. 1만 8500원. 사물과 마음(살만 악타르 지음, 강수정 옮김, 홍시 펴냄) 정신분석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시거니상 수상자이자 미국 제퍼슨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저자가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300여권의 책을 집필한 그가 펴낸 유일한 대중교양서. 우리의 생애주기를 따라 변해가는 사물의 의미와 사물이 지니는 정서적 가치를 깨우쳐 준다. 우리는 사물의 습득과 사용법을 배우고, 수집하고 쌓아 놓으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삶이 저무는 시기가 되면 최소한의 사물들에 의지해 남은 생을 살다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녔던 물건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살아남는다. 책은 저자가 “우리네의 삶을 든든하고 흥미롭고 즐겁게, 그리하여 의미로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크고 작은 모든 사물들에 보내는 찬사”다. 204쪽. 1만 2000원. 역사 앞에 선 미술(엘루아 루소·니콜라 마르탱 지음, 이희정 옮김, 솔빛길 펴냄) 절대왕정 체제에서 화가들의 주임무는 권력자의 치적을 그리고 부유층의 재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초·중반 고야, 제리코, 들라크루아 등 몇몇 화가들은 역사의 희생자들과 패배자들의 시각을 화폭에 담았다. 책은 프랑스혁명부터 스탈린의 몰락, 1·2차 세계대전, 9·11테러 등 근현대사의 결정적 사건 50가지를 마주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시대를 읽었으며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 준다. 1816년 7월 2일 모리타니 근해에서 난파한 군함 메두사호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고뇌와 절망을 그린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낭만주의를 알리고 역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등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94쪽. 2만원. 구중궁궐 여인들(시앙쓰 지음, 신종욱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아름답고 화려해 보이는 구중궁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전쟁의 주인공은 황후와 비빈들. 여기에 황제와 그의 여인들의 시중을 드는 환관들까지. 중국 최고의 황실역사 전문가인 저자는 구중궁궐 한복판에서 벌어진 인간 본연의 관능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처절하게 투쟁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이복동생 문강화 태자시절부터 정을 통한 제나라 양공, 궁녀의 수를 역사상 처음으로 1만명 넘게 늘리고 양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다 멈춰선 곳에서 침소를 정했다는 양 무제, 연적의 눈과 귀, 입, 사지를 자르고 고통 속에 죽게 만든 여 태후, 궁녀의 두 손을 잘라 찬합에 담아 황제에게 보낸 남송 광종의 황후 이봉낭 등 구중궁궐 잔혹사는 납량특집 못지않다. 480쪽. 1만 9800원.
  • 美 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 취득

    美 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 취득

    건국대병원은 유재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정신분석학회 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19일 밝혔다. 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은 정신분석가를 양성하는 교육자 자격증으로, 가장 권위 있는 만큼 취득하기가 어렵다.
  • 유재학 교수, 아시아 최초로 美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 획득

    유재학 교수, 아시아 최초로 美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 획득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재학 교수가 미국정신분석학회 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s psychoanalyst certificate)을 획득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자 미국을 제외한 제3국인으로도 세번째에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인증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자격증은 정신분석가를 양성하는 교육자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미국의 교육정신분석가는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그만큼 시험도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유재학 교수의 이번 자격증 획득은 아시아권에서 처음인 것은 물론 미국인을 제외한 제3국인 중에서도 캐나다인 2명만 인증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재학 교수는 “유럽의 쟁쟁한 정신분석가들도 이 자격증은 혀를 내두른다”면서 “우리나라 정신분석학의 위상을 높였다면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유재학 교수는 1995년 미국 클리블랜드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정신분석 훈련과정을 마친 뒤 2005년 국제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어 2007년에는 미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취득한데 이어 2011년에 국제정신분석학회 교육정신분석가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후학 양성을 위해 한국어로 된 정신분석 교과서를 집필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씨줄날줄] 방화광(狂)과 분노사회/서동철 논설위원

    “불을 확 싸질러 버리고 싶다”는 표현에서는 극도의 복수심이 읽힌다.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상대가 가진 것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상대가 가진 것이 활활 타오르다 폭삭 주저앉는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더욱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병적 심리가 현대 사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만 펼쳐도 수많은 방화(放火)의 사례가 등장한다. 인명 피해가 수반된 방화는 참형이나 교형에 처해진 사례가 적지 않았고, 특히 궁궐의 화재는 실화라 하더라도 극형이 논의되곤 했다. 중국 명나라 기본 법전으로 조선왕조가 준용한 ‘대명률’(大明律)에 그렇게 명시돼 있는 까닭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방화를 저지른 모습이 보인다. 단종 2년(1452)에는 의금부 문서고에 불이 난 사건에 현상(懸賞)하여 범인을 수배했고, 광해군 9년(1617)에는 공조의 담장 3곳에 불을 지른 자에 치죄를 청하기도 했다. 인조 23년(1645)에는 순천부의 별시 무과 초시에 낙방한 사람들이 시험장에 난입해 불을 지르자 죄를 묻겠다며 보고서를 올린 기록도 남아 있다. 특정인에게 원한을 갖거나, 재물을 노린 방화로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례도 보인다. 그런데 누가 죽어도 좋다는 식의 ‘묻지마 방화’는 적어도 실록에서는 찾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른바 다중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방화의 이미지는 1930년 작가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부터 극도의 비정상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밝게 빛나는 불꽃이라는 광염(光焰)을 미쳐 날뛰는 불꽃이라는 광염(狂炎)으로 비틀었으니 작품의 분위기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병리 현상을 자극하는 원인 물질로 불의 존재를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직설적으로 소개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방화를 저지르는 행위를 충동조절장애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어느 사회에도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멀게는 대구지하철역과 숭례문 방화, 가까이는 도곡역 방화와 장성 노인요양병원의 방화 의심 사건에서 보듯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절차를 거쳐서는 풀 길이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진단이 그럴듯하다. 지금이 왕조 시대보다 더한 분노 사회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노 게이지’ 눈금이 치솟아 있는 것은 현실이다.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치유는 어려울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내 꿈’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 이미지화 ‘드림 머신’ 개발

    ‘내 꿈’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 이미지화 ‘드림 머신’ 개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지난 1899년 발간한 대표 저서 ‘꿈의 해석’에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불안이 꿈에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이를 자유연상(自由聯想)법으로 찾아내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이렇듯 매일 꾸는 꿈이지만 정작 우리는 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며 그 신비는 오랜 기간 연구대상이었다. 꿈은 영화 소재로도 매력적이라 여러 번 영상화 되었는데 지난 2010년 개봉된 화제를 모은 ‘인셉션’은 급기야 꿈을 조작하는 전문가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잡힐 듯, 안 잡힐 듯 지평선 같던 ‘꿈’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 영국 판 보도에 따르면 우리의 뇌를 스캔해 어떤 꿈을 꾸었고 그 내용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나타내주는 ‘드림 머신’이 미국 대학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예일 대학, 뉴욕 대학 신경과학과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이 드림머신은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장치(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와 같은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자기장이 발생되는 커다란 자석 원통에 사람을 들어가게 한 뒤, 고주파를 발생시키면 신체부위에 있는 수소원자핵이 공명하게 된다. 이때 각 조직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호를 되받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해 최종적으로 영상화시키는 것인데 여기서 드림머신은 ‘뇌’ 부분에 집중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자원봉사자 6명의 머리, 얼굴 부분의 화학변화를 스캔해 데이터베이스를 집대성하는 방식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이 가지고 있는 이론은 인간 뇌신경 속의 복잡한 인체 화학 반응이 바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꿈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패턴일 것이라는 점에 기반하며 해당 기계는 이를 조합해 이미지화 해내는 원리로 구동된다. 연구진은 뇌 스캔으로 각각 추출된 화학반응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비교분석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쳐, 참가자 6명의 꿈과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300컷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독심술(마음을 읽는) 기계일 수도 있는 이 장치는 사라진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목격자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범죄자의 몽타주를 가장 완벽하게 복원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신경 과학자 앨런 코웬 박사는 “현재 해당 기계는 뇌의 활성 부분만 감지하지만 이후 연구가 더 진척되면 비활성영역까지 고해상도로 이미지화 해낼 날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사진=포토리아/Alan Cowen(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꿈’ 읽어내는 ‘드림머신’ 개발…이미지화 성공

    ‘꿈’ 읽어내는 ‘드림머신’ 개발…이미지화 성공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지난 1899년 발간한 대표 저서 ‘꿈의 해석’에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불안이 꿈에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이를 자유연상(自由聯想)법으로 찾아내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이렇듯 매일 꾸는 꿈이지만 정작 우리는 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며 그 신비는 오랜 기간 연구대상이었다. 꿈은 영화 소재로도 매력적이라 여러 번 영상화 되었는데 지난 2010년 개봉된 화제를 모은 ‘인셉션’은 급기야 꿈을 조작하는 전문가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잡힐 듯, 안 잡힐 듯 지평선 같던 ‘꿈’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 영국 판 보도에 따르면 우리의 뇌를 스캔해 어떤 꿈을 꾸었고 그 내용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나타내주는 ‘드림 머신’이 미국 대학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예일 대학, 뉴욕 대학 신경과학과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이 드림머신은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장치(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와 같은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자기장이 발생되는 커다란 자석 원통에 사람을 들어가게 한 뒤, 고주파를 발생시키면 신체부위에 있는 수소원자핵이 공명하게 된다. 이때 각 조직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호를 되받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해 최종적으로 영상화시키는 것인데 여기서 드림머신은 ‘뇌’ 부분에 집중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자원봉사자 6명의 머리, 얼굴 부분의 화학변화를 스캔해 데이터베이스를 집대성하는 방식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이 가지고 있는 이론은 인간 뇌신경 속의 복잡한 인체 화학 반응이 바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꿈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패턴일 것이라는 점에 기반하며 해당 기계는 이를 조합해 이미지화 해내는 원리로 구동된다. 연구진은 뇌 스캔으로 각각 추출된 화학반응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비교분석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쳐, 참가자 6명의 꿈과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300컷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독심술(마음을 읽는) 기계일 수도 있는 이 장치는 사라진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목격자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범죄자의 몽타주를 가장 완벽하게 복원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신경 과학자 앨런 코웬 박사는 “현재 해당 기계는 뇌의 활성 부분만 감지하지만 이후 연구가 더 진척되면 비활성영역까지 고해상도로 이미지화 해낼 날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사진=포토리아/Alan Cowen(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맏이가 둘째보다 ‘보수적’인 진짜이유

    맏이가 둘째보다 ‘보수적’인 진짜이유

    흔히 첫째 아이가 둘째, 셋째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향 적으로 ‘보수성’을 띤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지만 이 배경이 심리학적으로 명쾌히 규명된 경우는 드물다. 다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명망 높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동시대 인물인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 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출생순서가 아이의 성향 결정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지난 1928년 제시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맏이가 둘째보다 보수적 성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사회심리학적 견해가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닷컴은 이탈리아 밀라노 가톨릭 대학 심리학 연구진이 “맏이의 보수성은 ‘가족 시스템’과 ‘부모의 관심’에 기인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진은 이탈리아의 96가구, 총 38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부모, 첫째아이, 둘째아이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내용은 가정 내에서의 본인 위치, 전통·보수에 대한 견해 등이었고 이는 성별, 나이, 종교, 신앙심, 부모의 교육 수준, 첫 아이 출생 시 부모의 헌신정도, 출생순서라는 주요 기준으로 분석됐다. 이후 산출된 최종 데이터는 흥미로웠다. 평균적으로 맏이는 둘째보다 보수적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보수성이 맏이가 가정에서 본인 위치를 유지하는 가장 영리하고 유리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었다.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맏이는 평균적으로 부모의 전적인 관심과 배려를 경험하는데 이는 타 형제, 자매보다 훨씬 강한 지적 우월성과 지배적 위치로 귀결된다. 실제로 지난 2007년에는 “맏이가 둘째보다 평균 아이큐(지능지수)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그들은 한번 정해진 가정 내 위치적 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적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해당 연구가 이탈리아 가구에 한정되어 있고 재혼 가정과 같은 타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완전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다. 연구를 주도한 밀라노 가톨릭 대학 심리학과 다니엘라 바르니 연구원은 “더 많은 인구와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추가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한곳에 오래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바뀐 것들 대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이 모여 역사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 역사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런 명분 아래 그냥 배워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슬픈 열대’의 저자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직무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사회의 기능 체계 속에 이미 한 자리를 확보했다는 느긋함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특수한 성격이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춘들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그도 청년기에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있었다. 고3 때 선생님이 법률 공부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권하자 2주간의 요점 정리만을 공부하는 것으로 쉽게 법학시험을 끝낼 수 있어서 법학부에 등록하고 철학 학위도 준비했다. 학위를 받고 그리 어렵지 않게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한 번 만에 통과했다. 전도유망한 철학교수로 안착할 수 있었으나 철학에서 배우고 훈련했던 논리들이 철학적 논리의 완성도를 위해서만 쓸모 있다는 생각에 철학과 멀어지게 됐다. 그가 철학과 멀어졌다 해도 그의 사상적 토대가 철학에서 온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 스승이라고 표현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에서 체험과 실재 사이의 통로는 불연속적인 것이며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총합 안에서 우선 체험을 거부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를 통해 체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이런 생각은 미국의 민족학자 로버트 로위가 쓴 ‘미개사회’를 읽고 확고해졌다. 철학적 훈련에 갑갑함을 느끼던 레비 스트로스는 이 책에서 철학적 지식이 아닌 관찰자의 직업적 참여가 있어야만 그 의미를 보존할 수 있는 원주민 사회의 실제 체험과 만나며 자신의 길이 민족학에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슬픈 열대’는 그가 42세 되던 해(1950년)에 출판됐다. 자신이 어쩌다 민족학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서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문명의 광기에 소심하지만 집요하게 저항했던 것을 거쳐 브라질 원주민과의 만남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사절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여행한 내용 일부를 정리한 방대한 책이다. 출발에서 귀로에 이르기까지 총 40장으로 구성된 목차만 보면 지구 사방을 여행한 경험담처럼 보인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여행기로 보아도 좋지만 그가 사람들의 뇌리에 던진 충격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게 한 원자폭탄과도 같아 사상서라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KDC 분류 체계 중에서 기호 985대 남아메리카 지리에 분류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임의대로 구분하여 자기들이 속한 곳을 문명이라 부르고 그렇지 못한 곳을 야만이라 칭하며 맘껏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리적 파괴와 인간 살상을 목도하며 인간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은 지식인들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자신의 특성에 맞게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들은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사유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스트로스는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유럽 학자들을 구해 내기 위해 계획한 ‘신사회 조사 연구원’의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브라질에 가게 됐다. 민족학에 대한 열정으로 브라질 탐험을 떠난 것 같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많은 영화와 다큐, 체험기, 사진, 회화 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박해와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브라질로 향하는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처해 있던 당시의 위기 상황을 생각하노라면 그가 현상 너머에 있는 심층에서 보편적 구조를 발견하고, 인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이 매우 잘못됐다고 결론짓게 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구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다. 인간이 구조라 불리는 계획된 회로에 따르는 존재라는 주장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제시하는 구조들이 무의식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 구조를 특정 문화집단이나 특정 개인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탐구하는 인간이 구조주의에 의해 주체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행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 현실에서 차별하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필요하고도 절실하다. 그래서 비판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불릴 자격을 얻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정리해 저장한 것을 손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는 스트로스가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기 위해 20년 걸린 이 책을 존중하며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다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브라질 원주민 부족의 낯선 생활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놀라움을 느끼고 싶다면 해당 부분만 읽으면 된다. 목차를 보면 쉽게 고를 수 있다. 스트로스의 문학적 자질을 음미하고 싶다면 선상 노트만 보아도 된다. 물론 꼼꼼하게 전체를 읽는다면 장마다 빛나는 문장들 속에서 지금 여기의 나에게 꼭 필요한 여러 의미를 만날 수 있다. 그가 묘사하는 원시세계를 머릿속에서 동영상화하며 읽으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스트로스는 엘리트의 길을 무리 없이 간 사람이었다. 철학 교수 자격을 얻는 데 어려워하지도 않았고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 학기를 맞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에서 불안을 느꼈다. 불안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품었던 회의를 간과하지 않았다. 의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인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고 인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왔다. 자신의 내부에서 신호를 보내는 사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위한 지적 탐색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행복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청춘을 가능성이 많은 세대라 부러워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불안하다고 한다. 불안한 청춘이 불안을 달래기보다는 불안과 마주했던 사람의 궤적을 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용기를 내어 보았으면 좋겠다.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프로이트의 환자들’·‘살인의 해석’ 함께 읽어보세요

    지난해 말 국내에 소개된 고체 스밀레프스키의 소설 ‘프로이트의 여동생’은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 나치가 쳐들어오자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던 유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출국 비자를 받을 명단에 자신의 가족, 가정부, 처제, 기르던 강아지까지 써넣은 반면 자신의 누이들은 배제한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결국 프로이트의 누이 4명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처럼 프로이트의 저작뿐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후대 새로운 저작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정신분석학이 당대뿐 아니라 이후에도 논쟁의 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동기의 개념을 이론화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행동 이해와 정신 치료에 크게 공헌했지만, 동시대 칼 융의 반박을 받는 등 논쟁을 부르기도 했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 책임연구원은 꿈 분석을 비롯한 정신분석의 150가지 사례를 다룬 김서영의 ‘프로이트의 환자들’과 프로이트와 융이 미국의 연쇄살인을 해석해 나간다는 추리소설인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을 함께 읽으면 프로이트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추천했다. 신 연구원은 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가독의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추천했다. 이 영화는 융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프로이트와 융, 융의 연인인 슈필라인의 삼각관계를 다뤘기 때문에 자유연상 상담과 같은 분석기법을 보여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리스너(FX 밤 1시) 차이나타운에서 총격이 벌어져 두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 중 하나인 레이먼드 추의 누나 킴 추는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시각장애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해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 사망 직전 레이먼드의 생각을 읽은 토비는 단순한 갱들의 총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범인을 잡도록 킴 추를 돕기로 한다. ■슈퍼 내추럴 7(AXN 밤 10시 50분) 딕의 부하에게 잡혀 딕 앞에 끌려온 예언자 케빈. 딕은 그에게 신의 말씀 판을 내밀며 읽어 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케빈이 거부하고, 이에 딕은 케빈의 엄마를 인질로 잡은 영상을 보여 주며 케빈을 위협한다. 한편 신의 말씀에 따라 리바이어던을 죽이려고 피를 구하러 나선 윈체스터 형제는 알파의 피가 필요한 상황이다. ■데인저러스 메소드(씨네프 밤 11시 50분)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은 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와 무의식 세계를 주장한 정신분석학자 융, 그리고 프로이트와 융과의 만남을 통해 아동정신분석의가 된 슈필라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사람의 팽팽한 심리 게임과 그들이 주장했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도발적이고 위험한 사랑이 시작된다. ■와타나베 건물탐방(홈스토리 밤 8시 30분) 요코하마에 있는 니시모토 집을 찾아간다. 건물에 둘러싸인 데다 특이한 부지에 자리한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채광을 더 좋게 하는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를 높이고, 천장의 아치형 장식과 더불어 29개의 지붕 창을 만들었다. 집안 곳곳에는 안주인의 인테리어 센스가 가득하다. ■그림:괴수 사냥꾼(FOX 밤 12시) 한 전기상회 건물에 고철을 훔치러 간 도둑 두 명이 다음 날 아침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다. 화재 수사관은 두 사람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타 버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는 한편 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지방질을 분석해 용의자의 정체를 알아낸다. 닉은 살인 용의자가 입에서 불을 뿜는 데이먼 퓨어 종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명탐정 코난(애니맥스 오후 6시)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한 김창원은 복역하던 중 탈옥을 감행한다. 이 기사를 신문에서 접한 미란은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던 김창원의 말이 떠올라 아버지를 보호하는 데 총력을 쏟는다. 유명한은 길에 쓰러진 여인을 병원으로 옮기지만, 여인이 본인의 이름자 외엔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자 기억을 되찾아 주겠다며 조사를 시작한다.
  • [세종로의 아침] 그날, 그 일들은 우연이었을까/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그날, 그 일들은 우연이었을까/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마음속으로 느끼거나 생각한 것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공시성(共時性) 이론으로 설명했다. 융의 가설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질서의 배후에 더 깊숙하고 심오한 질서가 존재하며, 모든 것은 심층부에서 연결돼 서로 연동하고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숱한 만남들 모두에는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달 10일은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세워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앤파크(DDP)의 내부가 언론에 처음 공개된 날이었다. 선임기자 타이틀을 달고 난 이후 첫 현장 취재였다. 이라크 출신의 여류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세계 최대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은 근사했다. 곡선과 곡면, 사선과 사면이 흐르듯이 이어지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외관은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했다. 종이 위에 머물러야 했던 설계를 구현해 낸 우리의 건축기술도 놀라웠고, 외국에 나가서나 볼 수 있었던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을 랜드마크로 둘 정도로 우리 경제가 성장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건물 뒤편에 겨우 존재만 살아남은 한양도성 성곽의 이간수문(二間水門)을 본 순간 울컥 속이 치밀어 올랐다.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하도감 터 유적들을 옹기종기 옮겨다 놓고 역사문화공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준 대목에서는 낯이 화끈거렸다. DDP에는 한국 공공건축물 사상 최대의 예산인 4840억원이 투입됐고, 앞으로 연간 최소 300억원의 운영비가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 아무리 훌륭한들 600년 도읍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그 많은 세금을 퍼부어 가면서 지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명품 건축물’ 취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얼른 들어가서 마감을 해야 하는데 택시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좀 빨리 가자고 재촉하려는 순간 기사의 주름진 옆 얼굴과 핸들을 움켜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연세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일흔일곱 살이라고 했다. 은퇴해야 할 나이도 훨씬 지났는데 쉴 처지가 안 되나 보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넋두리가 터져 나왔다. 20년간 부인의 병치레 탓에 모았던 재산을 다 날렸다. 부인은 먼저 떠나버리고 지금은 혼자서 단칸방에 산단다. 쥐꼬리만큼 나오는 연금으로는 입에 풀칠도 못하니 살기 위해 침침한 눈을 비비면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식 둘은 출가해 부산에 살지만 ‘해준 게 없는’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면서. 할 말이 없었다. 5000억원에 육박하는 혈세를 건물 하나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쏟아부은 사람들이 고단한 국민들의 처지를 알기나 하는 걸까. 우리 사회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을 잠시 잊고 지냈던 게 부끄러웠다. 머리에 철퇴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취재 현장에 돌아온 날 극단의 사례를 목격하면서 기자의 책임과 사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돌이켜 보니 그날 그 일들은 누군가 짜맞춘 것 같았다.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끓는 피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lotus@seoul.co.kr
  • “인간은 평생 변한다” 그 통찰은 유효한가

    “인간은 평생 변한다” 그 통찰은 유효한가

    유년기와 사회/에릭 H 에릭슨 지음/송제훈 옮김/연암서가/528쪽/2만 5000원 발달심리학이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무렵부터다. 과거 인간 수명이 50세 정도였을 때에는 인간이 태어나서 스무 살 무렵까지의 심리발달 과정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동심리학이라는 명칭이면 충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발전과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자들의 관심은 유아에서 노년에 이르는 일생을 단계별로 나눠 그 특징을 밝히는 것으로 확장됐고 발달심리학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그 흐름을 주도한 이론가가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이다. 그가 1950년에 발표해 발달심리학의 고전이 된 책 ‘유년기와 사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돼 나왔다. 첫 저서이자 출세작으로 1963년과 1985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으며 이번에 나온 책은 1985년판을 토대로 삼았다. 에릭슨은 190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았고, 어머니는 덴마크계 유대인이었다. 전공인 미술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39년 미국 국적을 얻었고 아동정신 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1949년 UC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매카시즘 광풍이 대학에까지 몰아치면서 충성 맹세를 요구하자 1년 만에 교수직을 내던지고 학자의 양심을 택했다. 이 책은 그로부터 몇 달 뒤 나왔다. 개인의 심리학적 진화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성격발달이 성인기 초기에 종결되는 것으로 가정한 프로이트와 달리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사회학적 발달 과정이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난다고 봤으며 인간 자아의 형성을 문화·사회와 관련지어 설명했다. 에릭슨은 이 책에서 임상적 정신분석과 문화인류학적 접근방식을 새롭게 결합해 주목을 끌었다. 반세기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가 임상을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의 사례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인디언 부족에 대한 현장연구, 히틀러와 고리키를 통해 독일 국민과 러시아 민중의 정체성을 반추한 내용은 여전히 흥미롭고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책에서 유명한 인간발달의 여덟 단계를 소개했다. 구강감각기(0~1세), 근육항문기(1~3세), 보행이동-남근기(3~6세), 잠재기(6~12세), 청소년기(12~20대 중반), 성인기 초기(20대 후반~30대 중반), 장년기(30대 중반~60대 중반), 노년기(60대 후반~)가 그것이다. 인간은 발달 단계별로 기본적 신뢰 대 기본적 불신,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성 대 열등감, 정체성 대 역할 혼란, 친밀 대 고립, 생산력 대 침체, 자아완성 대 절망이라는 심리적 위기에 당면하며 이를 잘 넘겨야 자아가 조화롭고 건전하게 발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년기로부터 비롯된 좌절이 이후의 삶과 그가 속한 사회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주목했던 에릭슨은 “유년기의 갈등은 문화적 관습과 지배계층의 견고한 지지가 유지될 때 창조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우린 프로이트에게 속고 있다

    우상의 추락/미셸 옹프레 지음/전혜영 옮김/글항아리/712쪽/3만 2000원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1906년 50세 생일선물로 앞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뒷면에는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각각 새겨진 메달을 받고 무척 좋아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그의 정신분석학의 뿌리인 만큼 그가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간다. 2010년 프랑스에서 나온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이 ‘우상의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겨졌다. 프로이트에 심취했다 비판자가 된 저자는 이 책을 낸 뒤 논란의 중심에 섰다. 프로이트는 본능 또는 충동을 뜻하는 리비도와 무의식, 금기시됐던 성욕 등의 개념을 끌어내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잠재의식으로 인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저자는 프로이트가 임상 사례를 조작하고, 전기작가들이 그를 미화해 그의 사상이 실제와 달리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또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만든 것이어서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으로 치료했다는 환자가 6개월 뒤 사망하는가 하면 프로이트는 처제 민나 베르나이스와 모호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러나 전기작가들은 두 사람이 스위스, 이탈리아 등 10여 차례 장기여행을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불륜관계는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연결고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반(反)유대주의자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들에게 모멸감을 안기는 모순적인 아버지, 후처로 들어와 장남인 프로이트를 최고로 여긴 20세 연하의 어머니, 딸 안나에 대한 프로이트의 과보호 등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형성된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산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어머니에 대한 사랑, 딸에 대한 집착, 처제와의 밀월 행각 등 다양한 행태로 나타난다. 저자는 그러나 근친상간에 대한 욕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또 미국의 영화 배우 메릴린 먼로가 비밀리에 오스트리아에서 프로이트의 딸 안나에게 심리치료를 받았으며 이것이 인연이 돼 먼로의 유산이 사후 안나 프로이트 재단과 프로이트 연구소에 들어가는 재미난 사연도 담겨 있다. 저자의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이 옳은지 그른지는 차치하더라도 그의 숨겨진 면모는 프로이트 정신심리학을 다시 보게 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책속 ‘노는 나’를 보는 게 행복, 개념부터 익히고 들어가야…안 그러면 허우적대다 나자빠져요

    책속 ‘노는 나’를 보는 게 행복, 개념부터 익히고 들어가야…안 그러면 허우적대다 나자빠져요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의식, 전의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컴퓨터에서 현재 작동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파일이 의식이라면, 현재 가동되지는 않고 있으나 하드에 저장돼 있어 불러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화면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파일이나 프로그램은 전의식이다. 무의식은 지워져버리거나 덧씌워져버린 파일들이다.” 이렇게 살뜰하게 ‘인문학 개념정원’(문학동네)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문학가가 있다. 문학평론가인 서영채(52)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다. “인문학이라는 건 수학과 비슷해서 기초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발짝씩 걸음을 뗄 수 있어요. 생경한 수학 공식을 이해하고 나면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죠.” 개념정원이라는 제목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명문 사립학교 가운데 하나였던 에피쿠로스의 정원학교에서 따 왔다. 학업과 텃밭 가꾸기를 병행한 정원학교에서는 흙을 돌보는 행위를 귀히 여겼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데, 자연의 근본이 흙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서 교수는 인문학의 ‘흙’이 되는 근본 개념 80여가지를 뽑아냈다. 2006~2011년 청소년 계간지 ‘풋’에 연재했던 개념들을 대학생, 일반 독자가 씹어 삼키기 쉽게 주물렀다. 3권까지 낼 계획이다. 기준은 이렇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 있는 학문이죠.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과 정치경제학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 이 두 가지가 핵심으로 놓여 있어요. 이 두 가지는 슬라보이 지제크라는 불세출의 스타 철학자가 등장해 쉽게 풀어주면서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현재 인문학의 주류가 됐죠. 이 가운데 가장 어렵겠다 싶은 것을 뽑아냈어요.” 개념을 쏙쏙 빼서 설명했지만 서 교수는 사실 뼈대만 있는 사전이 아니라 원전의 문장들과 함께 노는 게 행복하다고 믿는 ‘원전주의자’다. “독서 방법은 책 속에 들어가서 알맹이만 읽는 방법, 책이랑 노는 방법 두 가지가 있어요. 책 속에 나를 집어넣고 ‘노는 나’를 바라보는 게 제일 행복했어요. 그러려면 개념부터 익히고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냥 들어가면 허우적거리다 빠져 죽고 지루해서 나자빠지죠(웃음).” 위키피디아 같은 인터넷 사전에 검색어만 넣으면 획득할 수 있는 몇 줄의 알량한 정보는 진짜 앎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인문학 개념정원’은 원전 속으로 풍덩 빠져들기 위한 디딤돌인 셈이다.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을 인터넷에 쳐보면 금방 설명이 나오지만 바로 그 책을 읽으면 사전에는 없는 풍경이 펼쳐져요.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어가는 얘기를 쓰면서 얼마나 손이 떨렸을지, 또 그의 기이한 유머 감각도 느낄 수 있죠.” ‘인문학 열풍’이 거센 시대다. 현대인들은 왜 인문학에 매달리는 걸까. “다들 인생 사는 게 힘들잖아요. 그건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안에 작동되는 근본적인 불안 때문이거든요. 그런 불안이 덮칠 때 사람들은 대개 인문학과 종교를 찾습니다. 인문학은 그런 자기 안에 있는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응시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에요. 원전을 통해 힘껏 자기 삶을 책임지려 애썼던 사람들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박새 둥지에 날아든 뻐꾸기 영어교사들(전정완 지음, 북랩 펴냄) 현재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영문법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한 책. 보어 규칙과 8품사, 분사·동명사·부정사 용법 등 학교에서 잘못 가르치고 전수되는 엉터리 영문법의 유래와 오용 사례를 촘촘히 추적·분석했다. 134쪽. 1만원. 나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박재현 지음, 공명 펴냄) 유엔 나이로비 사무소 안전보안국 보안대 작전담당관으로 활동하는 박재현의 에세이집.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막연한 꿈이 ‘최고의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 꿈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담았다. 280쪽. 1만 4000원. 6·25 바다의 전우들(최영섭 지음, 세창미디어 펴냄) 6·25 전쟁 북침설이 만연한 사회를 향해 예비역 해군 대령이 내놓은 자서전적 증언기. 저자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은 북측의 육전대(해병) 1000여명이 부산 앞바다에서 수장됐다는 새로운 증언을 내놓는다. 360쪽. 1만 5000원.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박정호 지음, 한빛비즈 펴냄) ‘이야기 속에 숨겨진 경제학의 힘’ ‘음식에 깃든 경제원리’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경제학적 통찰’ 등의 소주제들을 통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내재된 경제학적 진실을 읽어 낸다. 320쪽. 1만 5000원. 나의 프랑스식 서재(김남주 지음, 이봄 펴냄) 1990년 장 그르니에의 책을 시작으로 전문 번역가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번역 에세이. 프랑수아즈 사강, 아멜리 노통브,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등 그동안 번역한 책들에 붙인 ‘옮긴이의 말’을 묶었다. 272쪽. 1만 2000원. 지식의 반전:거짓말 주의보(존 로이드·존 미친슨 지음, 이한음 옮김, 해나무 펴냄) 잘못된 통념과 상식을 바로잡는 책. ‘시원하려면 짙은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한다’ 등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많다. 또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인 평균인 164㎝보다 큰 169㎝의 ‘키다리’였다고 주장한다. 340쪽. 1만 4800원.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 (클레어 던 지음, 공지민 옮김, 지와사랑 펴냄) 전대미문의 심리학자 융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평전. 무서우면서도 심오한 의미가 있는 여러 이미지에 주목했던 어린 시절, 직업적 성공을 거둔 청년기, 영혼 세계를 재발견한 중년 시절까지 융의 여정을 정리했다. 336쪽. 2만 5000원.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강제윤 지음, 호미 펴냄) 300여곳의 전국 섬을 순례한 강제윤 시인이 섬의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을 짧은 글과 함께 엮은 포토 에세이집. 섬 유랑자의 눈길을 따라 비경을 찾아 떠난다. 시인은 가장 인상 깊었던 섬으로 전남 신안군의 가거도를 꼽았다. 220쪽. 1만 6000원. 당신으로 충분하다(정혜신 지음, 푸른숲 펴냄)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6주간의 힐링 토크. 개인맞춤형 심리분석 프로그램인 ‘내 마음 보고서’ 분석 결과 평균적 모습을 보인 30대 여성 4명과 저자가 6주간 진행한 집단 상담을 바탕으로 했다. 288쪽. 1만 3800원.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에리히 프롬 지음, 이종훈 옮김, 휴 펴냄)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1966년에 쓴 책.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구약 읽기를 시도했다. 구약은 인간이 우상으로부터 해방돼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267쪽. 1만 4000원.
  • “삶의 질 결정하는 건 뇌 연구에 있지” “과학의 미래는 넓은 우주에 있는걸”

    “삶의 질 결정하는 건 뇌 연구에 있지” “과학의 미래는 넓은 우주에 있는걸”

    20세기 초반까지 과학은 ‘물리학의 시대’였다.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대부분 물리학의 영역에서 얻어졌다. 물리학자들은 모든 과학은 물리학으로 통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사에서는 이를 ‘물리학 환원주의(제국주의)’라고 부른다. 20세기 중반 이후는 ‘생물학의 시대’다. 유전자(DNA)와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인해 질병들이 정복되기 시작했고, 생명의 신비에 점차 다가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의 ‘통섭’ 등이 출간되면서 ‘생물학 환원주의’의 움직임도 거셌다. 환원주의는 모두 실패했다. 과학은 한 분야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하나의 이론으로 세상의 모든 원리를 설명하는 ‘최종이론’을 꿈꾸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더 많은 과학자가 연구하며, 더 많은 돈이 투입되는 분야는 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2013년 현재 과학의 양대 산맥은 ‘신경과학’과 ‘우주과학’을 꼽을 수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과학칼럼니스트 딘 버닛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신경과학’과 ‘우주과학’ 중 어느 쪽이 위인가”에 대한 시리즈를 진행했다. 버닛은 모두 8가지 분야에서 두 거대한 과학 분야의 상대적 장단점을 평가했다. 버닛은 신경과학의 범위를 ‘신경, 정신분석학적 연구결과와 뇌수술’로, 우주과학의 범위를 ‘로켓과 우주를 기반으로 한 연구결과와 기계적 결과’로 한정했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① 응용 분야 신경과학은 인간의 뇌와 신경계통에 대한 연구다. 언어와 기억의 처리, 신약 개발, 퇴행성 질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인간이 하는 일과 삶 자체가 모두 뇌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주과학의 목표는 로켓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우주로 보내는 것이다. 우주과학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에 도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삶보다 응용 분야가 많을 수는 없다. 신경과학 1 : 우주과학 0 ② 복잡성 뇌는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복잡한 존재다.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과 작동원리를 아는 것과 같다. 물리적으로 지구의 어느 곳에서 우주로 무엇을 반복적이고 안전하게 보내는 우주과학의 목표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로켓이나 인공위성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우주과학자들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안전장치를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로켓의 복잡함도 뇌에는 비교할 수 없다. 신경과학 2 : 우주과학 0 ③ 위험성 신경과학 연구는 동물이나 자원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윤리적 기준이 계속 강화되고 있다. 뇌 수술에 있어서도 외과의의 작은 손 떨림으로 인해 환자는 평생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우주과학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인 강력한 폭발을 이용해 사람이나 물건을 안전하지 않은 환경으로 보낸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나 컬럼비아호처럼 불행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신경과학은 실수로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을 수 있지만, 우주과학은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신경과학 2 : 우주과학 1 ④ 접근성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신경과학의 재료는 뇌와 시체다.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뇌 과학에 도전할 수 있다. 의대에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 우주여행은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최소한 수십년간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신경과학 3 : 우주과학 1 ⑤ 시각화 신경과학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화려하고 재미있는 두뇌의 이미지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뇌는 여전히 ‘호두’처럼 보일 뿐이다. 반면 허블망원경이 보내는 영상들은 인류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은하와 별의 색채 및 웅장한 모습을 자연 그대로 보여준다. 푸른 지구를 보여주는 사진 한 장으로도 뇌 영상은 초라해진다. 신경과학 3 : 우주과학 2 ⑥ 대중성 신경과학은 대중문화 속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져 왔다. ‘지킬 앤드 하이드’ 같은 비극, 뇌 수술의 위험성 등이 강조되는 측면이 강했다. 반면 우주과학은 ‘달나라 여행’ 등 대중문화와 소설의 영향을 받아 발달했고 ‘꿈과 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경과학 3 : 우주과학 3 ⑦ 대표성 존경할 만하고 업적을 남긴 신경과학자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누가 뇌과학의 아버지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신경과학의 권위는 ‘조사 결과’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주과학에는 분명한 이정표를 세운 학자들이 많다. 현재의 로켓의 뿌리는 모두 베르너 폰 브라운의 이론에서 시작됐고 액체로켓의 아버지는 로버트 고더드다. 신경과학 3 : 우주과학 4 ⑧ 허위·과장 신경과학은 과장과 오류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과학 분야다. 위약(플래시보) 효과는 실제 실험 결과나 약의 효능을 엉뚱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우주과학 역시 ‘아폴로 13호는 달에 간 적이 없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음모론에 시달린다. 다만 우주과학에서 음모론을 만드는 것 역시 인간의 뇌 활동의 영역이고, 모든 ‘사이비’의 근원 역시 뇌다. 신경과학 4 : 우주과학 4 버닛은 거창한 시작과 달리 ‘무승부’로 싱겁게 끝을 맺었다. 일반 시민들도 토론자로 참여해 제각각 신경과학이나 우주과학이 더 중요한 이유를 들었다. 일반 시민들은 신경과학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우주과학의 편에 선 사람들은 “뇌 수술은 매일 수많은 지역에서 수천 건이 진행되고 있지만 로켓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신경과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로켓을 만드는 학자들은 로켓의 작동원리와 부품 하나하나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신경과학은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로켓은 현 단계에서는 기본적인 틀 안에서 발전하는 ‘죽은 과학’이지만 신경과학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고 강조한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