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佛도서관장의 다중인격장애/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
지난해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유일본 고문서인 ‘수사본 52(manuscript 52)’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30만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히브리어 고문서는 송아지 가죽에 모세 5경과 잠언서, 아가서, 전도서 등이 기술되어 있으며 그 분량은 총 332쪽에 달한다. 새로운 소장자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대학이었는데, 대학측은 고문서의 이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원소장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윽고 예루살렘 대학이 프랑스 정부에 이 사실을 공지함으로써 그간 벌어졌던 일련의 국립도서관 귀중본 도난 사건의 범인을 극적으로 잡게 되었다. 프랑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도난된 귀중본의 분량은 소장 고문헌 중 수사본 25권과 인쇄본 121권이었다. 놀랍게도 범인은 다름 아닌 히브리어 고문서 담당관이자 관장인 미셸 가렐로 밝혀졌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우리에겐 매우 낯익은 명칭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외규장각 고문서의 소장처로서, 개인적으로는 파리국립도서관 사서 2명이 결사적으로 반환 예정 도서를 내놓지 않겠다며 울음을 터트린 뒤 사표를 냈었다는 기사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미셸 가렐, 그는 2004년 5월14일에 개최되었던 BNF자체 안전과 국제협조 관련 세미나에서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외규장각 약탈 고문서 중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상권을 반환한 행위는 ‘국가원수에 의한 절도행위’라고 극렬히 비난했던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탈무드, 코란, 페르시아의 회화 작품을 포함한 희귀본을 몰래 빼돌리는 절도 행각과 훼손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자이다. 마치 다중 인격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지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미셸 가렐은 낮에는 문화강국이라 자처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관장, 밤에는 문화재를 훔치고 암거래하는 범법자였다. 만일 미셸 가렐이 다중인격장애자가 아니라면,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윤리 및 책임의식이 결여된 사람을 정부기관의 최고 경영자로 선임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어야 할 것이다. 또한 비록 국립도서관측에서 사건을 가능한 한 은폐 또는 축소하려는 시도를 거듭하면서 정부와의 갈등이 심화되고는 있지만, 프랑스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의 신용도와 실추된 국가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타 문화예술기관의 관장들도 그와 동일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혹은 관장 이외에 다른 전문 인력들이 연루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심층적인 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만 한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그간 그들이 내세워오던 문화재구제론, 즉 프랑스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는 최적의 과학적 보존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최고의 훈련을 거친 전문인력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에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과 관련, 정부 부처는 프랑스 정부에 재협상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부는 보존 관리능력뿐만 아니라 윤리의식이나 책임의식조차 없는, 더욱이 관장이 ‘도적’인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유괴당한 아이를 되찾기 위해 내 자식 하나를 내주는 모양새로,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 협상 결과는 반환에서 영구대여로, 영구대여에서 등가교환으로 점차 하향 조정되었다. 선행 연구와 제대로 수립된 협상전략 없이 프랑스와 맞대결을 펼친 결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테제베(TGV)는 달리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