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손짓하는 인더스문명 유적
◎파키스탄 문화재당국 발굴작업 참여 희망/학계 “우리학문 세계화위해 시도 해볼만”
인더스문명의 신비와 고대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벗기지 못한 파키스탄은 한국과의 학술협력을 희망하고 있다.선사시대를 일찍 마감한 가운데 기원전 3000년께 인더스강유역에서 인류문명의 불을 지핀 땅 파키스탄은 고대 문화유적의 보고.파키스탄의 학계와 문화재관계당국은 문화유적 탐사를 위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한국학자들에게 고고학발굴 직접 참여 등을 골자로 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먼저 만난 파키스탄 원로 고고학자 아마드 하산 다니박사는 한국학계가 유적발굴을 원하면 기꺼히 주선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파키탄역사고고학회 회장이자 베나지르 부토총리의 고고학 고문이기도 한 그는 문화유적은 아류의 공동자산으로 발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파키스탄 국내 유적의 개방을 강조했다.유네스코(UNESCO)실크로드위원장 자격으로 한국학자들과 함께 실크로트 공동탐사에 나선 적도 있다.
한국이 발굴에 참여할만한 유적은 파키스탄 전역에 널리 분포돼 있다.도시 유적을 포함한 인더스강유역의 문명유적,간다라 불교유적,실크로드 유적 등 손을 대지 않은 유적들이 얼마든지 있다.인더스강유역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도시유적은 약 4배여군데로,이 가운데 파키스탄 동남부 신드지방의 모헨근다로와 하라파유적 정도가 발굴되었을 뿐이다.그리고 서북부 펀잡지방 탁실과 간다라유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실스크유적은 그냥 방치된 상태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에 파키스탄에서 독자적으로 유적을 발굴,상당한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다.또 유네스코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이 주관하는 모헨조다로와 간다라유적 발굴복원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모헨조다로 한 단위유적에만도 50만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독일에서도 이들 유적발굴을 지원하는 등 세계가 차츰 파키스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문화체육부 산하의 문화재관리국은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 제1의 도시 카라치에 자리잡았다.박물관 관장업무를 비롯 문화유적 발굴 및 보존업무를 맡고있는 문화재관리국은 페샤와르와 라호르 같은 중요유적 분포지에 분소를 두었다.문화재관리국과 이들 지역분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유적을 관리하면서 국제협력관계 업무도 전담하고 있다.유적발굴 및 보존에 따른 전문인력은 77명을 보유했지만,엄청난 유적에 비해 모자란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화재관리국 고고부 니아즈 랏술부장은 한국이 유적발굴 프로젝트 하나를 담당한다면 독자적 발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그것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의 방향제시나 간섭이 없는 발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리고 동종동류의 유물이 2점 이상 출토되었을때는 1점을 한국에 영구임대하는 방법도 검토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러한 협력은 지난 95년 5월 체결한 한·파키스탄문화교류협정에 근거를 들어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파키스탄은 한국이 문화유적 보존과학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했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발굴현장에서 만난 문화재관리국 엔지니어 모하날 오찬씨는 한국의 문화재보존과학팀의 모헨조다로 파견을 제의하고 나섰다.자연발생의 염분침식으로 유적이 훼손되는 현상을 막기위해 이같은 제의를 하게되었다는 그는 모헨조다로가 세계문화유산임을 누누히 이야기했다.
파키스탄이 그 많은 유적을 발굴,보존하기에는 힘에 겨운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문화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인더스문명유적과 간다라 불교미술유적을 보편적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엿보였다.오늘의 파키스탄 현실을 다시 말하면 유적발굴경비 조달에 따른 재정의 한계성과 유적발굴 개방정책이 기묘하게 맞물려있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로 판단되었다.
이번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에 참가한 한양대 배기동 교수(고고학)는 『우리 학계도 이제 시야를 세계로 넓힐 시기가 되었다』고 전제하면서 『세계문명의 발상지에서 고고학발굴은 국책차원이나 학술재단 투자형식을 빌려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특히 발굴성과를 집대성한 영문보고서 등을 통해 인류문명사와 고대문화사를 새로운 각도로 복원한다면,그 자체가 우리 학문의 세게화 내지 국제화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는 이슬라마바드를 기점으로 탁실라(간다라 유적지)→시르캅(고대도시유적)→자울리만(고대불교대학유적)→폐샤와르(실크로드시대의 도시)→닥테바히(고대불교 수도원)→라호르(무글제국의 수도)→모헨조다로→카라치로 이어졌다.배기동 교수 이외에 고려대 권영필 교수(불교미술사),한양대 이희수 교수(인류학),가천박물관 학예연구실 윤열수 실장(불교미술)등의 학자와 서울신문 취재진이 동행했다.〈카라치(파키스탄)=황규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