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물고기 꽃다발/이림
“아유, 냄새!”
분홍장미가 찡그리며 말했다.
“우후! 냄새!”
줄돔이 벙글거리며 말했다.
서울 명동 노다지 횟집.
“사장님, 이 것 잠시 좀 맡아주시겠어요? 지하철 타고 갔다 올 일이 있어서요.”
점심 식사를 마친 초등학교 졸업생 어머니가 계산대에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분홍 장미 한 아름에 버들개지 두어 가지, 또 다른 꽃들도 섞여 있었다. 꽃다발 속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어이, 주방장!”
꽃다발은 주방 안으로 건네어졌다. 횟감용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수족관 위 선반 위에 올려졌다.
“아유, 기분 나빠!”
분홍장미는 오후 내내 수족관 위 선반 위에서 코를 쥐었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물고기 냄새가 역겨웠다.
“우후! 기분 좋아!”
줄돔은 오후 내내 수족관 안에서 코와 입을 활짝 열고 헤엄쳐 다녔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장미 향기가 황홀했다.
“그 아주머니, 곧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 늦둥이 아들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얼마나 정성들여 꽃다발을 만들었는데…”
버들개지가 분홍장미를 달랬다.
버들개지는 꽃다발 꽃 중에서 하나뿐인 야생 꽃이다.
“코 좀 다물어. 흔적만 남은 코를 벌름벌름, 발름발름… 너, 힘 빠지면 바로 회로 썰어진다는 것 알지?”
볼락이 줄돔을 나무랬다.
볼락은 수족관 물고기 중에서 하나뿐인 자연산 횟감이다.
값비싼 눈요기용 횟감인 줄돔 뒤에 숨어 다니며 뜰채를 피해 다니는 꾀돌이다.
밤이 왔다.
주방 안은 어슴푸레 밝다.
뽀르르 뽈뽈~ 웅~
수족관 산소 방울 소리에 냉장고 소리가 가끔씩 더해지고 있다.
“아유, 냄새!”
분홍 장미는 밤늦도록 코를 쥐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우후! 냄새!”
줄돔은 코를 벌름거리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뭐? 수족관에서 물고기 냄새가 올라온다고?… 그만 자. 그 아주머니, 내일은 틀림없이 올 거야.”
버들개지가 분홍 장미 잠을 재촉했다.
“그만 자. 잠을 잘 자야 하루라도 더 생생하게 버티지.”
볼락도 줄돔 잠을 재촉했다.
다음 날이 왔다.
사장과 주방장은 하루 내 선반 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바빠서 꽃다발이 거기 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밤이 되도록 졸업생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유, 냄새. 훅…”
분홍 장미는 몹시 목이 말랐다. 벌써 겉잎이 다 말라 자줏빛 테를 두르고 있었다.
“우후, 냄새. 헉…”
줄돔은 온몸이 나른했다. 까만 줄무늬에 하얀 거품 같은 것이 끼고 있었다.
자정 무렵이었다.
“훅! 훅!…”
분홍 장미는 목이 탈 대로 탔다. 속잎까지 꾸덕꾸덕 마르고 있었다.
“헉! 헉!…”
줄돔은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뼈없는 물고기처럼 온몸이 흐물거렸다.
“좋은 수가 있어!”
버들개지가 말했다.
“분홍 장미야, 우리 저 수족관 물에 뛰어들자.”
“뭐라고?”
“아무리 꽃다발 꽃이라지만 이렇게 날로 말라 죽긴 싫어.”
“?”
“너처럼 비닐하우스 속에서만 큰 꽃은 모르겠지만, 내 고향 시냇물 속에도 물고기가 많았어! 물고기가 발을 간질러 주면 힘이 막 솟곤 했지.”
“저 비린내 나는 물에?… 싫어, 싫어.”
분홍장미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수가 있어!”
볼락이 말했다.
“줄돔아, 우리 저 꽃다발 속으로 뛰어들자.”
“뭐라고?”
“어차피 너나 나나 내일을 못 넘겨. 손님들 눈요깃감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너부터 바로 회로 썰어질 거야! 난 이런 감옥 같은 데서 죽음을 맞긴 싫어.”
“?”
“너처럼 양식장 속에서만 자라온 물고기는 모르겠지만, 내 고향 바다 속에는 물풀도 많았어. 검푸른 물풀 속을 헤엄치고 있으면 힘이 막 솟아나곤 했지.”
“저 고운 냄새 나는 꽃다발 속에?… 좋아, 좋아. 그런데 어떻게 저 높은 곳에 뛰어들어?”
줄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뛰어들어야지 뭐. 아님 내려오게 해서 들든지...”
볼락이 지느러미를 흔들며 말했다.
뽀르르 뽈뽈~ 웅~
사작사작 삭삭 끙~
(“분홍장미야, 몸을 밀어 봐.”
“싫어, 버들개지야. 무서워!”
“내려가야 한다니까!”)
뽀르르 뽈뽈~ 웅~
철버덕 철버덕 슉! 풍덩~
(“돌돔아, 뛰어 올라.”
“그렇게 높이? 난 볼락 너처럼 몸이 가볍지 않아!”
“그래도 더 높이 뛰어야 해!”
“이렇게?”
“그래. 그래야 꽃들이 우리 지느러미를 잡고 내려오게 하지.)
밤새 노다지 횟집 주방 안은 수선스러웠다. 늘 나던 수족관 산소막대 소리에 안간힘을 쓰는 소리들이 더해졌다.
날이 밝았다.
삐삐~ 띠띠~
문이 열리고 사장이 들어왔다. 주방장도 들어왔다.
수족관 앞으로 간 사장이 소리쳤다.
“아니, 주방장, 꽃다발이 왜 수족관 안에 떨어져 있어? 선반이 기울어진 것 아니야?”
“아닌데요. 똑 바른데요!”
“그럼 왜 널따란 선반에서 꽃다발이 떨어져?”
“그, 글쎄요… 꽃다발이 발을 달았나? 아님 혹, 혹시 우리 주방 안에 쥐가?…”
사장과 주방장은 주방 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닐 옷 입은 아저씨가 들어왔다.
‘우주수산’이란 글씨가 새겨진 파란 통을 들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 횟감 진짜 좋습니더. 바로 넣겠습니더.”
우주수산 아저씨가 수족관 앞으로 왔다. 물 속에 떨어져 있는 꽃다발을 보고 소리쳤다.
“아이, 이게 뭐꼬? 이 꽃들 바보 아이가? 짠물에 뛰어들어서 김치가 될라 카나… 에잇!”
우주수산 아저씨는 꽃다발을 문밖으로 휙 날려버렸다.
“사장님, 어제 회 특대 시킨 사람이 있었어예?”
“왜요?”
“줄돔 큰 것 없앴네예.”
“아니, 아직 잡지 않았는데요?”
“잔고기들도 거의 다 팔았고요.”
“아닌데?… 어젯밤 퇴근할 때만 해도 있었는데?… 가만! 꽃다발 속에?”
사장이 얼른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주방장도 따라 나갔다.
“사장님, 그 고기들, 다 꽃다발 속에 숨어 든 게 틀림없어요.”
“빨리 꽃다발을 찾기나 해. 큰 돔 값이 얼만데!”
“예, 예!”
사장과 주방장은 꽃다발을 찾느라 횟집 앞 주차장을 헤매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꽃다발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꽃, 꽃다발이 어디 갔어?”
“정말, 그새 어디로 간 거야? 흔적도 없어.”
“…저, 저기!”
뒤따라 나온 우주수산 아저씨가 소리쳤다.
“어디?”
”어디요?“
“저기, 저기예!”
대성당 위로 로켓 모양 물체 하나가 올라가고 있었다.
분홍 몸체에 줄무늬 문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줄무늬 문 안으로 오글오글 바글바글 손님들이 타고 있었다.
“비행접시다! 제보해야지.”
징-칙!
지나가던 청년이 디카를 눌렀다.
“미사일이다!”
찰칵!
지나가던 초등생도 손전화를 눌렀다.
“물고기 꽃다발, 삼각산 너머로 가버렸지요?”
“낮달 속으로 들어갔어!”
“우주로 날아갔습니더!”
사장과 주방장, 우주수산 아저씨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 하나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 소리를 질렀다.
“누구예요? 남이 싣고 가는 시험용 폭죽에다 꽃다발을 던진 사람이… 폭죽 값이 얼만지 알아요? 오늘 연구소에서 발사 시험을 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저 폭죽이 왜 터지지 않고 날아가기만 하지?”
●작가의 말
지난 겨울, 아들 졸업식이 있었다. 2월 하순은 꽃들에겐 추운 날씨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꽃다발 속 꽃들에게 참 미안했다. 축하 오찬을 하러간 횟집 수족관 물고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에게 찰나적인 즐거움을 위해 바쳐진 그 순간이, 저들에겐 한평생 온힘을 다해 일군 가장 빛나는 순간인 것을. 그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이 동화를 썼다.
●약력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가작. 제13회 계몽사 아동문학상 장편동화 부문 당선. 경남아동문학상 수상. 영남 아동문학상 수상. 제7차 교육과정 5학년 국어교과서에 ‘울타리속 비밀’ 수록. 펴낸 책으로는 ‘아빠는 짜리몽땅’, ‘안녕하세요?’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