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여고 모녀 봉사활동 현장/ “어머니와 함께 봉사하며 삶 배워요”
“다른 사람을 위해 조금만 시간을 내 봉사하면 결국 내가 행복해져요.”지난 5일,서울 여의도여고 학생들은 보충수업이 끝난 낮 12시30분부터 한시간동안 한강둔치에서 쓰레기를 주웠다.지난 3일 오후,여의도역에서 ‘지하철 질서지키기’ 계몽활동을 한지 이틀만에 나선 봉사활동이지만 학생 70여명이 참여했다.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봉사활동 학부모지도단’ 어머니들도 15명이나 참여했다.
무거운 가방을 맨 아이들은 안쓰러워보이기도 했지만 비닐봉투와 나무젓가락을 들고 둔치를 누비는 발걸음은 가벼웠다.금세 봉투를 가득 채우고는 어머니들에게 새 봉투를 받아 쓰레기를 주워 담으며 땀을 뻘뻘 흘렸다.
“오늘로 몇 시간째 봉사했어요?”방학 과제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넌지시 물어보았다.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모르겠어요.저희는 시간에 신경 안써요.한 100시간은 넘었겠지만….”3학년 권혜진양은 “난 많이 한 축에도 못든다.”고 쑥스러워했다.
같은 학년 우선혜양은 300시간을 넘긴 봉사왕이다.‘단 하루라도 봉사하지 않으면 몸살이 난다.’는 학생이다.“저는 디자이너가 목표예요.봉사는 제가 좋아서 한 일인데 봉사활동 점수로 대학을 택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괜히 제가 찾아갔던 시립아동병원의 꼬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라고 웃었다.
“새벽 한강둔치 청소는 봉사활동이라기보다 아침운동으로 제격”이라는 1학년 박지민양,“집에서는 해본적도 없지만 봉사활동하다 ‘설겆이 박사’가됐다.”는 같은 학년 남궁민영양의 얼굴이 해맑다.
여의도여고 학생들이 가장 감동받은 곳은 충북 음성 꽃동네봉사.“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병동이 배당됐어요.하루 일을 마치고 지난해 만나뵈었던 할아버지들을 만나러 들렀더니 그렇게 반가워하셨거든요.자주 가지 못하는 게 죄송했어요.”아나운서가 꿈이라는 2학년 이세라양은 “웬만큼 말솜씨는 있는 편인데도 봉사하는 기쁨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웃었다.
학교 봉사활동에 대해 인성교육과 공동체 의식 육성이라는 교육적 목적은 퇴색했다는 비난이 있지만 여의도여고 학생들이 참뜻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들이 주축이 된 학부모지도단의 역할이 컸다.2000년부터 학교에서는 60명으로 구성된 학부모지도단을 운영,학교와 학부모,지역사회의 ‘삼위일체’ 지원방식의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학교에서는 지정 과제로 학년 초에 자원봉사자 기초교육과 선진시민의식 교육을 한데 이어 학생들에게 거리질서 캠페인을 하고 여의도공원이나 한강둔치 등에서 환경정화 운동을 펼치도록 했다.그리고 소감문을 쓰도록 해 봉사활동을 되새기고 반성하도록 했다.또 선택과제로 매월 서너개의 활동 영역을 정해두고 희망자에 한해 봉사를 하도록 했다.
고아원,정신지체 부자유자 시설,노인복지시설을 방문해 봉사하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시키니까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봉사를 하면서 전에 몰랐던 인정과 보람을 느껴 학생들은 자신들을 기다릴 고아원생이나 노인들의 ‘눈빛이 생각나’ 스스로 다시 찾아 봉사한다고 했다.
입시준비에 바쁜 3학년도 봉사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느 학교와 다른점이다.어머니봉사단장 권영자(46)씨는 “봉사활동 후 공부하면 머리가 맑아져서 더 잘 된다.”며 3학년 학생들을 봉사 현장으로 이끌고 있다.이혜경(41)씨는 “‘공주처럼’ 자라서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아이들을 다른 엄마들도 함께 봉사하며 행동으로 가르치니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이용자(44)씨는 “입시준비에 짜증내던 아이가 봉사활동을 한 뒤 짜증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점수를 따기 위해 하는 학생 봉사활동 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이 학교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다르다.“보람을 느끼면하지 말라고 해도 봉사활동이 하고 싶어진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여의도여고처럼 학부모 봉사활동지도단이 결성된 곳은 서울시내에만 152개교에 이른다.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역할은 미흡한 것으로 알려져있다.여의도여고 정재량 교장은 “부모들이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아이들에게 서로 돕는 삶의 자세를 키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현황과 문제점/ 자원봉사 할곳 전국 1400여곳 뿐
봉사활동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대한 대안이자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지난 96년 도입됐다.
건전한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고,공동체 의식을 키울 뿐 아니라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진로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교육효과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봉사활동을 할 곳을 찾기도 어렵고,일에 서투른 아이들을 귀찮아하는 곳도 적지 않다.그러다보니 중·고생봉사활동 평가제가 겉돌고 허위 확인서를 제출하는 등의 부작용도 커져 아이들에게 편법만을 가르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 봉사활동 얼마나 해야하나?=고입 내신성적에 8%를 반영하거나,대학입시에서도 대학별로 선발 자료로 쓰며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은 봉사활동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부담을 준다는 것이 학생들과 학부모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제7차 교육과정은 봉사활동을 정규 수업시간에 편성,1년에 10시간 이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봉사활동은 고입 내신성적에도 반영된다.중3의 경우 봉사활동 점수가 연간 15시간 이상은 8점,10∼14시간은 7점,10시간 미만은 6점이다.중학교 1·2학년은 연간 18시간은 8점,15∼17시간은 7점,15시간미만을 6점으로 하고 있다.고교생은 연간 20시간 이상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봉사활동 점수를 반영하는 대학도 많다.
◆ 자원봉사활동 어디서 하나?=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는 청소년자원봉사센터나 시·도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서울시도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청소년에게 봉사활동을 할수 있는 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전국적으로 1400여곳에 불과한 것은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일할 손을 구하는 곳과 봉사활동할 곳을 찾는 아이들을 쉽게 연결해줄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민간기구로 봉사활동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미국의 ‘촛불재단’이 한예가 될 것이다.
◆ 학부모가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라=16개 시·도 청소년자원봉사센터를 다녀간 학생 숫자가 한해 53만명에 이르고,이들 중 71%가 어른이 돼서도 봉사할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설문조사로 미뤄보면 봉사활동의 교육적 효과를 폄하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서울시교육청 이준순 장학사는 “완전한 자발성과 지속성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의 봉사활동은 ‘봉사학습’으로 이해돼야한다.”고 지적,현재 152개교에나 창단되어 있는 학부모봉사활동지도단이 활성화된다면 봉사활동의 교육적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학생들이 궂은일을 꺼리고 쉬운 일만 찾고,‘시간 때우기’식 봉사활동을 해 교육효과가 흐려지는 것을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남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