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 여자 배구 GS칼텍스 첫 우승 이끈 이성희 수석코치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는 ‘타고난 지도자’에 가까웠다.
‘전설의 팀’ 고려증권의 명장 진준택(60) 전 감독은 칭찬에 인색했지만 그에게만큼은 “후배들 거느리고 다독이는 능력이 최고”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빼어난 실력 이상의 리더십을 가진 ‘세터 이성희’의 지도자 자질을 일찌감치 읽은 것이었다.
“제가 생각해봐도 힘들어하는 후배들 고민 얘기 많이 들어주고, 후배들과 함께 힘내서 훈련하고 시합하는 것을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실력+리더십 ‘준비된 지도자´
세터로서 ‘고려증권 전설’의 주역이었던 GS칼텍스 이성희(41) 수석코치는 지난달 29일 끝난 07∼08시즌 프로배구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무적함대 흥국생명을 꺾는 파란으로 ‘깜짝 우승’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특히 이희완(52) 감독이 시즌 초반부터 위암 투병으로 자리를 비운 뒤 이끌어낸 결과라 더욱 놀랍다. 지난 2일 자매팀인 프로축구 FC서울을 응원하기 위해 찾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 코치를 만났다. 그는 96년 고려증권의 우승 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는 등 선수 시절 우승을 밥먹듯 했다. 그러나 그때와 비교하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선수 시절 우승했을 때는 그냥 내가 잘해서 우승했다는 기쁨이 마냥 컸죠. 한데 이번에 우승을 해보니 단순한 기쁨보다는 뭐랄까, 선수단을 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뿌듯한 성취감, 주변 기대에 대한 중압감에서 해방됐다는 안도감 등이 더 큰 것 같네요.”
실제로 그의 마음고생은 극심했다.
시즌 전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GS칼텍스였다.‘독일배구의 영웅’ 이희완 감독을 삼고초려 끝에 25년만에 입국시켰고, 정대영(27) 이숙자(28) 등 FA 최대어를 영입했고, 거물급 신인 배유나(19)를 1순위로 뽑았으며, 높이와 힘을 보유한 하께우 다 실바(30)까지 보태며 초호화군단의 위용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재가 겹쳤다. 지난 1월 이 감독이 위암 판정으로 2선으로 물러났다. 뛰어난 선수들의 집합은 오히려 조직력 측면에서는 마이너스였다. 그럼에도 구단과 팬들의 기대치는 여전히 높았다. 게다가 1월 중순 무려 5연패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코치는 ‘준비된 지도자’였다. 실의에 빠진 선수들과 함께 6시간 동안 마라톤 미팅을 가졌다. 모래알 같던 선수들에게 개인 희생과 팀플레이의 중요성, 경기에 이기는 방법 등을 놓고 토론하며 공감대를 높이고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선수들의 푸념이 터져나올 정도로 강도높은 체력 훈련도 소홀하지 않았다. 시즌 후반기에는 탄탄한 체력에서 집중력과 실력이 나오는 것임을 꿰뚫어본 포석이었다.
●“선수들 마음 읽는 지도자 되고파”
이 코치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시즌 상대전적 2승5패로 열세였던 KT&G를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으로 깨트렸고, 챔피언전에서는 상대전적 1승6패의 흥국생명까지 1패 뒤 3연승으로 꺾었다.
우승의 감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이 코치의 머릿속은 벌써 다음 시즌에 닿아 있다. 그는 3일 브라질행 비행기에 올라탔다.15일 귀국하기 전까지 브라질리그 플레이오프 등을 둘러보면서 다음 시즌 외국인 용병 선수를 물색하기 위해서다. 또한 오는 5월 올림픽 예선도 둘러보고, 신인드래프트를 위해 국내 고교대회도 살펴볼 계획이다.
“선수 시절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배구가 제가 추구하는 배구입니다. 감독으로서도 인정받고 싶습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이성희는 누구
▲생년월일 1967년 9월26일 ▲체격조건182㎝,73㎏ ▲출신학교 제천 광산고-서울시립대 ▲주요 경력 87∼88년,93∼98년 국가대표/90∼98년 고려증권/99∼2000년 독일 바이에르/2001∼2002년 대한항공/2002년 6월∼2003년 4월 현대건설 코치/2003년 5월∼현재 GS칼텍스 수석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