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결국 한국을 겨냥한 부메랑이 돼 부활했다.
안현수는 10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샤를 아믈랭(캐나다), 한톈위(중국)에 이어 3위에 올라 동메달을 차지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1,000m와 1,500m, 3,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이룬 지 8년 만에 다시 시상대에 올랐다.
안현수는 여전히 국내 쇼트트랙 지도자들이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1순위로 거론하는 주인공이다.
탁월한 순발력과 스케이팅 기술에 더해 지칠 줄 모르는 체력까지 결합한 ‘완성형 선수’가 안현수였다.
재능을 타고난 그는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데 이어 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내 쇼트트랙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올림픽에서 전 종목 시상대에 선 선수가 됐다.
이 밖에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전무후무한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5연패를 달성하는 등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전후한 2000년대 중반의 빙판은 안현수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한국 쇼트트랙은 전무후무한 스타를 끝까지 품지 못했다.
토리노 대회 당시에도 한국 빙상계를 뒤흔든 ‘파벌 훈련’의 풍파 속에서 경기를 치른 안현수는 2009년 훈련 도중 무릎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겪었다.
이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얻지 못하는 과정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불화가 점점 깊어졌다.
급기야 2011년에는 소속팀인 성남시청이 해체되는 날벼락까지 맞았다.
결국 안현수는 고민 끝에 그해 러시아 국적을 취득, 러시아 선수 ‘빅토르 안’으로 새 출발 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파벌’로 상징되는 한국 빙상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결국 안현수를 러시아로 내몰았다는 평가가 많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건너갈 때만 하더라도 일부 빙상인들은 “부상 전력 탓에 부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012-2013시즌 귀화 후 첫 월드컵을 무난히 치른 데 이어 올 시즌에는 500m 종합 1위에 오르는 등 개인전에서만 8개의 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어 자신의 목표로 삼던 소치올림픽의 첫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하면서 여전한 실력을 보여줬다.
체력의 문제 탓에 개인전 중 가장 약한 편이라던 1,500m에서 메달까지 획득한 만큼, 안현수는 남은 500m와 1,000m 등에서도 추가 메달 획득이 가능해 보인다.
안현수는 특히 올 시즌 월드컵에서 500m 종합 선두를 달리는 최강자다.
”러시아”를 연호하는 홈 관중 앞에서 2006년 토리노 못지않은 거침없는 메달 행진을 벌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선수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큰 부상을 겪은 선수가 시련을 딛고 일어선 과정은 감동적이다.
특히 그 주인공이 한국이 낳은 슈퍼스타라는 사실은 많은 팬들을 반갑게 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 쇼트트랙은 스스로 배출한 선수를 지키지 못한 채 ‘남의 자식’이 돼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남자 1,500m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목표가 좌절된 한국 쇼트트랙은 500m와 1,000m에는 한 명 적은 두 명의 선수밖에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탓에 전망이 더 어두운 형편이다.
연합뉴스
환호하는 빅토르 안
10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플라워세리머니 시상대에 올라서며 두팔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플라워세리머니 시상대에 올라서며 두팔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1,000m와 1,500m, 3,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이룬 지 8년 만에 다시 시상대에 올랐다.
안현수는 여전히 국내 쇼트트랙 지도자들이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1순위로 거론하는 주인공이다.
탁월한 순발력과 스케이팅 기술에 더해 지칠 줄 모르는 체력까지 결합한 ‘완성형 선수’가 안현수였다.
재능을 타고난 그는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데 이어 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내 쇼트트랙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올림픽에서 전 종목 시상대에 선 선수가 됐다.
이 밖에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전무후무한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5연패를 달성하는 등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전후한 2000년대 중반의 빙판은 안현수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한국 쇼트트랙은 전무후무한 스타를 끝까지 품지 못했다.
토리노 대회 당시에도 한국 빙상계를 뒤흔든 ‘파벌 훈련’의 풍파 속에서 경기를 치른 안현수는 2009년 훈련 도중 무릎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겪었다.
이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얻지 못하는 과정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불화가 점점 깊어졌다.
급기야 2011년에는 소속팀인 성남시청이 해체되는 날벼락까지 맞았다.
결국 안현수는 고민 끝에 그해 러시아 국적을 취득, 러시아 선수 ‘빅토르 안’으로 새 출발 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파벌’로 상징되는 한국 빙상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결국 안현수를 러시아로 내몰았다는 평가가 많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건너갈 때만 하더라도 일부 빙상인들은 “부상 전력 탓에 부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012-2013시즌 귀화 후 첫 월드컵을 무난히 치른 데 이어 올 시즌에는 500m 종합 1위에 오르는 등 개인전에서만 8개의 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어 자신의 목표로 삼던 소치올림픽의 첫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하면서 여전한 실력을 보여줬다.
체력의 문제 탓에 개인전 중 가장 약한 편이라던 1,500m에서 메달까지 획득한 만큼, 안현수는 남은 500m와 1,000m 등에서도 추가 메달 획득이 가능해 보인다.
안현수는 특히 올 시즌 월드컵에서 500m 종합 선두를 달리는 최강자다.
”러시아”를 연호하는 홈 관중 앞에서 2006년 토리노 못지않은 거침없는 메달 행진을 벌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선수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큰 부상을 겪은 선수가 시련을 딛고 일어선 과정은 감동적이다.
특히 그 주인공이 한국이 낳은 슈퍼스타라는 사실은 많은 팬들을 반갑게 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 쇼트트랙은 스스로 배출한 선수를 지키지 못한 채 ‘남의 자식’이 돼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남자 1,500m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목표가 좌절된 한국 쇼트트랙은 500m와 1,000m에는 한 명 적은 두 명의 선수밖에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탓에 전망이 더 어두운 형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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