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첫 연설도 할아버지 스타일…빨치산·기마부대 등장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인 15일 오전 평양 중심부인 김일성광장에서 김 주석 생일을 경축하는 대규모 군 열병식을 거행했다.열병식에 앞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축하 연설이 있었다. 김 1위원장의 육성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1위원장은 20분 가까이 연설했는데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 위원장의 육성이 북한 주민에게 공개된 것은 한 번뿐이다. 1992년 4월25일 인민군 창군 60돌 경축 열병식에 앞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에게 영광이 있으라”는 단 한마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된 김 위원장의 육성이었다.
김 1위원장의 목소리도 부친과 달랐다. 김 위원장은 높은 톤에 칼칼한 목소리였지만, 김 1위원장은 낮은 톤에 차분해 할아버지 김 주석을 떠올리게 했다.
김 위원장의 은둔형 리더십과는 달리 김 1위원장은 할아버지의 친화형 리더십을 닮으려고 애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주석은 북한 주민 앞에서 신년사를 비롯한 공개연설을 자주 했으며 현지지도를 가도 주민과 팔짱을 끼는 등 스스럼이 없었다.
김 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에서는 부친인 김 위원장 때와 달리 군부대 지휘관이나 그의 부인들이 김 1위원장의 팔짱을 자연스레 끼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김 1위원장은 첫 등장 때부터 할아버지가 즐겨 입던 검은색 인민복을 입었고 헤어스타일이나 걸음걸이도 할아버지를 많이 흉내내고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위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한 주민의 존경과 숭배를 더 많이 받는 김 주석의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5일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서도 김일성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됐다.
항일빨치산 부대 군복 차림의 열병 종대가 등장하는가 하면 북한 열병식 사상 처음으로 기마종대까지 등장했다. 기수들은 만주벌판의 흰눈을 연상케 하는 흰색의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또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한 군부 최고 수장과 열병지휘관 최부일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 고위 장성들은 이날 흰색의 군복(행사용 예복)을 입고 등장했다.
이는 김정일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김 주석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직후 평양에서 열린 ‘전승열병식’에 흰색의 원수복(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당시 최용건, 남일 등 북한의 장군들도 흰색 군복 차림이었다.
이처럼 김 1위원장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북한 주민들 속에 김일성 시대의 ‘좋은’ 추억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려고 한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김 1위원장은 이미지만 할아버지(김일성)를 연출했을 뿐 통치방식에서는 ‘선군’을 강조하고 인민군을 앞세운 부친(김정일)의 방식을 답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날 연설에서 김 1위원장은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자주’ ‘선군’을 강조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나이가 어린 김정은이 청년 시절에 최고 지도자가 된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것 같다”며 “하지만 정책적으로는 김정일의 유훈통치를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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