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편견과의 전쟁…대기업 여성 임원 김민주씨의 분투기

[커버스토리] 편견과의 전쟁…대기업 여성 임원 김민주씨의 분투기

입력 2013-02-16 00:00
수정 2013-02-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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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포기 새벽잠 잊었다 하이힐은 유리천장 그렇게 뚫었다…23년의 낮과 밤을

서울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김민주(여·가명)씨는 25살이 되던 1990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공채로 합격했다. 여성이 거의 없는 회사에서 어디를 가나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했다. 입사의 기쁨도 잠시, “미스 김, 커피 좀 타오지”라는 말에 자존심이 구겨졌다. 그러나 웃으며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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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회식과 야근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회식 첫날에는 폭탄주 5잔에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악으로 버텼다. 회식에서 빠진 다음 날에는 온종일 박해진(가명) 과장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입사 4년차에 결혼했다. 신혼 초 임신을 하면서 입덧에 시달렸지만 악착같이 일했다. 잠시 휴직이나 연차휴가를 내고 싶었지만 복직이 제때 안 되는 여선배들을 보며 마음을 접었다. “애 낳는 게 유세냐” “역시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 “개인주의가 심하다” 등의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출산 휴가 한 달 만에 복직했다. 회사에는 수유실이나 육아시설이 없었다. 아이 울음에 새벽잠을 함께 설쳤던 맞벌이 신랑도 점점 지쳐갔다. 결국 둘째 아이를 포기했다. 비로소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입사 23년 만인 48살, 마침내 대기업의 임원이 됐다. 여성 임원 할당제 소리가 들리지만 김씨는 내키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들의 역차별에 공감이 간다. 기회가 공정하지 않으면 여성 특혜, 자격 미달 등 또 다른 논란이 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과소평가되는 건 더더욱 사양이다. 김씨는 우리나라 여성이 입사해서 임원이 되기까지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국내 30대 기업 가운데 10곳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신문이 15일 30대 대기업집단(그룹·공기업 제외)의 여성 임원 현황을 파악한 결과, 그룹 회장의 딸 등 오너 일가를 제외한 여성 임원은 전체 임원 9150명 가운데 1.4%인 131명에 불과했다.

업종별 특성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은 현대중공업, STX, LS, 대우조선해양, 대림, 현대, 에쓰오일, 부영, 대우건설, 동국제강 등 10곳이었다. 여성 임원(공채 기준)이 되는 데는 평균 23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20대 기업집단 경영권 승계보고서’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1.2년이었다.

현직 여성 임원 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85.1%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임원이 되는 것은 힘들다’고 밝혔다. 특히 공채 출신으로 여성 임원이 된 경우는 응답자 가운데 12명(25.5%)에 불과했다. 그러나 공공기관 여성 임원 30% 의무할당제를 민간 기업에 도입하는 데는 57.4%가 ‘필요하지 않다’며 반대했다. 여성 임원 할당제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발에 대해서도 57.4%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2013-02-1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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