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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우크라·美… 모두와 싸우는 푸틴 “레드라인 넘지 말라”

나발니·우크라·美… 모두와 싸우는 푸틴 “레드라인 넘지 말라”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21-04-22 20:54
업데이트 2021-04-2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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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연설서 드러난 스트롱맨 ‘폭주’

“러 공격이 새 스포츠냐” 나토 제재 직격
ICBM 등 과시 “비대칭적 대응” 으름장
러 전역선 나발니 석방시위… 1500명 체포
“국내 장악력 약화 징후… 편집증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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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지 말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간) 연례 국정연설을 관통하는 한마디다. 21년째 러시아를 통치 중인 푸틴은 최근 부쩍 거세진 국내의 반정부 시위, 수위를 높여 가는 서방의 제재에 맞서 ‘레드라인’이란 거친 표현까지 써 가며 경고했다. 국내 인기는 떨어졌고 서방엔 ‘악당’ 취급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러시아의 공권력을 완전히 통제하며 국내 시위와 서방의 경고를 힘으로 제압 중인 푸틴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연설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은 총평했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시내 ‘마네슈 전시홀’에서 한 국정연설에서 푸틴은 밀림 생태계를 그린 영국 소설 ‘정글북’에 빗대 서방을 비난했다.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는 미국을 정글북의 호랑이인 시어칸으로, 역시 제재 수위를 높여 가는 미국의 동맹들을 시어칸에게 아첨하는 승냥이인 타바키로 칭했다. 시어칸은 정글북의 주인공인 인간 아이 모글리를 싫어해 온갖 음모를 꾸미는 악당이다.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적 행동을 멈추지 않으며, 일부 국가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러시아를 건드린다”면서 “누가 더 크게 떠드는지를 겨루는 새로운 종류의 스포츠처럼 됐다”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제재를 직격했다.

이어지는 연설에서 푸틴은 러시아의 무력을 잔뜩 과시했다. 그는 전략폭격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잠수함을 포함하는 핵전력 현대화율이 올해 88%를 넘어서고 러시아의 차세대 ICBM인 사르맛,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칼리브르 순항미사일로 무장한 군함이 순차적으로 배치될 것이라며 군사 관련 사항들을 열거한 뒤 러시아가 ‘비대칭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틴은 “우리는 (교류의) 다리를 불태우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가 우리의 선의를 무관심이나 나약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러시아의 대응이 비대칭적이고 신속하며 단호한 것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거나 “누구도 러시아를 상대로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으려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라며, 어디가 (레드라인의) 경계인지는 구체적 상황마다 우리가 직접 결정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나발니 석방을”
“나발니 석방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례 국정연설이 있었던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에 운집한 반정부 시위대가 휴대전화 불빛을 들어 올리며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AP통신은 러시아 전역 82개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진압 과정에서 1492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AP 연합뉴스
푸틴은 이처럼 연설에서 20년 넘게 한결같은 ‘스트롱맨’(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문제는 그가 언급한 ‘레드라인’이 너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날 러시아 전역의 80여개 도시에선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진압 과정에서 체포된 인원만 1496명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 저항 시위였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푸틴이 연설하는 동안 모스크바에서만 경찰 추산 6000명, 시위대 추산 6만명이 경찰의 봉쇄를 피해 광장을 옮겨 가며 시위에 나섰다. 푸틴이 러시아를 통치하던 기간 전례 없이 큰 규모로 벌어지는 최근의 시위들이 푸틴의 국내 장악력 약화 징후를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방의 제재 압박은 푸틴의 통제 범위를 더욱 벗어난 영역이다. 이달 초부터 러시아는 7년 동안 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역에 10만명 이상의 병력과 전투기를 집결시키는 중인데, 이에 대해 NYT는 최근 기사에서 “푸틴의 최근 행동은 그를 비판하는 이들과 외부 세계를 향한 편집증 같다”고 혹평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을 무력으로 이뤄 낸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추가로 얻을 군사적 실익이 크지 않은 데 비해, 2014년 합병도 승인하지 않고 있는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할 추가 명분만 키우는 군사적 행동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뒤 근처인 돈바스 지역에선 친러시아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선언, 지금까지 국지전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이나 2014년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된 체코 지역 무기고 폭발사건은 푸틴이 사실상 조사 대상이 된 사건들이다. 체코는 7년간의 조사 끝에 무기고 폭발사건을 러시아의 국가테러로 규정, 지난 17일 18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 체코의 추방 조치 다음날 러시아도 모스크바 주재 체코대사관 직원 20명을 국외 추방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러시아 개입 증거를 제시하는 체코에 대응하기 위해 푸틴이 쥔 카드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체코가 선을 넘었다”고 분노하는 것 외에 많지 않은 형국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21-04-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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