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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때 수갑 채워졌던 미국 흑인 소녀 3년 뒤 코로나19에

11세 때 수갑 채워졌던 미국 흑인 소녀 3년 뒤 코로나19에

임병선 기자
입력 2020-11-26 08:37
업데이트 2020-11-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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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때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던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의 소녀 아니스타 호지스. 3년 뒤인 지난 22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감염돼 14세 짧은 삶을 마쳤다. 가족 제공
열한 살 때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던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의 소녀 아니스타 호지스. 3년 뒤인 지난 22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감염돼 14세 짧은 삶을 마쳤다.
가족 제공
열한 살 때 미국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사진이 공개돼 신문의 1면을 일제히 장식했던 흑인 소녀가 코로나19로 14세 짧은 생을 마쳤다.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 사는 아니스티 호지스가 비운의 주인공. 할머니 앨리사 니어메이어가 고펀드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손녀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헬렌 드보스 아동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딸 휘트니가 아니스티를 돌보고 다른 네 자녀를 키우느라 힘겨워 한다며 도와달라고 모금 페이지를 개설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9일 아니스티는 위장에 심각한 통증을 호소했다. 하필 생일 날이었다.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상태가 나빠져 앰뷸런스에 실려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며칠 동안 수혈도 받았는데 합병증이 늘었다. 14일 산소호흡기를 채웠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2017년 12월 6일 엄마, 가족들과 가게에 다녀온 아니스티는 집의 뒷문으로 들어가려다 총을 겨눈 경관들과 맞닥뜨렸다. 경관들은 “손들어”라고 명령했고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그 애는 열한 살이야, 경관님!”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경관이 “그만 소리 질러”라고 얘기했는데 그의 몸에 지닌 카메라가 녹화하고 있었다. 그는 아니스티에게 손을 든 채 뒷걸음질을 해 자신에게 오라고 했다.

다른 경관이 그 아이 어깨를 잡더니 뒤로 제치면서 수갑을 채웠다. 아니스티는 “안돼, 안돼, 안돼!”라고 외쳤고, 수갑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경관들은 흉기 난동을 부린 40세 여성을 찾는 중이었다며 몇 분 뒤에야 수갑을 풀어줬다.

당연히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다. 그랜드 래피즈 경찰에 질타가 쏟아졌다. 당시 경찰서장 데이비드 라힌스키는 기자회견 도중 “열한 살 소녀의 반응에 귀기울이는 것을 보니 속이 뒤틀린다. 욕지기가 올라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은퇴했다. 당시 어떤 경관도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이 경찰서는 같은 해 3월에도 다섯 무고한 10대들을 총을 겨눈 채 체포해 비슷한 비난을 들었다.

아니스티는 “그랜드 래피즈 경찰에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백인 소녀가 이런 일을 당하고, 그 엄마가 열한 살짜리라고 소리를 지르면 수갑을 채워 경찰 차 뒷칸에 않힐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듬해 3월 이 경찰서는 “아니스티 정책”을 채택했는데 청소년들을 다룰 때 가장 덜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총구를 겨눈다든가 하는 더 심한 사건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지난 여름에는 아니스티와 가족들이 경찰과 수갑 사건에 대해 법정 밖 화해를 했다고 현지 방송이 전하기도 했다.

이 주의 보건부 대변인은 아니스티가 이 주에서 숨진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사망자가 아니라고 전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로 목숨을 잃는 어린이는 많지 않지만 흑인과 히스패닉 어린이들은 백인에 견줘 입원하거나 중환자실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정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어떤 기저질환도 없었다면서 “그녀는 언젠가 부통령, 어쩌면 대통령도 될 수 있었다. 세상이 그녀를 위해 활짝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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