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22차례 정책을 내놓는 동안 집값은 더 뛰었고 전셋값은 아예 날았다. 비규제 지역 풍선효과 막는다고 전국 대부분을 규제 지역으로 묶어 ‘섬 빼고 다 규제’라는 말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시장의 한 축인 건설사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과 제언을 국내 10위권 건설사 10곳의 마케팅 담당자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해 20일 들어 봤다.
‘집값이 왜 안 잡힐까’란 질문에 건설사 10곳 중 절반(중복 가능)은 “그놈의 규제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출은 조이고 세금은 더 물리는 ‘규제 남발’로 집을 사기도 팔기도 어렵게 만든 까닭에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대책 나오면 두 달 후 집값 뛴다”는 말이 공식처럼 돈다는 것이다. 규제 학습효과로 내성과 가격 상승에 대한 확신이 생겨 수요자가 더 몰린다는 얘기다.
집값 상승 두 번째 이유로 건설사들은 ‘공급부족’(4표)을 꼽았다. 독신·노령층 등 1인 가구와 ‘좋은 집’에 살고 싶은 희망 수요층은 계속 증가하는데 정작 거주 선호도가 높은 서울 및 수도권의 신규 공급은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임대사업자 혜택 폐지, 세제 부담 등으로 인한 매물 잠김’(2표)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출규제 등으로 ‘지금 아니면 집 못 산다’는 인식(1표)이 퍼진 데다 ‘핀셋규제’로 유동자금이 비규제 지역으로 쏠려 나타난 풍선효과 때문(1표)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B건설사는 “정부는 서울에 빌라나 오래된 재고 아파트를 포함해 집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수요자들이 원하는 신축 아파트는 공급이 거의 중단됐다”면서 “재건축·재개발 수혜자들의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며 내놓은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정책을 완화해 조합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고, 용적률을 상향해 일반분양 공급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C건설사는 “정비사업 시 복잡한 인허가 단계를 간소화하고 민간주택 분양가를 시장 가격에 맡겨 사업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면 공급은 자연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잇따른 규제책 여파가 집값 상승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규제완화책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건설사들은 대부분 ‘대출규제’와 ‘거래세 완화’를 꼽았다. 투기 세력을 잡겠다고 실수요자에게까지 대출규제를 적용한 만큼 선량한 실수요자가 분양 또는 매수할 수 있는 사다리만큼은 부활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는 집값 9억원 이하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40%다. 무주택자나 서민에겐 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산세 같은 보유세가 강화된 시점에서 거래세인 양도세 완화로 퇴로만 열어 줘도 매매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곳도 다수였다. C건설사도 “임대주택과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을 풀도록 양도소득세 같은 거래세를 낮춰 거래절벽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반기 집값 전망’을 물었더니 건설사 10곳 중 50%가 ‘보합’이라고 응답했다. 기존 주택은 보유세, 거래세 강화 등 세금 이슈로 거래가 안 돼서 집값이 약간 내릴 수 있고 당장 대규모 신규 공급도 없어 5년 이내의 신규 주택 가격은 상승할 테니 종합적으로 보면 약보합으로 현재 집값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소폭 상승할 것’이란 응답이 3표로 2위였다.
‘그럼 내 집 마련 골든타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10곳 중 절반인 건설사 5곳은 ‘2021년 상반기에 사라’고 조언했다. 양도세 중과세가 2021년 6월까지 시행이 유예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한 매물이 내년 상반기에 많이 나올 수 있어서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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