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 듯 글씨인 듯… ‘서예의 진화’ 90분 영상에 담다

입력 : ㅣ 수정 : 2020-03-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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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선공개 ‘미술관에 書’
국립현대미술관 첫 서예전
격동기 거친 1세대 12인부터
캘리그래피 등 현대서예까지
한국서예가 걸어온 길 한눈에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초의 서예전인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정면에 보이는 작품은 초정 권창륜의 대작 ‘적선지가필유여경’(2009)으로 현대서예의 자유로운 조형미를 보여 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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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초의 서예전인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정면에 보이는 작품은 초정 권창륜의 대작 ‘적선지가필유여경’(2009)으로 현대서예의 자유로운 조형미를 보여 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글씨와 그림은 뿌리가 같다’는 서화동원(書畵同原)은 동아시아 전통회화의 근간이었다. ‘서’를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한국은 서예(書藝)라 부른다. 서예란 말은 해방 이후 등장했다. 20세기 한국 서단의 거목인 소전 손재형(1903~1981)이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서도 대신 서예를 주창하면서 대중화됐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문자예술로서 서예의 위상과 정체성 변화를 다각적으로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1년 만에 처음 여는 서예 단독 기획전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다. 미술관이 지난 1년간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전이지만 당분간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긴 어렵다.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0일 오후 4시 미술관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youtube.com/MMCA Korea)에서 영상으로 먼저 공개된다. 전시를 준비한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전시장을 이동하며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90분 분량 영상이다. 원래 덕수궁관에서 이달 12일부터 6월 말까지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미술관 잠정 휴관이 길어지면서 대안으로 온라인 선공개를 택했다.

전시는 근현대 시기 한국 서예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보도록 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등 격동기를 거치며 전통서예와는 다른 서예의 변화를 이끌어온 1세대 서예가 12인을 집중 조명하고, 이들의 뒤를 이은 2세대 서예가들의 장르 융합적 실험에 주목하는 한편 캘리그래피 등 디자인적인 측면이 강조된 21세기 서예문화까지 두루 훑는다. 서예와 전각뿐 아니라 회화, 조각, 도자, 미디어아트, 인쇄 매체 등 300여 작품과 자료 70여점을 선보인다.
효봉 여태명의 ‘천天·지地·인人’(1999). 하늘, 땅, 인간의 형상을 한자가 아닌 상징으로 형상화해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나아가는 변화를 드러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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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봉 여태명의 ‘천天·지地·인人’(1999). 하늘, 땅, 인간의 형상을 한자가 아닌 상징으로 형상화해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나아가는 변화를 드러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는 4부로 구성됐다. 1부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에선 현대미술과 서예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는지 조명한다. “미술관에서 왜 서예전을 할까”라는 의문에 답하는 프롤로그 격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현대적 문인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환기의 시화 작품 ‘항아리와 시’(1954), 서체를 추상회화의 요소로 활용한 남관의 ‘흑과 백의 율동’(1981), 서체추상에 기반한 김종영과 최만린의 조각 작품 등이 전시됐다.

2부 ‘글씨가 그 사람이다’는 소전 손재형을 비롯한 근현대 1세대 서예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해 ‘소전체’를 탄생시킨 손재형은 일본인 소장자를 설득해 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를 국내에 들여온 일화로도 유명하다. 서예의 회화성을 중시한 검여 유희강, 한글서예교본을 쓴 갈물 이철경, 고전미와 현대미가 어우러진 한글 서풍을 창출한 평보 서희환의 작품 10여점은 처음으로 공개됐다.

3부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에선 국전 1세대에게 교육을 받았던 2세대 서예가들 사이에 일어난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붓과 먹의 역동성을 살린 황석봉의 ‘선상에서 1, 2’(2018), 고대 금문을 현대적인 조형으로 재해석한 박원규의 ‘공정’(2020) 등 문자의 가독성보다 이미지에 집중해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변화를 모색한 결과가 흥미롭다. 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는 2000년대 이후 상업 광고 등을 통해 급부상한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현대 서예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코로나19로 미술관 직접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온라인 중계로 만나는 서예전이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술관 휴관은 다음달 5일까지이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재개관 일정은 유동적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0-03-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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