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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육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육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이동구 기자
입력 2020-01-20 18:04
업데이트 2020-01-21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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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단편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부의 사랑과 함께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남편은 아내에게 예쁜 머리핀을 선물하기 위해 소중히 간직해 오던 시계를 팔고, 아내는 남편의 시계에 잘 어울리는 근사한 시곗줄을 선물하기 위해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을 잘라 판다.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렸지만 뜻밖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애틋한 사랑은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로 기억되고 있다.

선물은 상대방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거나 축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국가나 조직, 개인 간의 예를 표하는 의미에서 주고받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선물이 지나치면 뇌물이 되거나 화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꽃 선물은 인류의 공통점이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할 리 없다. 하지만 색깔에 따라 호불호는 달라진다. 흰색의 국화나 백합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물로 사용하지 않는다. 멕시코인들은 장미꽃이라고 해도 노란색은 싫어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흰색과 함께 파란색, 검은색도 꽃이나 옷, 포장지 등에 사용치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 장례식 등을 연상시켜 일상사의 선물로는 부적절하다고 여긴다.

종교·문화적인 차이로 금기시되는 선물은 부지기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소나 돼지와 관련된 가죽제품 등을 선물하는 것은 결례로 통한다. 남미인이나 일본인에게 칼을 선물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단절, 자살의 의미가 있다며 선물로 주고받기를 금기시한다. 새 사업을 시작한 중국인 친구에게 괘종시계를 선물하면 욕을 먹는다고 한다. 종은 ‘끝내다, 망하다, 죽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선물은 상대방의 문화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본래의 취지를 크게 곡해할 수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교계에 전하려던 설 선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육식을 금하는 불교계에 소고기 등을 말린 육포를 선물한 것이 화근이 됐다. 지난 17일 서울 견지동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등에 설 선물로 황 대표 명의로 포장된 육포가 배송된 것. 해명과 함께 육포는 급히 회수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대표가 지난해 5월 ‘부처님오신날’에 홀로 불교식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 불교계 홀대 논란 등을 일으킨 적이 있어 이번 소동을 지켜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 “세심한 주의와 배려라는 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yidonggu@seoul.co.kr
2020-01-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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