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살인이 부른 ‘나비효과’… 홍콩, 中 일국양제에 반기 들다

입력 : ㅣ 수정 : 2019-12-0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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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사이트] ‘찬퉁카이 사건’이 불댕긴 민주화 열망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계기가 돼 거대한 역사가 만들어질 때가 있다. 이른바 ‘나비효과’다.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찾아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에게 18세 청년이 총격을 가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시작됐다. 2011년 4월 미국 백악관 연례만찬 행사에서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청중으로 온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에게 공개망신을 주자 이에 앙심을 품은 트럼프가 2016년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지금 소개하려는 ‘찬퉁카이 사건’도 중국의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원칙을 크게 흔들고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바꿔 놓은 ‘역사의 방아쇠’로 기억될 것 같다. 9일로 정확히 6개월이 된 홍콩 시위 사태의 원인을 설명하는 프리퀄(본편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과거의 이야기)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 시위 사태 6개월을 맞은 지난 8일 시민 80여만명이 거리 집회에 참여한 가운데 한 시위자가 저항의 상징인 ‘가이포크스’ 가면을 뒷머리에 쓰고 ‘광복홍콩, 시대혁명’(홍콩에 자유를, 이 시대에 혁명을)이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 홍콩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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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시위 사태 6개월을 맞은 지난 8일 시민 80여만명이 거리 집회에 참여한 가운데 한 시위자가 저항의 상징인 ‘가이포크스’ 가면을 뒷머리에 쓰고 ‘광복홍콩, 시대혁명’(홍콩에 자유를, 이 시대에 혁명을)이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
홍콩 로이터 연합뉴스

●사법권 못 미치는 대만 사건 발생… 기소 불가

지난해 2월 8일 중국 광둥성 선전 출신의 홍콩인 찬퉁카이(21)가 동갑내기 여자친구 판샤오잉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대만이었다. 판샤오잉은 열흘쯤 뒤인 17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왓츠앱을 통해 “홍콩으로 돌아간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전 세계를 소용돌이에 빠뜨린 거대한 태풍의 시작이었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그때 두 사람은 타이베이의 한 호텔 방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판샤오잉은 임신 중이었는데, 뱃속 아이 아빠가 자신이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을 찬퉁카이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이 화근이 됐다. 판샤오잉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으로 새 남자친구의 존재를 확인해 준 뒤 “이 지경까지 왔으니 헤어지는 게 낫겠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이에 격분한 찬퉁카이가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하고 판샤오잉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는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담아 숙소를 빠져나왔다. 타이베이의 한 지하철역 부근 공원 풀밭에 암매장하고 재빨리 홍콩으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판샤오잉의 신용카드로 돈을 찾아 자신의 은행계좌로 입금했다. 딸과 연락이 되지 않자 판샤오잉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다. 찬퉁카이는 곧바로 체포됐고 범행 사실도 순순히 인정했다. 이 사건은 ‘단순 치정살인’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미법을 채택한 홍콩은 영역 내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속지주의’를 유지한다. 홍콩 당국 입장에서 찬퉁카이의 죄는 천인공노할 사안이지만 자신들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대만에서 벌어져 기소가 불가능했다. 다른 나라들과 그랬던 것처럼 미리 대만과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었다면 찬퉁카이를 송환하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은 대만과 이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대만과 정치·법률 분야에서 공조하면 대만을 보통국가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베이징 당국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찬퉁카이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 대만 정부가 그에 대한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하지만 홍콩 당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아 송환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무리를 해 가며 반중 성향인 대만 정부를 도울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속내도 깔렸었다.
지난 3일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정부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홍콩 사태 장기화 해결 방안 등을 묻는 질문에 답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홍콩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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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정부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홍콩 사태 장기화 해결 방안 등을 묻는 질문에 답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홍콩 AFP 연합뉴스

●2047년 이후, 공포에 떨고 있는 홍콩 시민들

같은 해 4월 홍콩 사법당국은 찬퉁카이에 대한 살인 혐의 적용을 포기했다. 대신 여자친구의 카드로 돈을 인출한 것에 대해서만 절도죄 등을 적용해 29개월형을 선고했다. 그나마도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모범수로 복역했다는 점을 들어 18개월로 감형했다. 그는 올해 10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평생을 감옥에서 지낼 것 같던 찬퉁카이에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홍콩 정부는 “제2의 찬퉁카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1년 가까이 지난 올해 2월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개정에 착수한다고 선언했다. 홍콩 주민이 상대국법으로 징역 3년 이상 실형이 예상되는 범죄를 저지르면 용의자 송환 여부를 판단하는데, 대만처럼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지역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홍콩 행정장관이 결정하게 한 것이 골자다.

여기서 논란이 불거졌다. 행정장관 직권으로 용의자 송환 여부를 정할 수 있는 지역에 대만뿐 아니라 중국 본토도 포함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홍콩에 있는 반중 인사들에 대해 반분열국가법(우리의 국가보안법에 해당) 위반 혐의를 적용해 합법적으로 송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안 그래도 홍콩인들은 중국이 광범위한 자치를 약속한 시한인 2047년 뒤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두려움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반체제 서점 관계자 실종(2015)과 샤오젠화 밍톈그룹 회장 실종(2017) 등 중국 공권력에 의한 납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공포가 상당하다. 홍콩인들에게 송환법은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으로 정치범을 쉽게 보내려는 법으로 여겨졌다.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가 치러진 뒤 주말 시위가 다시 시작된 지난 1일 홍콩 경찰이 범민주 진영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등을 쏘고 있다. 홍콩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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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가 치러진 뒤 주말 시위가 다시 시작된 지난 1일 홍콩 경찰이 범민주 진영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등을 쏘고 있다.
홍콩 AP 연합뉴스

●확산되는 반중 시위… 전 세계 정치지형 변화

홍콩 정부는 범민주 진영의 반발에도 입법을 강행했다. 3월 9일 이 법안이 입법회(우리의 국회 격)에 제출됐다. 여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을 비롯한 친중파 의원들은 이 법안을 무조건 통과시키려고 나섰다. 민주당과 공민당 등 야당 의원들은 결사적으로 이를 막았다. 70명으로 이뤄진 홍콩 입법회에서 친중파(41석)는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범민주 진영(29석)의 반대를 무시하고 5월 26일 이 법안을 법사위원회에 올려 가결했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형식적 통과 절차만 거치면 곧바로 법이 발효될 순간이 왔다. 이때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되레 정상적인 사법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중국 본토로 내보내려 한다는 배신감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후부터는 잘 알려진 그대로다. 6월 9일 홍콩 시민들이 첫 번째 거리 시위를 열었다. 100만명이 넘게 참석했다. 이후 주말 시위는 6개월째 이어지며 홍콩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놨다. 지난달 24일 범민주 진영은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에서 85%가 넘는 의석을 가져오며 사상 처음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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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성향이 우세하던 홍콩의 시민들은 완전히 돌아섰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중국과의 전쟁’은 2047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도 이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대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2016년 1월 당선 뒤로 정책 미숙 등으로 내년 1월 총통 선거 패배가 확실시돼 왔다. 하지만 홍콩 시위 사태를 계기로 대만에서도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이변이 벌어졌다. 불과 몇 달 만에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올라 대선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됐다. 이제 대만에서 ‘반중’은 국시가 됐다.

이런 분위기는 최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안)을 통과시켰다. 내친김에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신장 위구르 인권법과 티베트 인권법도 제정할 모양새다. 인권 문제를 고리 삼아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다. 한 20대 커플의 애정여행이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전 세계를 ‘친중 대 반중 구도’로 재편하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전 세계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9-12-1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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