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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한국 혁신 생태계서 기술 사업화 가장 취약… 인수합병 시장 키워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한국 혁신 생태계서 기술 사업화 가장 취약… 인수합병 시장 키워야”

장세훈 기자
입력 2019-11-14 17:16
업데이트 2019-11-1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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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훈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 - 한국의 혁신 생태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혁신이 화두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건져낼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혁신은 아직 ‘흙 속 진주’에 가깝다. 기대가 큰 반면 여전히 혁신을 가로막는 제약 요인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창업 강국’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벤처캐피탈인 요즈마그룹의 이원재 한국법인장, 국내 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중동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 자금의 운용을 맡은 PIA자산운용의 윤성철 대표로부터 우리나라의 혁신 생태계, 투자 환경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

“한국 혁신 생태계서 기술 사업화 가장 취약… 인수합병 시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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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
“한국의 혁신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인수합병(M&A) 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법인장은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지원의 초점이 연구개발(R&D)에서 기술 사업화로 옮겨 가야 할 때”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첫째도 인공지능(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이례적으로 개발자 행사인 ‘네이버 데뷰 2019’에 참석해 “올해 안에 AI 국가전략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왜 AI인가.

“현재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융합’이다. AI는 융합을 이끌어 내는 ‘엔진’과 같다. 즉 4차 산업혁명의 성장동력이 AI라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 분야를 포함한 한국의 혁신 생태계를 평가한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1, 2위를 다툰다. 그러나 R&D라는 인풋이 아닌 기술 사업화라는 아웃풋 측면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달리 한국의 성적표는 저조하다. 차이는 R&D 주도권을 한국은 정부가, 이스라엘은 민간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원하는 R&D를 해야 한다. 좋은 기술을 갖고도 창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한국의 혁신 생태계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뜻인가.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기업들의 서비스나 제품 상당수는 한국에서 먼저 출시됐다. 싸이월드(페이스북), 판도라TV(유튜브), 다이얼패드(스카이프), 아이리버(아이팟)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검색을 무기로 한 네이버도 구글보다 1년 먼저 등장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차량용 내비게이션인 ‘김기사’는 카카오에 650억원에 팔린 반면 이와 유사한 이스라엘의 ‘웨이즈’는 구글에 1조 2000억원에 팔렸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미운 오리 새끼’와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 백조가 될 수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사업화가 절실한 이유다. 전 세계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 진출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현재 한국에는 자금줄 역할을 해 줄 다양한 벤처캐피탈이 있는 반면 사업화를 도울 액셀러레이터는 부족해 이 부문을 키워야 한다.”

-한국의 혁신 생태계에서 기술 사업화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인수합병(M&A) 활성화다. 이스라엘의 경우 글로벌 기업들의 R&D센터만 400여곳에 이른다. 삼성도 이스라엘에 두 곳의 R&D센터를 두고 있다. 와이즈만 연구소 한 곳만 보더라도 연간 매출이 42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기술 이전에 따른 기술 파생 매출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간판만 R&D센터일 뿐 실제 역할은 M&A센터라는 점이다.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제공하는 트렌드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이다.”

-M&A가 활성화되려면 정부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은 기업 외형을 기준으로 한 규제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대기업이 없다. 역으로 보면 한국은 이스라엘과 달리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공생할 수 있도록 균형만 맞추면 된다. 스타트업에 대한 M&A 시장에서 대기업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손봐야 한다. 특히 한국에는 수많은 중견기업이 있고 이들 역시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혁신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짤 필요도 있다.”

-최근 발간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누적 투자액 상위 100대 스타트업 중 53%는 진입 규제로 한국에서 사업화가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규제라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와야 한다. 규제의 틀에 갇혀서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국내 규제에 좌절할 게 아니라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신기술 분야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

-최근 승차공유업체인 ‘타다’와 택시업계 갈등 과정에서 보듯 혁신가가 규제와 관련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제든 제2, 제3의 타다가 나올 수 있다.

“기술 진보 속도가 빨라 규제개혁 속도가 따르지 못한다. 스타트업들은 규제를 풀어낼 힘도 없다. 규제라는 막힌 하수구를 뚫으려면 적어도 신기술 분야에 대해 로비스트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로비스트 제도가 있다.”

shjang@seoul.co.kr

윤성철 PIA자산운용 대표

“성장세 꺾이는 韓 투자 매력 떨어져… 신산업 더 많은 규제 혁신을”
윤성철  PIA자산운용 대표
윤성철 PIA자산운용 대표
“우리나라의 성장세가 꺾이는 등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현 상황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규제 혁신을 요구한다.”

윤성철 PIA자산운용 대표는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파생될 신산업은 규제와 직결된 문제”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글로벌 투자자 시각에서 한국 시장을 평가한다면.

“삼성, 현대 등 전 세계를 주름잡는 대기업들 때문에 착시 효과가 있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의 위상은 ‘마이너 시장’, ‘서브 마켓’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 외국인 직접투자(FDI)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 정도다. 글로벌 투자자가 투자 대상을 고를 때 한국부터 찾는 경우는 드물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과 비교당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줄어들고 내국인의 해외 직접투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투자의 핵심은 수익이다. 사업가나 투자자는 불편은 감수할 수 있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은 못 참는다. 투자를 이끌어 내는 요인은 크게 봤을 때 사업하기 좋은 환경인가, 성장세가 있는 시장인가 등 두 가지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과거에는 한국에 규제가 많다는 불편은 참을 수 있었다. 성장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성장성이 떨어지는 현 상황은 그래서 좋지 않은 신호다. 중국에 진출했던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국의 투자 매력을 키울 방법은 무엇인가.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 규제를 보는 눈높이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정보기술(IT) 등 3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체질은 이미 상당 부분 개선됐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기본 토대를 갖췄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규제로 인해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나.

“기술력 측면에서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제약 분야 등이 경쟁력이 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창업 환경이 척박한 일본과 비교할 때 스타트업 문화가 활성화돼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제도적 걸림돌은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분석과 이를 활용한 데이터 시장이 새롭게 열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규제에 갇혀 있다. 한국 스타트업이 규제를 피해 해외에서 연구개발(R&D)을 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10개가 배출됐다. 스타트업들은 유니콘 기업을 꿈꾸지만 현실적 한계도 많다.

“지난 6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의 ‘데모데이’ 행사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로 대신한다. 최 회장은 ‘SK는 인수합병(M&A)으로 큰 회사다. 지금도 M&A,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SK가 M&A를 하는 순간 대기업에 편입돼 오히려 성장을 막는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국내 대기업이 해외 기업에는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shjang@seoul.co.kr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9-11-1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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