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정책 패러다임 전환…출산장려→삶의 질 개선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 전환…출산장려→삶의 질 개선

김태이 기자
입력 2018-12-07 13:54
수정 2018-12-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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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 확정…인구구조 변화 맞게 사회시스템 재편

정부가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간 출산율 올리기에 급급하던 데서 탈피해서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성 평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7일 이런 내용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확정, 발표했다.

◇ ‘출산율 1.5명’ 목표 집착 안 해…출생아 수 30만명대 유지에 힘쓰기로

정부는 그동안 출산율이 끝없이 추락하자 이러다간 ‘인구절벽’으로 생산 가능 인력 부족과 소비위축 등으로 경제활력이 떨어져 국가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국민 상대로 경고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3년간 5년 단위로 3차례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으면서 갖가지 출산장려책을 쏟아내며 출산율 제고에 힘썼다.

특히 3차 기본계획(2016∼2020년)에서는 ‘저출산 극복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며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을 달성하겠다며 단호한 저출산 극복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통계청의 ‘2018년 9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출생아 수는 집계 이래 가장 적은 8만400명으로 작년 같은 분기보다 9천200명(10.3%) 줄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보이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3분기 0.95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0.10명 낮아졌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1.68명을 크게 밑돌면서 압도적으로 꼴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세웠다. 전년 1.17명보다 0.12명(10.3%) 급감했다. 합계출산율이 1.1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5년(1.08명) 이후 12년 만이었다. 합계출산율은 1971년 4.54명을 정점으로 1987년 1.53명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초반에는 1.7명 수준으로 잠시 늘었지만 이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미끄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구감소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각종 ‘당근책’을 제시하며 국가 주도로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한다’고 강권하다시피 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유아시설이 부족한 데다, 청년세대가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여성과 청년, 아동 등 정책 수요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저출산 대책의 큰 틀을 바꾸기로 했다.

지난 10월 만 19∼69세 국민 1천명 대상의 ‘저출산·고령사회 관련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반영해서다.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93.0%가 기존의 출산율 목표 달성의 ‘출산장려’ 정책에서 국민의 ‘삶의 질 제고’ 정책으로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에 찬성 의견(매우 33.7%, 찬성하는 편 59.4%)을 나타냈다. 반대 의견은 7.0%에 불과했다.

찬성 응답자들은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일·생활 균형’(23.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주거여건 개선’(20.1%), ‘사회적 돌봄 체계 확립’(14.9%), ‘출산 지원’(13.8%)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80.3%는 현재 자녀 출산·양육을 위한 여건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높은 주택가격과 안정적인 주거 부족’(38.3%), ‘믿고 안심할 만한 보육시설 부족’(18.7%), ‘여성의 경력단절’(14.2%) 등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우선해서 지원해야 할 정책은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및 초등 돌봄 확대’(16.8%),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주거여건 개선’(15.1%), ‘육아휴직·유연근무제 등 근로 지원 정책’(14.8%) 등의 순으로 많았다.

정부는 이런 여론을 받아들여 출산율 목표(2020년 1.5명)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긴 호흡으로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면서 출생아 수가 30만명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30만명대는 인구학자들 사이에 심리적 저지선로 여겨진다.

출생아 수는 1970년대만 해도 한해 100만 명대에 달했다. 그러나 2002년에 49만 명으로 절반으로 줄면서 40만 명대로 떨어졌다.

이후 2015년 반짝 증가했다가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해 2017년 출생아 수는 35만7천700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세계에서 한세대 만에 출생아 수가 반 토막으로 줄어 인구절벽에 직면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이창준 기획조정관은 “출생아 수 30만명을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의료비와 양육비 부담을 최대한 낮춰서 각 가정이 2자녀를 기본적으로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선택과 집중…저출산 추진과제·예산 다이어트

정부는 아동과 2040세대, 은퇴세대 등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며,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남녀 평등한 일터와 가정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청년세대에게는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통해 결혼할 수 있게 해주고, 아이를 낳고 키우길 원하는 세대는 일하면서 아이 키우더라도 경력단절 등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힘쓰기로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이창준 기획조정관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일터나 가정에서 여성차별이 심하며, 그것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일터와 가정에서 남녀평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출생아 수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완화하는 노력과 함께, 인구변화에 맞게 각종 사회시스템을 개혁하는 등 고령사회로 이행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해 3차 기본계획에서 추진 중인 총 194개에 달하는 정책과제를 역량집중과제 35개(저출산 분야 18개, 고령사회 분야 17개)와 계획관리과제 65개, 부처 자율과제 94개 등으로 나눠서 정비하고 역량집중과제를 중점으로 이행실적과 성과를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여기에는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보육교육, 신혼부부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 확대, 남성 육아 참여 활성화, 아동수당 지급, 지역사회 내 돌봄여건 확충, 직장어린이집 설치 지원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들 핵심과제 추진에 10조6천139억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구조도 조정하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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