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품 오르는 이성례 순교자·최양업 신부 후손 최기식 신부
“한 알의 밀알로 썩겠다는 각오로 45년을 사제로 살아왔지만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최기식(71) 신부 집안은 천주교에서 유명한 가문이다.
오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에서 집전하는 시복미사를 통해 천주교 복자(福者) 반열에 오르는 순교자 이성례(1801∼1840·세례명 마리아)가 최 신부의 고조할머니다. 이성례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다. 남편 최경환은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됐고 아들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성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남편과 함께 붙잡혔다 감옥에서 죽어가는 젖먹이 아기 때문에 신앙을 부인하고 풀려났다. 그러나 장남 최양업 신부가 김대건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 유학을 떠난 사실이 발각되면서 다시 체포돼 순교했다. 갖난 아기도 감옥에서 짧디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30년간 봉사했던 천주교 장애인복지시설 ‘천사들의 집’ 생활을 접고 나와 원주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는 그를 1일 만났다.
원주교구에서는 은퇴했지만 지구촌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자립 지원을 위한 한국희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최양업 신부의 뜻을 기려 만든 천주교 나눔운동 단체 ‘도마회’와 지학순주교기념사업회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집안 어른들이 시복시성되는 건 마냥 기쁘고 설레는 일”이라면서 “어떻게 하면 그분들을 더 찬미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남은 생애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 열심히 나 자신을 봉헌하는 게 방법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일에 바치고 은퇴한 뒤에도 오로지 한우물만 파고 있는 것이다.
1971년 신부가 된 그는 사제가 될 때 고르는 성경 구절 대신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도록 해달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선조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썩기는커녕 처음 그대로예요. 초기 교회의 중추 역할을 한 집안이지만 어린 고아들만 남으면서 어려운 생활 속에 근근이 신앙을 이어왔습니다. 그 후손답게 열심히 사는가 물으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최 신부는 교황이 지역교회에 직접 와서 시복식을 여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시복식은 순교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임을 명심하자고 했다.
”시복식을 한다고 순교자들이 천당으로 들어올려지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천당에 있고 시복시성은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순교자들을 모범 삼아 그들처럼 살기 위해서 하는 행사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문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싸우지 말자, 전쟁하지 말자, 분열하지 말자는 말씀을 끊임없이 하십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 정신입니다. 방한의 주 목적이 아시아 청년대회와 시복식이라지만 사실은 평화의 사도로서 오신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들고 오는 핵심 메시지가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통한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라는 것이다.
최 신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천주교 안에서조차 교황의 메시지가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에 가려져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우려했다.
”자신들의 생각이 교황 말씀과 다른 사람들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을 반대하고 노동자나 사회운동가들을 부추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교황께서는 늘 정의의 편에 서서 거침없이 할 말을 해 오셨고 이번에도 그러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공격적이거나 무례하게 안 하실 겁니다.”
최 신부는 한국교회가 자기 안에 안주하면서 순교자들이 죽음으로써 증명했고, 교황 프란치스코도 강조하는 가난한 교회, 세상 속의 교회와 멀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고고하고 우아하고 향기나는 성직자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 속에 들어가 그리스도처럼 매 맞고 십자가를 지고 피흘려 죽는 신앙생활을 얘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는 “예언자적 직무를 다하기 위해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당장은 온갖 공격을 받고 어려움도 겪지만 순교자 역사에서 보듯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정의와 진실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1982년 4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 중이던 김현장과 부산미국문화원 방화 연루자 문부식, 김은숙 등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듬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관련자들의 자수 의사에 따라 자수를 주선해 줬다. 죄와 폭력은 미워하나 죄인은 미워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게 사제의 직분”이라고 했고, 주교회의는 “공산주의가 두려워 정부가 시키는 말만 반복하는 사회가 된다면 공산독재국가와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최 신부는 인터뷰 내내 평화와 나눔, 형제애를 강조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와 갈등이 평화를 더욱 깨트리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이 조금 천천히, 약간 덜 되면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교황이 오시면 우리 사회가 자기 것을 내려놓고 양보하는 형제애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성직자들도 많이 회개해야 합니다. 나부터 정신 차리고 살아야죠.”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누구를 돕느냐고요? 없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나누지 못해서 가난해지는 겁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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