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하는 사람들/매슈 루버리 지음/장혜인 옮김/더퀘스트/408쪽/2만 2000원
퀸 메리 런던대 현대문학 교수
실독증·공감각 기능 과발현 등
읽기 어려운 사람들 시선 통해
읽기의 근본 찾고 핵심 파헤쳐
더스틴 호프먼, 톰 크루즈 주연의 1989년 영화 ‘레인맨’의 실제 주인공인 킴 픽(1951~2009). 서번트 증후군을 앓았던 픽은 벽돌 책이었던 톰 클랜시의 첩보 소설 ‘붉은 10월호’를 90분도 안 돼 다 읽고, 소설 두 페이지를 완벽하게 외우는 데 15초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메가서번트’라는 별명을 가졌던 픽은 독서가라기보다 스캐너에 가까웠다.
위키피디아 제공
위키피디아 제공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고 사람들은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언어 파괴 현상은 심해지고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으며 하루 독서 시간도 18.5분으로 이전 연구보다 2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들이 자녀의 문해력을 높이겠다며 독서 논술 학원 문을 두드리고 정부까지 나서서 책 좀 읽으라고 하는 상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텍스트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인가’라는 점이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로 불리며 노벨물리학상까지 수상한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수학 공식에서 색깔을 느끼는 공감각자였다. 수학 공식의 X에서 갈색을, J에서는 황갈색, N에서는 보라색을 느꼈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 제공
영국 퀸 메리 런던대의 현대문학 교수인 저자는 직접 수집한 사례와 인문학은 물론 뇌과학 분야 최신 연구 문헌을 통해 읽기의 근본을 찾아 나선다. 접근 방법은 좀 독특하다. 독서광이나 애서가를 소개한다거나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난독증, 과독증, 실독증, 공감각, 환각, 치매 같은 신경질환 때문에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읽기의 핵심을 파고든다.
후천적 문맹이나 단어맹으로 불렸던 실독증은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때문에 지능이나 언어 표현은 정상이지만 문자를 인지하고 읽는 능력에만 문제가 생기는 상태다. 과독증은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관련된 증상으로 단어를 이해하거나 해독하지도 못하면서 책을 통째로 외우는 증상이다. 더스틴 호프먼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1989년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책 속에는 읽는 방법을 새로 배우거나 반대로 그만 읽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 읽기 능력을 잃고 자신만의 읽기 방법을 찾아 나서는 사람 등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지각, 언어처리, 주의력, 해독, 이해 등 당연하게 느껴지는 뇌 기능의 어느 한 부분만 어그러져도 읽기는 불가능해지거나 어려운 일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SNS의 짧은 글, 책의 줄거리 요약이나 겨우 읽는 것을 보면서 ‘독서의 실종’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닐까.
2024-05-24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