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은하철도의 밤’ 미야자와 겐지
씨앗 하나가 가장 연약한 잎새를 올리며 딱딱하게 굳은 언 땅을 허물곤 한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작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들어버린 영혼의 잎새에 글이라는 생명의 물을 부어 주는 존재들이다. 세상이 점점 팍팍해져서일까. 유튜브를 보면 세계 각국 언어로 꾸준히 낭송되는 시 한 편이 있다. 이웃 섬나라 까마득한 시골에서 태어나 땅과 평화를 열렬히 사랑했던 시인이자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작품이다. 37년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미야자와는 동화작가 권정생, 소설가 김연수 등 문인들도 사랑하는 작가다. 그의 유고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투병 중이던 1931년 11월 3일 수첩에 쓴 것이다.1925년 자신의 고향인 이와테현 하나마키 농학교 교단에 서 있는 미야자와 겐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미야자와는 농민을 착취하는 부모를 떠나 초가집에 살며 농사를 짓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이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늘 조용히 웃으며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먹고
모든 일에 제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숲속 그늘 아래 초가지붕을 새로 이은
작은 초가집에서 살며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계시면
가서 볏단을 날라주고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뭄 들면 눈물을 흘리고
냉해 닥친 여름엔 허둥대고
모두에게 멍청이란 소리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지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가 사망한 후 유품인 트렁크에서 발견된 한 권의 검은 가죽 수첩 안의 메모. 1931년에 썼던 이 수첩의 오른쪽 위에 11월 3일이라고 써 있다. 그 수첩에 ‘비에도 지지 않고’가 써 있었다. 발표한 시가 아니기에 수록되지 않은 전집도 있다.
미야자와 겐지가 사망한 후 발견된 ‘은하철도의 밤’ 초고.
국내에 소개된 미야자와 겐지 전집.
일본어 원문을 보면 몇 개의 명사를 한자로 쓰고 나머지는 가타카나로만 썼다. 가타카나 표기는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 마치 기억하며 읽으라는 시인의 기호 같다.
“그런 사람이/나는 되고 싶다”라는 표현에 구도자로서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시에 이어 “남무”(귀의합니다), “묘법연화경(법화경)”이 쓰여 있는데, 이는 “법화경으로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법화경’을 탐독하고 1921년부터 대승불교를 포교했던 미야자와의 손길이 보인다.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농민들의 삶을 위로해 줄 글을 쓰자.”
그는 동화집 한 권과 시집 한 권을 자비로 출판했다. 야만의 군국주의 시대에 그의 책을 산 구매자는 다섯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죽고 남아 있는 수많은 메모 중에서 친구들은 한 편의 동화를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었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구구구”라는 후렴을 듣기만 해도 영상이 떠오르는 세대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1980년대에 방송된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말이다. 원작 만화를 그린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미야자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읽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은하철도의 밤’에서는 몇 가지 신화적 요소를 볼 수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고향 이와테현 하나마키에는 ‘미야자와 겐지 동화마을’과 ‘미야자와 겐지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동화마을에 은하철도 역을 재현한 ‘은하 스테이션’.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은하철도’.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미야자와 겐지가 사망한 후 백년이 넘도록 그의 동상은 없었다. 어떠한 권위나 우상을 배격했던 미야자와의 정신을 기려 유족들이 동상 세우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유족들을 설득해 2006년 미야자와 겐지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하나마키 농학교 교내에 첫 동상을 세웠다.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제공
언덕 풀밭에 쓰러져 잠시 쉬고 있는데, 뒤쪽에서 “은하정거장, 은하정거장”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수억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오듯 밝아졌다가, 정신을 차리니 조반니는 어느새 기차 안에 있다. 기차 안에서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새까만 윗도리를 입은 친구 캄파넬라를 발견한다. 캄파넬라의 모습은 이미 죽은 자의 모습이다.
캄파넬라의 얼굴은 어딘가 좋지 않은 듯 창백했습니다. 그러자 조반니도 어디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묘한 기분이 들어 입을 다물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전집 1/너머·2012·246쪽)
“젖은 듯한 검은 옷”은 물에 빠져 죽은 캄파넬라의 모습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는 ‘고사기’(고대 일본의 신화·전설 및 사적을 기술한 책)에 나오는 창세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죽어 저세상에 있는 이자나미를 만나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자나기가 저세상에 가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신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캄파넬라는 은하철도 안에서 계속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가 날 용서해 주실까?”
캄파넬라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힘겹게 참고 있는 듯했습니다.
“난 모르겠어. 하지만 누구라도 정말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한 거지. 그러니까 엄마는 나를 용서해 줄 것으로 생각해.”(위의 책, 249쪽)
이 대화 부분이 무슨 뜻인지, 왜 캄파넬라는 엄마에게 미안해하는지, 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면 캄파넬라가 강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죽은 뒤, 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동화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몇 번이고 묻는다. 미야자와의 작품에서 보이는 신화는 허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
조반니가 눈을 떴을 때 모든 게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반니의 가슴은 이상하게 뜨거웠고 볼에는 차가운 눈물이 흘렀다. 마을에 내려왔을 때 친구 캄파넬라가 축제 때 강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듣는다. 꿈속에서 만난 캄파넬라는 이미 죽은 존재였던 것이다. 캄파넬라는 죽어 지금 저 은하 끝 하늘나라로 사라졌고, 자신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차표 덕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캄파넬라가 친구 자네리를 구하고 죽은 희생정신은 바로 미야자와가 평생 지켜오던 헌신적인 삶이었다. 남을 위해 사는 삶 자체가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진정한 행복에 대한 답으로 미야자와는 타인의 행복을 위한 숭고한 자기희생을 제시했다.
결핵으로 37세에 요절한 그는 평가받지 못하다가 이후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열도는 식지 않는 ‘겐지 붐’에 휩싸여 있다고 할 만큼 일본엔 열광적인 독자군이 형성돼 있다. 2000년에 아사히신문에서 발표한 1000년간 일본인이 좋아하는 문인 순위를 보면 1위는 나쓰메 소세키, 2위는 무라사키 시키부, 3위는 시바 료타로, 4위는 멍청이라고 조롱받던 미야자와 겐지가 올라 있다.
필자가 일본에 유학 갔던 1996년은 미야자와 겐지 탄생 100주년의 해였기에 영화도 나오고,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특집과 드라마가 방영됐다. 대형 서점뿐만 아니라 동네 책방에도 입구까지 1년 내내 그의 책들이 쌓여 있었다. 마구 출판되던 한국어판 전집은 도서출판 너머에서 잘 정리돼 5권짜리 전집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됐고, 환멸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자연과 우주의 교감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품은 진정한 행복을 제시하는 바로 그 지점, 절망의 동토(凍土)를 뚫고 고개 드는 연둣빛 잎새처럼 부드럽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2018-04-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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