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집값 전쟁’의 본질

[열린세상] ‘집값 전쟁’의 본질

입력 2026-09-02 00:11
수정 2026-09-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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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불패’ 신화의 핵심은 자녀교육
공급만 늘리는 부동산 정책은 한계
교육 불균형 해소가 집값 근본 해법

집값과의 전쟁이 또 시작됐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반복해 오던 ‘국공유지 주택용지 활용’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태릉골프장 부지나 과천 경마장 부지는 물론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용산공원 부지까지 개발 후보지로 거론하며 서울과 수도권의 땅을 사실상 ‘징발’하듯 끌어모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격앙되어 있다. 최근 발표된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집값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실거주 사정이 여의치 않은 비거주 1주택자들의 공분만 샀다.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한다며 내놓은 비아파트 대출 지원 정책 역시 ‘폐버스 활용 대책’과 다를 바 없다는 청년층의 원성이 높다. 특히 용산공원 부지 개발 논의는 역사성과 공원 녹지의 가치, 후손들이 누려야 할 미래 공간을 간과한 치명적인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 입장에서 집값 잡기가 얼마나 급박하고 답답했으면 이런 다급한 카드까지 만지작거렸을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조급한 땜질식 대책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직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격언은 단순히 정책의 손을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더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진단하라는 경고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실패를 돌아본다면, 이제는 정부 정책이 간과해 온 본질적인 원인을 짚어보고, 추진 중인 대책마저 과감히 수정·보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 집값 상승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대학입시제도가 강남권과 서울에 유리한 교육 불균형’에 있다는 주장을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수능 중심 입시 체제는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고 사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강남과 서울 주요 지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거듭된 규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남불패’ 부동산 신화의 작동 요인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초·중·고 교육의 불균형은 지방 대학의 소멸을 가속화하고, 지방의 고급 인재 육성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는 곧 심각한 지역 불균형으로 이어져 인구 소멸, 지방 의료 체계의 붕괴, 문화 편익 시설의 부재라는 총체적 위기를 불러온다. 과거 행정중심복합도시, 각 지역의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지정 등 수많은 지방 분권 대책이 추진되었음에도 서울 집중을 막지 못했던 이유 역시 자녀교육을 위해 서울을 떠날 수 없는 본질적 요인을 풀지 못해서다.

최근 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3대 메가 프로젝트라는 장대한 국가 계획을 수립하고 전격적인 지방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히 확보된 부지나 수백조 원의 재원이 아니다. 핵심은 ‘고급 인재들이 지방에 안착해 아이들을 키우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지방이 살아나려면 아이들이 돌아와야 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려면 지방 교육이 살아나야 한다.

지방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사교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입시 제도를 대수술하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지방 고등학교를 실질적으로 배려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만 비로소 지방 소멸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서울의 특목고나 강남권 고등학교들이 서울 주요 대학의 입학 정원을 독식하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집값 안정도, 지방 소멸 방지도, 국가 미래 프로젝트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다. 교육 불균형을 방치한 채 공급만 늘리는 부동산 정책은 수도권 과밀을 심화시키고 특정 계층에게만 기회가 집중되는 암울한 미래를 낳을 뿐이다.

집값 문제는 부동산 정책 하나만으로 풀 수 없는 종합적인 국가 불균형의 결과물이다. 교육 불균형을 바로잡아 지역을 살리는 대수술만이 집값 전쟁을 끝내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근본 열쇠가 될 것이다.

유창수 전 서울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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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수 전 서울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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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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