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개헌보다 개언이 먼저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개헌보다 개언이 먼저다/진경호 논설위원

입력 2014-11-01 00:00
수정 2014-11-01 01:3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전한 그제 주요 조간신문 1면 제목입니다. “박 대통령 ‘남북’ ‘세월호’는 한마디도 안했다”(경향신문), “대통령은 ‘경제’…야(野)는 ‘개헌’”(동아일보), “13개월만에 회동…쌓인 현안 돌파구 없었다”(서울신문), “‘재정적자 늘려서라도 경제 살리겠다’”(조선일보), “‘마지막 골든타임’ 경제 59번 강조”(중앙일보), “‘경제’만 59번…전작권·세월호는 쏙 뺐다”(한겨레), “연말정국 순항-대치 다시 갈림길에”(한국일보)

이미지 확대
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어떻습니까. 비슷한 듯 다릅니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평가의 틀로 봐도 그렇고, 사실 전달과 전망 측면으로 나눠도 구분이 됩니다. 하나의 사실을 놓고 언론은 이렇게 저마다의 각도로 보고 전합니다. 언론에선 이를 프레임(frame), 즉 틀이라고 합니다. 프레임은 모든 사실을 빠짐없이 전할 수 없는 언론 보도가 지닌 불가피한 특성입니다.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이 따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프레임은 힘이 셉니다. 언론 프레임에 의해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집니다.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세월호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본 사람과 ‘적자 늘려서라도 경제 살리겠다’는 제목을 본 사람의 박 대통령에 대한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겁니다.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사람들 인식이 결정되고 여론이 형성됩니다. 의식하든 않든 우리는 매일 프레임을 통해 가공된 현실을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프레임이 다양하면 그만큼 여론도 다양해집니다. 그리고 이는 민주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강화시키는 절대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문제는 프레임의 공정(公正)입니다. 한데, 공정 이것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공정일까요. ‘객관적 공정’이란 말이 성립할 수나 있을까요.

언론의 불공정은 바로 이 치명적 한계 속에서 작동됩니다. ‘공정’의 기준이 없다 보니 저마다 ‘공정’을 내세워 자신의 ‘불공정’을 가립니다. 정파적 보도, 편파·왜곡보도는 그래서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제 주장만 외치고, 엇비슷한 주장끼리 편을 먹는 사회적 분극화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소통 부재를 개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불통의 주체입니다.

정치권이 개헌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 자리를 놓고 각 정파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이것이 나라를 갈라놓고 있으니 권력을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나누면 지금의 극단적 사회 갈등이 봄눈 녹듯 사라질까요. 오히려 한줌 권력에 기대어 저마다 ‘완장’을 차고 제 잇속을 챙기는 데 부심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언론 매체가 늘었는데도 서로를 두른 담장은 갈수록 높아만 가는 이 소통 부재의 현실이 극복될까요. 언론이 다양한 여론을 하나의 공동선(善)으로 묶어내는 대신 갈등을 부채질하고, 더 나아가 심지어 갈등을 소비하기까지 하는 이 현실이 과연 권력을 나누면 해결될까요.

개헌보다 개언(改言)이 먼저입니다. 권력구조 개편 이전에 소통의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언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은 이제 진부합니다. 그런 비판은 차고 넘칩니다.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지금 언론 환경에선 개별 언론 차원의 혁신은 어렵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분열의 담장이 아니라 소통의 다리가 되는 언론을 만들 보다 큰 틀의 사회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이 나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논의가 펼쳐져야 합니다. 언론과 학계, 재계, 법조계, 문화계, 시민사회계 모두가 공익과 통합을 추구하는 언론 환경을 만드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특히 언론학자들 분발해야 합니다. 학술지에 논문 하나 싣는 걸로 손 털 일이 아닙니다. 정파적 이해가 아니라 공익과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언론이어야 살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사회적 민주화가 가능합니다. 이 나라 정치, 언론에 달렸습니다. 정치가 못마땅하다면 언론을 바꿔야 합니다.jade@seoul.co.kr
2014-11-01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