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소통의 길 잃고 융합시대를 논하는가/정기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소통의 길 잃고 융합시대를 논하는가/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3-13 00:00
수정 201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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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은 진대제씨였다. 그는 기업에서는 ‘미스터 반도체’로 불렸지만 공직자로서 10년 후 먹거리를 만들겠다며 녹록지 않게 일했다. 참여정부의 최장수 장관을 지내면서 추진한 ‘IT 839’ 정책은 논란 속에서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한 해의 3분의1을 해외에서 지낼 정도로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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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홍 논설위원
정기홍 논설위원
그는 뒷얘기도 많이 남겼다. 공직에서 기피 부서인 감사관 자리에 핵심 인물을 앉혀 조직의 체질을 바꾸려고 했다. 직원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 국무회의 도중에 실무진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린 뒤 궁금증을 풀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장관들은 상상도 못한 꾀였다. 짜깁기한 새 명칭도 잘 만들어 그 뜻을 캐기에 바빴다. 누구나 자리를 떠나면 그 공(功)과 과(過)가 평가되지만 공직자로서의 그는 일을 할 만큼 하고 떠났다.

진씨가 장관이 된 지 꼭 10년 후, 김종훈 미국 벨연구소 사장이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자격으로 고국땅을 밟았다. 외모가 일 욕심이 많았던 진 전 장관을 빼닮아 다부졌다. 김씨는 보고하러 온 공직자들에게 “보고서에 있는 것 말고 개인 생각을 말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당혹감을 가졌을 법하다. ‘형님’ 진씨는 3년을 풍운아처럼 일하다가 지금은 8500억원대의 중소기업 펀드를 운용하고 있지만, ‘아우’ 김씨는 인사청문회도 하지 않고 “정치 난맥상 때문”이란 외마디만 남기고 한국을 홀연히 떠났다.

그의 사퇴는 ICT 융합 인프라를 구축해 미래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충격이자 큰 아쉬움일 게다. 지금은 케이블방송으로 불리는 종합유선방송(SO)의 관할권과 관련한 여야 간의 다툼으로 정부조직 개편작업은 벽에 부딪힌 상태이다. 민주통합당은 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SO의 방송통신위원회 존치를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현행 관련법에 인터넷방송(IPTV)과 SO는 원천적으로 보도기능을 못하게 막혀 있고, SO의 고유 권한인 채널 편성권에 관여하는 것도 외려 정치 개입의 소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2주 이상의 절충 과정을 겪으면서 소관 영역은 쪼개고 쪼개져서 누더기 상태에 이르렀다. 뉴미디어인 IPTV와 SO를 연결고리로 영화 등 콘텐츠 플랫폼들을 제공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려는 계획도 동력을 잃을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새 정부가 ICT를 미래부로 모으려는 당초안은 산업적 측면에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ICT 정책을 방통위와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4곳에 흩어놓아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여야 합의제 기관인 방통위에서는 사안마다 충돌과 갈등을 겪으며 5년을 허송세월했다. 여북했으면 야당 위원이 회의 중에 문을 박차고 나간 것을 빗대 ‘문박차’란 우스갯소리가 나돌았겠는가.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에는 IPTV와 SO라는 용어부터 낯선 데다 무엇을 쪼개고 합치는 것인지 여간 헷갈리지 않는다. 전문가마저 한눈을 팔면 사태의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니 국민들은 오죽하겠는가.

최근에 ‘융합의 의미’를 논하는 자리가 있었다. 진정한 융합 정신은 ‘팔로 미’(follow me)가 아니라 겸손하고 삼가는 것이고, 따라서 ICT는 여러 산업에 조용히 녹아들어야 시너지 효과가 커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새 정부의 ICT 담당 부처는 튀지 말고 다른 부처를 손님 모시듯 해야 융합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취지였다. 여야는 국회에 특별위를 만들어 방송의 공정성 담보 방안을 준비하는 등 막바지 협상을 거듭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분노의 주먹’을 펴고 묘수는 아닐지라도 새로운 한 수를 내놓기 바란다. 민주당도 이제 정쟁성 아집을 버려야 할 시점이다. 이게 ICT가 여야에 던지는 융합의 메시지다. 소통의 길을 잃은 정치권은 결코 융합시대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

hong@seoul.co.kr

2013-03-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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