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월호가 보내는 징후를 읽어라/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론] 세월호가 보내는 징후를 읽어라/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입력 2014-09-16 00:00
수정 2014-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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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균열의 징후다. 우리의 현재적 삶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이 균열은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은 안전한가’라는 불안은 우릴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더욱이 ‘국가’라는 조직의 무능과 무기력이 백일하에 드러난 터라 균열의 틈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심저에 똬리 튼 천박한 탐욕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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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일상화된 위기의 한 징후를 나는 최근 곳곳에서 꺼져 내리는 싱크홀에서 본다. 섬뜩하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쑥 가라앉아 사라져 버린다면. 갑자기 늘어난 싱크홀 현상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망상인가. 사람들은 큰 위험으로 느끼지 않는 것 같지만 내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막개발을 삼가고 그 원인을 제거하면 그칠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이 보내는 한 경고로 비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탐욕은 접고 사람과 자연이 두루 함께 어울려 살길을 도모하라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여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요청도 바로 이 관점이다.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함도 아니고 정권을 망치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경고하는 우리 사회의 온갖 암 덩어리들을 이참에 깨끗이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벌어진 균열의 간극도 메울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아마도 우리는 더 심대한 타격과 재앙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적당하게 타협하고 덮을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수많은 재난을 겪고도 왜 비슷한 사례들이 반복되는가. 냉철한 원인분석과 책임자 처벌 같은 공정한 심판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썩은 것은 도려내야 하고 책임질 자는 처벌해야 한다. 물론, 정권의 입장에서 이는 참 난감한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피해가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벌어졌고 30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 정권은 이제 그만두라고 윽박지른다. 명확해진 사실이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만두라는 말인가. 팽목항을 바라보며 흘리던 그때 그 눈물은 다 어디로 갔나.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으로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다시 탐욕으로 눈 붉히면 우리 모두는 공멸한다.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는 징후를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정권의 안위를 위한 패거리 정치의식을 버려야 한다. 내가 아니라, 너와 우리를 어루만질 수 있어야 이른바 적폐니 관피아니 하는 곪은 종기들을 제거하는 공정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나는 이 정권에 청원하는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진실은 오늘이 아니라도 반드시 밝혀지게 돼 있다. 이번에 특별법을 제정하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 다만 지치지 않고 느긋이 기다리면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두려워하는 건 정권에 호도된 이들의 적대감정이다.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가!”하고 싶은 행태가 노골적으로 전면화하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사람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기는커녕 조롱거리로 삼거나 심지어는 매도한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야차로 보인다. 나는 이 감정이 공포스럽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의 참사도 뼈아프다. 상식으로 쓰이던 말들이 저들의 입을 통과하는 순간, 기괴하게 뒤틀려버린다. 궤변이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궤변 치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말들을 구할 것인가. 말의 수호단이라도 조직해야 할 것인가.

그러자 내 속에 잠긴 세월호가 속삭인다. 균열을 조장하는 저 패악부터 먼저 일소시키라고.
2014-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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