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정치부 차장
‘라이트팬’은 대중문화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도 쓰는 말이다. 프로야구 시즌에는 누구든 ‘삼성팬, 한화팬’ 등을 자처하지만 라이트팬들은 방송 중계를 주로 보고 일 년에 한두 번 야구장에 간다. K팝도 마찬가지다. 10대나 20대 열성팬이 아닌 이상 매번 아이돌의 굿즈를 사고 콘서트장을 가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의 고민도 이런 데 있어 보였다. 음반을 사는 수준, 가끔 콘서트장에 가는 수준의 라이트팬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대중문화에 라이트팬이 있다면 정치에는 중도층이 있다. 태극기부대, 개딸로 대표되는 코어팬덤은 정치를 양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거대 양당도 코어팬덤에 화답하는 메시지만 내놓는다. 코어팬덤만 정치를 소비하고 ‘라이트팬’인 중도층은 정치에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다 보니 정치 혐오만 커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거대 양당의 지지율은 각 30% 수준에 고정돼 있고 무당층 역시 30%에 달한다. 여당, 야당, 무당층이 각각 3대3대3의 비율로 나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도 30%대에 고착돼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양대 정당의 비등한 구도가 지속돼 왔다”며 “주간 단위로 보면 진폭이 커 보일 수 있으나 양당 격차나 추세는 통계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오차범위(최대 6% 포인트) 내에서 변동”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모두 중도층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긴 했지만, 민주당이 잘해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손을 들어 준 중도층도 민주당이 좋아서 찍은 게 아니라 국민의힘이 싫어서 민주당을 찍은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인요한 혁신위’가 던진 지도부, 중진, 윤 대통령 측근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에 대한 당내 반응만 봐도 중도층에 대한 고민이나 배려는 찾기 힘들다. 익명을 빌려 당내에서 나온 의견은 ‘실현 불가능하다’에 가깝다. 이들이 불출마할 가능성은 극히 낮고, 수도권 같은 험지에 출마하더라도 당선 확률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선거를 앞둔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의 요식 행위라고 해도 그 내용까지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중도층의 관심이 높은 ‘특권 내려놓기’에 대해 ‘반사’하듯 반응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중도층이 ‘역시나’ 하고 떠나게 만들 수 있다.
K팝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대중을 겨냥한 행보다. 음악으로 팬이 생기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팬이 되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 중도층을 겨냥한 ‘반짝 경쟁’이라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선용 간 보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래도 코어팬덤을 겨냥해 이념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건강한 논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중문화계보다는 좀 더 깊은 고민이 정치권에 필요하다.
2023-11-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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