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이 대표회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나선 데는 아무래도 법원의 대표회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입후보했던 김모 목사가 이 회장의 3회 연속 연임 등 자격을 문제 삼아 낸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끝이다. 그래도 가처분과 법적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격 사임 표명은 예상 밖의 처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한기총에 소속된 일부 교단들은 반발하며 비상대책위를 꾸려 집단행동에 나섰고 개신교계의 숙원인 교회 통합도 표류하고 있다. 다시 꼬이는 개신교 통합의 한쪽에서 이 대표회장이 남긴 심경이 예사롭지 않다.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이 눈물겹도록 어려웠다.”
우리 정치판에서 백척간두의 왜란(倭亂)기 이순신 장군에 얽혀 유명한 ‘백의종군’은 아주 익숙한 수사다. 나와 내가 속한 세력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측근의 성공을 바란다며 내세우는 ‘낮춤의 협력’ 선언쯤으로 자주 들린다.
그런데 그 낮춤의 선언이 몸의 실천으로 온전히 귀결된 기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백의종군에는 처절하도록 슬픈 이순신 장군의 개인사가 담겼지 않은가. 왜군과의 전투가 한창일 때 서울로 압송돼 28일간 옥살이 끝에 받은 가혹한 처벌인데, 지금 우리는 그 슬픈 ‘백의종군’을 너무 편하고 쉽게 입에 올리며 산다.
지난 9일 당선이 확실시되던 자정 무렵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바라보이는 세종로 공원에서 국민을 향해 절절한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오늘의 승리는 간절함의 승리입니다.” “내일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소감은 모든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일성이었을 것이다.
적폐청산과 사회통합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문 대통령은 당장 넘어야 할 험한 산 앞에 우뚝 서 있다. 우선 국무총리 인선과 조각 단계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전체 의석의 40% 수준에 불과한 120석이란 집권 여당의 입장이니 벌써부터 원활한 국정 수행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했던 통합과 협치의 묘수가 절실한 것이다. 당선되면 청와대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옮겨 집무하겠다며 낮춤과 소통을 거듭 천명해 왔던 문 대통령의 당선에 백의종군을 얹어 본다. 지금 우리 사회에 아주 흔한 모면과 임시 봉합의 수사가 아닌, 뼈를 깎는 헌신과 결집의 백의종군 말이다.
kimus@seoul.co.kr
2017-05-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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