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미술관은 무엇으로 사는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미술관은 무엇으로 사는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함혜리 기자
입력 2015-08-19 23:44
수정 2015-08-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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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좋은 작품을 사들여 대중에게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시 기획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서 미술관의 명성이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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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아쉽게도 우리나라 대표 공공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가 요즘엔 일반 사립미술관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이유를 찾자면 우선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의 무능을 탓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는 다른 데서 발견된다. 학예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헤매고, 의미 있는 기획전시를 준비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하는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학예연구사 제도는 고 이경성(1919~2009) 관장 시절인 1989년 처음 도입됐다. 전문 미술인으로는 처음으로 관장을 맡은 이 관장은 학예연구사 제도 도입 외에 미술관의 작품 소장 계획을 전문성 있게 확립하는 등 한국 미술관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뒤를 이어 고 임영방(1929~2015) 관장은 학예실을 중심으로 한 전시 체제를 안착시켰다. 그야말로 학예사들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6급 상당 학예사로 들어와 5급 상당의 학예관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18년째 있는 사람도 있고, 학예관 대우로 10년을 넘긴 사람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가 학예관으로 승진하는데 5~10년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맥 빠지는 일이다.

이런 위상 변화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 관장직이 공모제로 바뀌고,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모제로 뽑은 김윤수, 배순훈 관장이 난제를 남긴 채 떠났고, 법인화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정규직 학예사 자리는 거의 동결됐다. 곧 법인화될 책임운영기관에 정규직은 어불성설이었다.

결국 2013년 개관한 서울관은 학예사들이 모두 전문계약직으로 채워졌다. 과천관의 정규 학예사는 서울관 계약직으로 자리이동이 불가능했다. 돌파구 없는 과천관의 학예사들은 휴직과 이직을 택하고 있다. 서울관도 문제투성이다. 3년 계약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쉽게, 빨리할 수 있는 전시만 하다 보니 전시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10개월째 공석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20일까지 서류를 마감하고 선발심의위원회가 심사한 뒤 추천하면 문화체육관광부 개방형직위 임용심사위원회를 거쳐 문체부 장관이 최종 임용하게 된다. 또 ‘적격자가 없다’며 원점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늦어도 11월에는 새 관장이 온다. 1차 공모에 응했던 후보부터 외국인까지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벌써 특정인이 거론되는 것은 왜일까. 영문도 모르고 들러리가 된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낙인찍고, 희화화하는 ‘무늬만 공모제’를 할 바에는 차라리 임명제로 전환하는 게 낫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단순한 직위가 아니라 한국 미술을 대표한다는 상징성이 크다. 빼어난 능력, 훌륭한 인품,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미술계의 어른을 모셔 오려면 품격에 걸맞은 과정이 필요하다.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이 시급하다.lotus@seoul.co.kr
2015-08-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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