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폭염은 오늘도 약자를 노린다

[데스크 시각] 폭염은 오늘도 약자를 노린다

임일영 기자
임일영 기자
입력 2026-07-30 00:33
수정 2026-07-30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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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명 숨진 ‘시카고 참사’의 교훈
희생 줄이려면 ‘사회적 부검’ 필요
역학조사 위한 입법도 서둘러야

1995년 7월 13일, 미국 시카고의 낮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치솟았다. 체감온도가 52도에 이르자 낡은 아파트는 가마처럼 달아올랐다. 사흘째 체감온도 38도를 넘기자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구급차는 부족했고, 병상이 가득 찬 병원은 환자를 받지 못했다. 불과 일주일 새 739명이 숨졌다.

가혹한 날씨가 전부였을까.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부검소에 이어 사망자들이 살던 곳을 살폈다. 삶과 죽음을 가른 ‘사회적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에어컨조차 변변치 않은 비좁은 아파트였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친구나 가족과는 연락이 끊긴 늙고 가난한 1인가구가 많았다. “수백명이 잠긴 문과 닫힌 창문 너머 남들이 잘 찾지 않는 후덥지근하고 통풍이 안 되는 사적인 공간에 갇혀 홀로 숨을 거두었다.”(클라이넨버그 ‘폭염사회’ 중)

폭염은 소리 없이 다가왔고, 고립된 삶을 앗아갔다. 클라이넨버그는 시카고의 비극이 자연재해가 아닌 고립과 빈곤, 무관심이 결합된 사회적 참사라고 설명한다. 폭염은 평등하지 않았으며 차별적으로 가혹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더뎌질 기미가 없는 가운데 ‘올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는 역설적인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야외 노동이 불가피한 건설노동자와 배달기사, 농민과 공동체와 교류가 드문 쪽방촌 주민,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 이번 여름은 혹독하다. 6월에 1만명 이상 초과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유럽 소식을 무감각하게 흘려 넘겼지만, 장마 이후 폭염이 엄습하자 국내 상황도 심상치 않다.

행정안전부는 폭염 재난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응급실에 실려온 온열질환자가 1500명에 육박하고, 9명(27일 기준)이 숨졌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죽음도 감안해야 한다. 온열질환 죽음을 증명하려면 사망 전후 직장(直腸)의 온도를 재야 하는데 홀몸노인들은 늦게 발견되는 일이 잦다.

문제는 폭염이 갈수록 길고 거칠어진다는 점이다. 1973~1982년에는 8월 중순이면 폭염이 끝났지만 2016~2025년에는 8월 중하순으로 늦어졌다. 올여름 전국 열대야 일수는 7.8일로 1973년 이래 가장 많다.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도 대응에 나섰다. 취약계층에 냉방기기를 전달하고, 야외노동이 불가피한 이들과 쪽방촌 주민을 위한 무더위쉼터, 저소득 고령층을 위한 안전숙소를 운영한다.

그러나 고립된 이들에게 여름은 여전히 위태롭다. 서울의 1인가구 비율은 39.9%(2024년)로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 가장 높다. 1인가구 중 70세 이상이 19.8%다. 이들은 일상적 교류가 적을뿐더러 사회안전망을 빠져나가기 쉽다. 희생을 줄이려면 클라이넨버그가 했던 것처럼 ‘사회적 부검’(social autopsy)이 필요한 까닭이다. 1995년 참사 이후 시카고 당국은 희생자들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꼼꼼하게 살폈다. 조사 결과 인종, 연령, 빈곤율이 죽음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응체계를 바꿨다. 덕분에 1999년 다시 폭염이 닥쳤을 때 사망자는 110명으로 줄었다.

우리는 어떤가. 2012년 폭염을 겪고서 질병관리본부에서 ‘폭염피해백서’를 만들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2018년 최악의 폭염으로 백서가 부활했지만, 이듬해 폭염이 시들하고 팬데믹이 닥치면서 흐지부지됐다. 단순히 몇 명이 쓰러졌다고 업데이트하는 식으론 한계가 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 직업과 평균소득, 가족관계, 동거인과 에어컨 유무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폭염은 불가항력적일지 몰라도 시스템이 있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역학 조사의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사망자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문제를 인지하고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일상의 위기’가 된 폭염은 오늘도 약자들을 노린다.

임일영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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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영 사회2부장
임일영 사회2부장
2026-07-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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