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서 남편·아들 잃은 남정도할머니의 현충일

전쟁서 남편·아들 잃은 남정도할머니의 현충일

이영표 기자 기자
입력 2002-06-07 00:00
수정 200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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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축구를 하는데 함께 살아서 본다면 방이 꺼져라 응원도 할텐데….엄마 혼자 이렇게 보니 미안하구나.”,“둘째 아들 잘 데리고 계세요,저도 곧 갈게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으로 남편과 둘째 아들을 잃은 남정도(南廷道·76) 할머니는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답장없는 편지를 쓰고 있다.한 주도 거르지 않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치된 남편과 아들의 묘역을 찾아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보지만 돌아온 것은 고행(苦行)처럼 깊게 팬 주름살뿐이다.

남 할머니는 6일 현충일에도 아침 일찍 현충원을 다녀왔다.남편 ‘김동훈 상병’과 아들 ‘김광희 하사’는 20m 남짓 떨어진 채 현충원 7번과 3번 묘역에 각각 묻혀 있다.

베트남전에서 아들의 전사통지서가 날아온 것이 지난 72년.남편도 한국전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후유증을 앓다 73년 아들의 뒤를 따랐다.이후남 할머니는 독백처럼 편지를 적어 남편과 아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엄마는 동작동 가면 뜨거운 눈물이 흘러요.흐르는 눈물에도 너를 혼자둘 수 없어 매일 동작동에 간단다.”,“저는 수십년 세월을 아무도 몰래 울어요.셋방에서혼자 살아도 아들을 느낍니다.”

남 할머니는 이날 남편과 아들을 ‘만나고’ 온 뒤에도 용산구 청파동 집에 보관한 편지 상자의 묵은 때를 한참동안 닦아 내고 있었다.

17세에 결혼한 뒤 7년 만에 남편을 전장으로 내보낸 남 할머니는 시댁과 가까운 경북 문경읍으로 이사가 탄광과 석회공장에서 막일을 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등짐도 지고 공사장에서 노동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생 끝에 광주신학대에 보낸 둘째 아들이 2학년때 비둘기 부대 마크를 달고 베트남으로 간지 2년만에 주검으로 돌아오자 남 할머니는 며칠동안 실신한 채 식음을 잊고 살았다.

둘째 아들보다 1년 일찍 베트남전에 갔던 장남이 무사히 귀국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깐,병원 신세를 지던 남편마저 세상을 뜨자 남 할머니는 눈앞이 캄캄해 졌다.

형편이 어려워 대학공부를 시키지 못했던 장남 병희씨(56)가 최근 실직으로 일터를 전전하는 바람에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는 남 할머니는 이 날도 어김없이 남편과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고 있었다.

이영표 장세훈기자 tomcat@
2002-06-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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