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남녀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에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 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성 정체성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또래 친구들은 ‘이상한 애’라고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와 야유를 쏟아내고 ‘역겹다’며 소리 질러도 익숙해지면 참을 만하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아웃팅을 당하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가 된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최희원(17·가명)씨도 그랬다. 기숙사 방에 걸어둔 퀴어문화축제 깃발을 동아리 친구가 찍어간 뒤로 괴롭힘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졌다. 학생들은 떼로 몰려와 손가락질했다. 선생님은 최씨의 도움 요청에도 따돌림을 두둔하고 방임했다.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

희원씨는 기숙사를 떠나 학교 앞에 자취방을 구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주겠지’ 하고 믿었던 학교를 더는 신뢰할 수 없었다. 불안은 커졌다. 평소 먹던 우울증 약의 복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엔 수업을 듣다 호흡이 가빠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선생님이 트랜스 여성인 고 변희수 하사를 ‘남자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언급한 게 뇌관이었다. 변 하사는 군 복무 중 여성으로 성확정 수술을 받았단 이유로 강제 전역 조치되자,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제가 지금 죽으면 사람들은 저를 여자로 기억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교실이고 사회 과목 시간이니 성소수자도 존중받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죠.”

희원씨는 결국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 지난 5월 자퇴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적으로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4명 중 1명 꼴(24.1%)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동료 학생들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례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 남학생이니까”라며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트집을 잡았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에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서울신문이 심층 인터뷰한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6명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설문 조사에서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66명)의 21.2%는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 꼴이다.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1년 교육 기본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별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박도윤씨는 지방에서 서울에 와 일을 하고 있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는 잘 살기 위해 고1 시절 자퇴를 택했지만, 지금도 졸업식에 가는 꿈을 자주 꾼다. 꿈에서 친했던 친구들과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놀 때도 있다. ‘나는 검정고시로 졸업했는데 왜 학교에 있지’라고 생각하다가 ‘꿈인데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납득한다. “남들은 초·중·고는 그냥 졸업하잖아요. 비슷한 꿈이 반복되는 걸 보면 자퇴한 데 대해 아쉬움이 남나봐요.”
2.
등 돌린 부모,
생계형 노동자가 된 아이들
중학교 2학년 때 희원씨는 어머니에게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트랜스 남성이라고 바로 말하기 보다 어머니를 설득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도 어릴 때 그랬어. 그냥 이성애자로 살면 안되겠니”라고 답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답답했던 희원씨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결국 학업 중단을 택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 부모님은 그가 트랜스 남성임을 알게 됐다. 한참 동안 말을 섞지 않던 아버지는 어느 날 희원씨에게 물었다. “남자가 되고 싶은 거냐?” 희원씨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저는 남자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남자예요.”

자녀가 청소년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알겠다’고 한 뒤 무시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대부분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님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요. 나는 낳아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사회화가 제일 처음 시작되는 부모님께도 인정받지 못하니까 자존감이 무너지는 거예요.”

부모가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말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죠. 살기 위해서는 말하면 안되겠구나, 트랜지션은 독립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까스를 사주겠다며 저를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경우는 어머니의 경우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경우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들 가운데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은 대게 그 사실 자체를 모른 체 하거나(55.2%) 자녀와의 대화를 단절(40.5%)했다. 물리적 폭력을 가하거나 폭언을 쏟아내는 이도 적지 않다. 응답자 가운데 가족으로부터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로 절반에 달했다.

나아가 전환치료를 강요당하거나(15.5%), 경제적 지원을 끊는 경우(13.8%), 신체적 폭력을 가한 경우(12.9%)도 적지 않았다.
김신엽씨의 she/her 뱃지와 트랜스젠더 플래그 뱃지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실명)씨도 정체성을 알게 된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집안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어린 동생에게 이런 가족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신엽씨는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살의 나이에 자유를 찾고(65.5%), 가정 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의료적 트랜지션 비용도 마련해야 한다. 성별을 바꾸기 위한 호르몬 치료나 수술은 성형수술과 같은 비급여 치료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하기란 더 어렵다.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 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 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난한 알바 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도시락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내년 대학 입학을 앞둔 박영씨는 청소년 지도사를 꿈꾸고 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실명)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 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씨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발생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3.
그들만 겪는 ‘인고’의 시간,
진단에서부터 정정까지
“너무 어려서 좀 더 지켜봐야 해요”
미성년 트랜스젠더가 성 전환증 진단을 받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갔을 때 자주 듣는 얘기다.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 겨우 병원에 가도 나이가 어리단 이유로 진단을 잘 내주지 않는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잘 모르는 영역”이라며 진단을 거부하기도 한다.

서울신문이 만난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트랜스 남성 이지우(16·가명)씨는 병원에서 “아직 나이가 어려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말에 자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던 부모님마저 “지켜보자”며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선 어린 환자한테는 다 저렇게 말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해요.”

성별 불일치감을 마냥 ‘없앨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의사들도 있다. 트랜스 남성인 송우현(21·가명)씨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한 후 여러 병원에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우울증 문제”라며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전환치료가 없어졌다는데 실상 병원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의사가 해주더라고요.” 우현씨는 당시 일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트랜스젠더에게 진단서는 “나는 트랜스젠더가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도윤씨는 학교를 자퇴한 후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지만, 아버지는 “정신과에서 진단서를 떼 오면 너를 남자로 인정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물론 진단서를 받아온 뒤에도 아버지는 한동안 혼란스러워 했지만 머지 않아 도윤씨를 이해하게 됐다.

커밍아웃 후 오랜시간 부모님과 냉전 상태로 지낸 슬씨도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는 단계에서 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진단서가 나온 날이 2018년 4월 26일이었는데 아직도 생생해요. 그날 되게 마음이 신났었거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1.2%가 진단서를 받지 못했는데 ‘가족이나 지인의 반대’ 때문이라는 응답은 15~18세 응답자가 8.3%로 19~24세 응답자(2.6%)의 두 배 이상이었다.
병원에서 거부당했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각각 6.7%, 3.9%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트랜스젠더마다 성별 불일치감을 겪는 정도는 제각기 다르다. 외관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진단서를 받은 뒤 호르몬 치료에 이어 외과적 수술을 받는 사람도 있다. 영씨는 15살 때 호르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진단서를 들고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영씨가 어리단 이유로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

“그날 로비에서 펑펑 울었어요. 안 받으면 이 몸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영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병원을 수소문했고 겨우 호르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남성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서 성별 불일치감에서 왔던 우울증과 불면증은 눈에 띄게 호전됐다.

성별 불일치감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롯이 개인이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아직 사회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겐 큰 부담이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동휘씨는 호르몬 치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에서 운영하는 건강센터를 찾는다.

“센터에서는 가장 저렴한 주사를 맞아요. 거기서 맞기도 하고 집에서 자가로 맞기도 하고. 근데 저렴한 건 안정성이 떨어질 때가 있어서 대게 겔을 선호하는데 비싸죠. 한 달치가 8만원 정도라 돈이 들어올 때나 살 수 있어요”

외과적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트랜스젠더 남성이 가슴 제거 수술을 받으려면 400~500만원이 든다. 출생 시 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형 유방증(남성의 가슴이 여성의 형태로 발달하는 증세)으로 수술을 받을 땐 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100만원 남짓한 돈이 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 설문조사에 응한 청소년 가운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8%, 외과적 수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4.8%나 됐다.

한국에선 성별정정이 트랜스젠더들이 넘어야 할 최종 관문과도 같다. 관련 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사건을 맡은 판사는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에서 나온 사무처리지침을 참고한다. 미성년이 아닐 것, 혼인 중이 아닐 것,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안 될 것과 같은 사항들이 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건 생식능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성확정 수술을 해야한다는 부분이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외과적 수술을 가족의 지원없이 할 수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많지 않다. 정체화한 성별에 맞는 주민등록번호라도 있으면 제대로 일을 해서 돈이라도 벌 텐데, 성별정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선 이력서를 보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성별정정을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성별정정을 할 수 없어 돈을 벌기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다.
대학 교정에서 포즈를 취한 김신엽씨.
최근 법원에 성별정정을 신청한 신엽씨도 수술확인서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보정 명령에 “가출 후 독립생계를 꾸린 뒤 차상위 계층으로 분류돼 있다”며 “트랜지션 비용 3000만원을 마련하는 건 요원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법원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신엽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신엽씨는 이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65.6%는 향후 성별정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정 의사가 있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2.4%)은 성별정정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수술에 드는 돈을 벌기 위해 성별정정을 유예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성별정정을 할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34.4%) 가운데 32.5%는 성별정정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31.2%는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15년간 외과적 수술과 관련해 진일보한 결정들도 있었다. 2013년 서울서부지법은 외부성기재건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남성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처음 내렸다. 당시 사건을 맡은 법원장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는 데다 위험성이 큰 수술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8년이 지난 올해, 수원가정법원은 우현씨의 성별정정 신청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 결정을 뒤집고 허가 결정을 내렸다. 우현씨는 난소·난관절제술이나 자궁적출술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신청이 기각됐었는데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성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신체의 온전성을 손상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봤다.

트랜스 여성의 경우 정정을 받기가 좀 더 까다롭다. 201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에서 외부 성기 성형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성별정정을 허가한 일이 있었지만 이후 유사한 결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결정들이 있는가 하면 심문 과정에서 트랜스젠더의 외과적 수술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는 법관도 있다. 슬씨는 성별정정을 신청한 지원에서 “생리를 하느냐”는 질문을 듣고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의료적 지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허가를 받으려면 어떡하겠어요. ‘아직 기술이 그렇게까진 발달하지 못했다’고 친절히 답할 수밖에요.”

비용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생식능력을 없애는 비가역적인 수술을 강제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시선도 있다. 도윤씨는 “난소와 자궁을 적출하면 호르몬 불균형으로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수술을 하지 않을 예정”이라면서 "자녀를 갖길 희망하는 것도 아닌데 기관을 모두 없애도록 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한 법관도 “과거 한센인에 대한 강제불임에 대해 국가가 보상해야한다는 법안이 마련된 적이 있다”면서 “트랜스젠더도 추후 관련법이 마련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유엔 고문특별조사위원 보고서는 트랜스젠더에게 생식능력 상실을 요구하는 건 ‘고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실제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선 과거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 생식능력 상실을 요구한 건 강제 불임이나 마찬가지라며 국가가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4.
국민 10명 중 7명,
‘청소년 트랜스젠더’ 차별 반대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청소년이 가장 먼저 사회화를 거치는 학교는 인권 교육의 터전이 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교육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잇따른 시도는 소수의 반동성애·반성소수자 목소리에 의해 번번이 무산됐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정체성과 관련해 가장 힘들었던 점을 ‘성소수자와 관련한 성교육의 부재’(66.1%)로 꼽았다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이들은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위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관련 의무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79.5%),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진행되야 한다(71.4%)고 봤다.
국민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명 중 7명(69.5%)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학교에서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서울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을 통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다. 학교가 이들에게 적절한 지원과 상담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엔 81.4%가 공감을 표시했다. 성별에 관계없이 원하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62.9%로 절반 이상이었다.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차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있다는 것에 84.4% 국민들이 공감했고, 트랜스젠더가 우리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것에는 74.2%가 ‘그렇다’고 답했다.
나아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거나 채용이 거부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66.9%였다.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하며(66.5%) 그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62.0%)는 것에도 상당수 국민들이 공감했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와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여성 등을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에도 ‘통과돼선 안 된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비율은 19.8%에 그쳤다. 57.6%는 ‘통과돼야 한다’고 했고 아직 잘 모르겠다며 응답을 보류한 사람이 22.6%였다.
우리보다 일찍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쓴 나라들은 어떨까.

“교수, 교직원들은 물론 학생들까지도 제가 불리길 원하는 성별을 묻고, 그걸 존중해주며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제가 의료적으로 성 전환을 하거나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완료하지 않았는데도, 사회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니 삶이 덜 버겁다고 해야 할까요.”
박영씨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인 신미경(가명)씨와 손을 잡고 있다.
3년 전 결혼과 동시에 캐나다로 떠난 트랜스 남성 김주형(23·가명) 씨는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서 ‘청소년 트랜스젠더’로 살았던 시간에 대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는 김씨는 원하던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커밍아웃이다. “어머니 반응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트랜지션은 하지 말라셨죠. 너 자신을 알면 되는 것 아니냐고…” 대학에 가면 온전한 남자로 살고 싶었던 김씨의 희망이 무너졌던 순간이다. “입학 전에 이름도 바꾸고, 호르몬 치료도 받아 평범한 대학생이 될 줄 알았어요. 근데 다 물거품이 됐어요.”

스스로를 남자라고 느끼는데도, 그걸 숨기고 여자로 살아야 하는 삶은 김씨에겐 매 순간이 지옥 같았다. 입시에 성공하면 끝날 줄 알았던 고통은 대학에 가서 더 심해졌다. “교수님이 내가 원하지 않는 법적 성별에 맞게 지어진 이름으로 출석을 부를 때마다 괴로웠어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는 한 남학생이 제게 말을 걸어와 대답을 했더니 (목소리를 듣고) ‘죄송하다’며 도망갔던 일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김씨는 2017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캐나다 교포 한지영(27·가명)씨를 만나 결혼하면서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한국에 잠깐 나와있던 한씨와 사랑에 빠진 김씨는 장거리 연애 대신 결혼을 택했고, 현지 대학으로 편입해 공부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교수·교직원은 물론 학생들까지도 김씨가 불리길 원하는 성별과 이름을 묻고 그에 맞춰 대해준다. 김씨의 삶에서 달라진 가장 큰 변화다.

평생을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온 김씨는 이제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를 꿈꾼다. “트랜스젠더인 제가 교사라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좋습니다.”

윤슬(오른쪽)씨와 어머니 김수현(가명)씨가 단풍나무 아래를 함께 걷고 있다.
캐나다는 1977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나라로 꼽힌다. 인종·출신국·피부색·종교뿐 아니라 성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캐나다 인권법’은 김씨와 같은 성소수자에게 남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캐나다에서 고의적으로 혐오 표현을 쓴 사람은 최대 징역 2년형에 처해진다. 또 이른바 ‘모두의 화장실’인 성중립 화장실을 학교뿐 아니라, 쇼핑몰 등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핀란드·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도 캐나다에 이어 1980년대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트랜스젠더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최전선에 서 있다. 샌프란시스코통합교육구 (SFUSD·시교육청)에서는 1990년 5월 처음으로 성소수자(LGBTQ) 고등학생을 위한 상담 서비스 프로그램 설립을 인가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학교 교직원은 2년마다 성소수자 교육을 받는다. 2003년부터는 학생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이름과 성별로 불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시행됐다. 다만 성적표 등 공식 기록에는 법적 이름과 성별이 그대로 유지된다. SFUSD에서 성수소자 학생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케냐 헤이즐우드는 “성소수자 학생이 일상에서 맞닥뜨릴 사회적 성별 불일치감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라며 학교가 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추세입니다.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에 집중하도록 돕는 게 최우선입니다. 제도적인 보호와 지원으로 학생들이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성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나아가 사회에서도 외부인으로 고립되지 않고, 통합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취재
민나리, 김주연, 최훈진, 최영권
지원
디자인
김헵시바, 박하늘
웹 개발
박하늘
모션그래픽
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