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정치인의 유행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정치인의 유행어/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22-10-05 20:12
수정 2022-10-0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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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역시 유행어를 탄생시키곤 한다.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 퍽퍽한 살림살이에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에 꽂혔다.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고 곳곳에서 확대재생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거 다 거짓말인 것 아시죠?”, 안철수 의원의 “내가 아바타입니까~”라는 말 역시 다양하게 변형되며 개그 소재 등으로 자주 쓰였다. 이은재 전 의원이 국회에서 자주 외쳤던 “사퇴하세요”라는 말도 본의 아니게 인구에 즐겨 회자됐다. 정치가 TV를 통해 그만큼 국민과 더 가까워진 덕이다.

정치인 유행어의 원조는 따로 있었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갖춰져 가던 즈음 김동길 연세대 교수는 TV에 곧잘 등장했다. 특유의 나비넥타이와 콧수염에 느릿하고 점잖은 목소리는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 세태를 두루 비판하면서 “이게 뭡니까”라고 했다. 그 말은 전 국민적 유행어가 됐다. 나중에는 개그맨과 함께 코미디에 출연하기도 했다. 1992년 그를 정치판으로 이끈 정주영 전 현대회장이 무척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요즘 사람들이야 그를 ‘김동길TV’에서 극단적 대립의 언어를 즐겨 쓰는 고령의 극우 유튜버쯤으로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실제 진영의 극단에 서서 발언했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자살하라”고 힐난하거나 전두환씨 구속 때는 “한국 정치가 원칙도 의리도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광수, 김활란, 최남선 등 친일파에 대해서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죄인으로 낙인찍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0~1980년대 군부독재정권 시절 그는 달랐다.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도 연루되며 독재정권으로부터 고초를 겪기도 했다. 물론 산업화와 민주화의 급물살 속 정치와 이념, 철학 측면에서 극단을 오갔던 이들은 그뿐 아니었다. 대립과 욕망이 큰 탓이었을 게다. ‘시신 기증’ 유언을 남긴 것처럼 미움도, 갈등도 다 내려놓고 영면하길 바란다.

2022-10-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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