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소급 적용도 허용… “28일 입법예고”
소멸시효 지나지 않았다면 소송 가능해
기업들 어떤 사건이 소송갈지 몰라 긴장
“美 법원은 집단소송 등 허가 자제 분위기”
법무부가 지난 23일 기습 공개한 ‘집단소송법안’ 부칙 3조에는 소급 적용 규정이 나온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 BMW 주행 중 화재 사건과 같이 기존 사건도 요건만 갖춘다면 집단소송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셈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어디서 어떤 사건이 소송으로 번질지 예측할 수 없게 됐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법무부는 전날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면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공개하고 오는 28일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추석 이후에 입법예고를 하게 되면 올해 안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게 어렵다고 보고 ‘기습 입법’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법무부는 2년 전 집단소송 분야를 일부 확대하면서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급 적용을 금지했다. 시행 후 최초 발생한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부터 가능하다고 못박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야 제한을 아예 없애면서 소급 적용도 허용해 줬다. 다만 확정판결이 났거나 당사자 간 화해로 더이상 소를 제기할 수 없는 상태라면 집단소송 대상이 아니다. 소멸시효가 지난 사례도 제외된다. 소비자단체들은 이번 안을 반기면서도 소멸시효 문제로 실제 소송이 가능한 사건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선 법이 연내 통과가 된다면 2018년 발생한 BMW 주행 중 화재 사건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도 청구 원인을 달리하면 소멸시효 문제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사건 소송을 수행했던 하종선 변호사는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임의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끄는 설정에 대해 불법 조작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추가 소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도입이 추진되는 집단소송제는 미국 제도에 가깝다. 선고 결과를 적용받지 않겠다고 법원에 신고를 한 소비자를 제외하면 판결 효력이 모든 소비자에게 미치는 것도 동일하다. 법원의 허가 결정이 있어야 본안 재판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반면 일본은 소송 절차에 참여한 소비자에게만 효력이 미친다. 전체 2단계 재판 중 1단계에선 소비자단체만 참여할 수 있다.
일부에선 집단소송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남소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전체 피해자를 위해 나서게 되면 청구금액이 커지고 인지료도 올라 전체적으로 소송 비용 부담이 커지는 만큼 준비 과정을 거친 뒤에야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 허용된 지난 15년간 소가 제기된 건 13건에 불과하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 법원은 최근 집단소송 등에 대한 허가를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우리나라에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중소기업은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20-09-25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