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불행쯤은 괜찮다? 日 ‘희생양 이데올로기’ 비판

입력 : ㅣ 수정 : 2019-10-1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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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영화] 날씨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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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1973)은 작가 어설라 르 귄이 쓴 단편이다. 방탄소년단의 ‘봄날’(2017) 뮤직비디오에도 언급돼 새삼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제기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오멜라스는 한 아이를 지옥에 가둠으로써 천국이 된 사회다. 그 아이가 해방되면 오멜라스의 안녕도 끝난다. 당신이 그런 모든 사실을 아는 오멜라스의 주민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소설에 따르면 다수는 이를 묵인하고 소수는 오멜라스를 떠난다. 하지만 그 정도 결론으로는 불충분하지 않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그는 소설과는 사뭇 다른 영화적 답변을 내놓았다. 그것이 ‘날씨의 아이’다.

신카이 감독이 섬세한 감정 표현에 특화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도 작품에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작 ‘너의 이름은’(2016)도 그랬다. 이 영화는 소년 소녀의 연애만 그리지 않았다. 이들의 사랑은 재난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는 메시아적 사명에 맞닿는다. 관객이 여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겹쳐 떠올리는 것도 당연하다.

신카이 감독은 이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소년 소녀에 집중한 재현 방식으로 비판했다. 의외로 ‘너의 이름은’은 온건한 영화가 아니다. ‘날씨의 아이’는 더 급진적이다. 이 영화는 현재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전면화한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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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누군가는 젠더계급통치 등의 테마를 발견할 테다. 나는 의식을 봤다. ‘전체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의 불행쯤은 괜찮다’는 희생양 이데올로기다. 이 같은 말을 스가(오구리 )가 한다. 가출한 소년 호다카(다이고 고타로)를 도와준 그마저 희생양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지금의 일본이 바로 오멜라스라는 것. 이것이 신카이 감독의 현실 인식이다.

비가 그치지 않는 일본이라는 설정은 그에 알맞은 은유이고. 그럴 때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기도로 날씨를 맑게 할 수 있는 소녀 히나(모리 나나)가 있다. 그런데 그녀가 아예 사라져 버리면 장마가 계속되는 이상 기후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럼 히나는 모두의 평안을 기원하며 없어져야 하나?’

가령 ‘케빈 인 더 우즈’(2012)를 만든 드루 고다드 감독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감히 나를 제물로 삼아 체제를 유지시킨다고? 그 따위 세상 폭삭 망해라.’ 이에 준하는 과격한 결말은 아니지만 신카이 감독 역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거대한 고통을 소녀 혼자 짊어지게 하지 않는다. 행여 그래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면 그 자체가 오류다. 포맷해 다시 세팅해야지. 거대한 고통을 전부 나눠 들어 가볍게 하는 쪽으로. 어쩌면 우리는 오멜라스의 주민보다 오멜라스의 아이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신카이 감독은 역설한다. 그 아이를, 나 자신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날씨의 아이는 환생한 오멜라스의 아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2019-10-1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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