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판차노에서 8대째 정육업을 이어 가는 다리오 체키니의 식당에선 세계 미식가가 예찬하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와 함께 각각의 풍미를 가진 다양한 고기 부위를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굳이 남쪽으로 40여분을 더 달려 판차노란 작은 마을을 찾은 것도 다 구운 고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의 많은 미식가들이 이탈리아식 티본스테이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를 먹기 위해 피렌체가 아닌 판차노에 몰려드는 이유는 단 하나, 정육업자 다리오 체키니를 만나기 위함이다. 최고의 셰프도 아닌데 이 먼 길을 올 이유가 무얼까. 그게 궁금해 그의 정육점이자 스테이크 하우스인 ‘오피치나 델라 비스테카’를 찾았다.
이탈리아 판차노에서 8대째 정육업을 이어 가는 다리오 체키니는 동물에게 좋은 삶과 자비로운 죽음을 주고 그 희생에 대한 감사를 담아 모든 부분을 소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명의 시골 정육업자인 체키니는 2001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당시 광우병 파동으로 EU가 영내에서 척추뼈가 붙은 소고기 판매를 일시적으로 금지하자 ‘뼈 없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는 지옥이 없는 단테의 신곡’이라며 당국의 결정에 반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도축한 소고기를 관에 넣고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를 경매에 부쳤다. 5000만원 상당의 200여개 스테이크 덩어리가 경매에 올랐는데 이를 모두 영국의 가수 엘턴 존이 사들여 어린이병원에 기부하면서 체키니의 퍼포먼스는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평소의 소신을 거침없이 밝히며 정육업자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스스로를 고기를 도축하고 잘라 판매하는 정육업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예술가 또는 장인으로 규정한다. 정육업자가 하는 일은 동물이 좋은 삶을 살고 자비로운 죽음을 맞도록 하며 도살된 동물의 모든 부분이 낭비 없이 잘 사용되게 하는 것, 그것은 한 삶을 통째로 우리에게 바친 동물에 대한 감사라고 그는 강조한다. 단지 안심이나 등심 등 고급 부위를 얻기 위해 소를 도축하는 일은 희생된 동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판차노에 있는 ‘오피치나 델라 비스테카’에선 1인당 50유로에 고기 코스, 토스카나 와인, 생야채를 즐길 수 있다.
체키니의 식당엔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음식은 나눌 때 더 맛있는 법. 낯선 이들끼리도 서로 어울려 먹을 수 있도록 한 토스카나식 식탁이다. 여럿이 떠들썩하게 어울려 먹고 마시는 즐거운 경험을 안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1인당 50유로에 고기와 와인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고기는 여러 부위를 순차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코스로 제공되는데 주인공인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는 맨 마지막 순서다. “고기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ef or not to beef)라는 힘찬 구호와 함께 등장한다. 햄릿의 대사를 패러디한 언어유희다. 직원 유니폼 뒤판엔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고기를 즐기라는 ‘카르네 디엠’(Carne Diem)으로 바꿔 붙였다.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2019-09-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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