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천인갱’과 국가의 책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입력 : ㅣ 수정 : 2019-08-1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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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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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20대 청춘에 징용에 끌려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로부터 150여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필리핀으로 끌려가 굶주리면서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지인의 할아버지는 약주만 드시면 우셨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 노역 사실을 증명할 수 없어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지인의 할아버지처럼 ‘사지’(死地)를 가까스로 벗어나 고국에서 결혼도 하시고 자식 낳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것은 어찌 보면 천운이다. 두 분처럼 일제강점기 국외 전쟁터와 노역장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2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20만~60만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머나먼 이역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사망자 숫자가 무려 40만명 차이가 날 정도로 우리 정부는 얼마나 많은 강제 동원자들이 나라 밖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가 일본에 요청해 받아낸 관련 자료는 1971년 ‘구일본군 제적 조선출신 사망자 연명부’(2만 2919명 등재)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중국 하이난섬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千人坑)을 취재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이난섬에 끌려가 노역에 강제 동원됐다가 숨진 조선인 징용자 1200여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천인갱’은 일본의 야만성과 반인륜적 만행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거다. 그런데도 아직도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적반하장의 행태를 일삼고 있는 게 일본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이곳에서 수습된 100여위의 유해를 모셔 오지 못하는 현실은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강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피해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은 최악인 상황이다. 강제 징용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일 수 있지만 천인갱에 묻힌 이들의 한 맺힌 삶은 누가 대변해 줄 것인가.

일본은 2차 대전 당시 국외에서 전사한 일본군과 군무원, 민간인 240만명 중 절반 정도인 127만위를 찾아내 본국으로 송환했다. 2016년 관련법까지 제정해 체계적으로 유해 발굴 및 송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유해로 돌아온 강제 징용자는 1만 1069위에 그쳤다.

지난해 유해 봉환을 위한 한일 실무자협의에 참석한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일본 측 실무자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과장님이 또 바뀌셨네요.” 일본은 유해 발굴 전문가들이 10여년 이상 붙박이로 일하는 반면 우리는 순환 배치 인사 관행에 따라 매년 실무자가 바뀌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은 말할 것도 없다. 유해 발굴에 대한 ‘국가 의지’가 이렇듯 차이가 난다. 현 조직도 행안부의 태스크포스(TF)다. 정권이 바뀌면 이 조직 또한 어떤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과거 유해 송환 문제를 다룬 조직인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2015년 아무도 모르게 문을 닫았다. 전쟁 피해자 유해 송환 숫자 ‘1만 대 127만’은 양국 정부의 책임성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또 다른 척도다.

bori@seoul.co.kr
2019-08-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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