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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칼럼] 일본의 도발, ‘20년 후’에는 견딜까

[손성진 칼럼] 일본의 도발, ‘20년 후’에는 견딜까

손성진 기자
입력 2019-07-17 17:42
업데이트 2019-07-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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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논설고문
몇 년 전 베트남 하노이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을 방문했다. 유심히 보니 생산·조립 장비가 일본 후지쓰 제품이었다. 두 가지 의문이 생겼었다. “왜 우리 기업은 중요한 생산 장비를 만들지 않을까?”, “‘저 장비가 없으면 스마트폰 생산은 중단되지 않을까?”

모든 부품과 소재, 장비를 한 국가나 한 기업에서 생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 간 분업이나 기업 간 분업은 효율의 측면에서 필요하다. 일본이 만드는 불화수소는 어느 나라 제품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불화수소를 돈 들여 개발하느니 일본산을 수입해서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늘 그랬듯이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다가 큰일을 당한다. 일본 총리 아베가 그것을 무기로 들고나오니 결과적으로 꼼짝없이 당하고 있다. 적과 우방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과거엔 적이었다가 가까운 나라가 됐지만, 적대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에 대비했어야 했다.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너무 믿었다. 그렇게 근시안적이다.

부품·소재 산업의 대일 의존도가 높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 인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란 사람은 이제 와서 “부품·소재 산업 국산화에 20년이 걸린다”고 무책임하게 발언했다. 그러면 20년 전에는 어땠을까.

1999년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정덕구씨였다. 그가 중점을 두었던 3대 정책 중의 첫째는 부품·소재 산업 육성이었다. 부품·소재 산업 육성은 그 뒤에도 정치인, 관료들의 단골 메뉴였다.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2005년 연두회견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핵심인 부품·소재 산업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에 부품소재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산자부 차관이 민관 합동 투자유치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가서 투자유치 설명회도 열었다.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도 발족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품·소재 산업 육성 정책을 언급하면서 “20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아직 큰 변화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때도 ‘20년 전’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는 240억 8000만 달러였는데 부품·소재 분야가 151억 3000만 달러로 63%다.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을지는 모르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핵심 분야에서는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말로만 외쳤지 부품·소재 산업 육성은 정권이 바뀌면서 동력과 구심점을 잃었다. 부품·소재 연구개발 예산 규모도 비중도 줄었다. 우리 정책의 고질적인 병폐가 이것이다.

부품·소재 산업은 중소기업이 중심이 돼야 하지만, 우리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자본력은 몹시 취약하다. 문제는 정부와 대기업이다. 중소기업을 키우기보다는 수입에 의존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대기업은 자신들의 이익률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고 중소기업 지원에는 인색하다. 돈이 없는 중소기업은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산업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들은 정권 따라 흔들리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은 어디로 갔나. 한동안 관심도 없이 넋 놓고 있다가 이제 또 부품·소재 산업의 독립이니 예산 증액이니 하며 떠들어 댄다. 물론 일말의 성과도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득하지 못하고 끈기가 없다. 일관성도 없다. 입으로만 “육성, 육성” 했던 과거 행태가 또 반복될지 알 수 없다. ‘일본 쇼크’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물에 물 탄 듯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지금 정부는 산업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조업은 다 죽어 가고, 그렇다고 미래산업·4차산업을 위해서도 정부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2030년 `제조업 세계 4강’ 선언도 공허하게 들린다. 구체적인 중장기 로드맵은 있는가.

반도체 소재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와 기계 등에서도 일본이 또 도발을 일으킬 수 있다.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는 수소자동차의 백금촉매라는 핵심 부품이 하나의 예다. 그런데 국내 대학과 연구원에서 대체 부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우리의 기술력이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산학연이 힘을 합친다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20년 후에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야 한다.
2019-07-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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