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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마라탕과 대왕카스텔라/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마라탕과 대왕카스텔라/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19-06-23 22:52
업데이트 2019-06-2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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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 리얼리즘은 여러 모순을 가진 사회 속 고통받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담아낸다. 하지만 리얼리즘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등을 따지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예술로 형상화하다 보면 자칫 부조리극이 되곤 한다. 실제 우리네 삶은 이성과 합리의 가치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조리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삶과 예술의 통찰을 담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가 그렇다. 갈매기처럼 비상을 꿈꾸는 여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은 자신이 쏴 죽인 갈매기를 보여 주며 이상을 꺾게 한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남주인공이다. 부조리함이야말로 ‘진짜 리얼리즘’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17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대왕카스텔라 열풍’은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의 키워드였다. 하루 매출 200만원 안팎이라는 입소문이 전해지며 1000개가 넘는 가게들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프랜차이즈만 17개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 종편TV의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다음날 그 열풍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매출이 80~90% 줄어 울상이라는 뉴스 뒤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영업자들의 희망을 배반한 일종의 ‘블랙코미디’와 같은 현상이었다. 오죽하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 지하에서 기생해야 하는 빈곤한 가장 두 사람이 한결같이 대왕카스텔라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한 인물로 묘사됐을까.

삶이 부조리하니 예술 역시 덩달아 부조리한 모습으로 풀어 갈 수밖에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기생충’ 속 서민의 삶이 ‘희비극’으로 펼쳐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서민들 삶의 부조리함은 대왕카스텔라 흥망의 우스꽝스러움에 머물지 않았다. 배달 전문 탕수육 창업 때도 그랬으며, ‘치맥 열풍’에 기대 전국적으로 8만개가 넘게 성행하는 치킨집 역시 매년 6200개가 새로 생기는 속에서 8000개가 문을 닫는다. 최근 전국 방방곡곡에 빼곡히 들어서는 ‘마라탕’(麻辣?) 또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당장 맵고 얼얼한 맛에 흠뻑 빠지게 만든 이 중국 음식이 대왕카스텔라의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자영업자들은 근본적으로 ‘을’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내고,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압박에 시달리며, 배달앱에 수수료를 줘야 한다. 그렇다고 가맹 본사에 맞서기 쉽지 않고, 건물주와는 일대일 계약이라 더더욱 쉽지 않다. 하릴없이 최저임금 탓을 하는 게 부조리한 ‘을의 삶’이다.

youngtan@seoul.co.kr
2019-06-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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