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밟는 자, 나라를 밟는다”… 파격의 ‘1세대 페미니스트’

입력 : ㅣ 수정 : 2019-06-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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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인권 운동의 선구자 이희호
“유복한 환경이 빚”이라며 여성차별 반기
혼인신고 캠페인·여성부 창설에도 기여
근로여성 조사로 차별적 대우 철폐 운동
‘암탉’ 등 생활 속 여성 비하 언어 없애기
남녀상속 차별 없애는 가족법 개정까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 10일 97세로 별세하기까지 여성 운동과 민주화 투쟁, 남북 화해협력에 헌신하며 족적을 남겼다. 1976년 5월 ‘3·1 구국선언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구속된 후 첫 재판이 열린 서울 서소문 법원 앞에서 이희호 여사와 피고인 가족들이 검정 테이프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입에 붙인 뒤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공개재판을 하라는 항의의 표시였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 10일 97세로 별세하기까지 여성 운동과 민주화 투쟁, 남북 화해협력에 헌신하며 족적을 남겼다. 1976년 5월 ‘3·1 구국선언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구속된 후 첫 재판이 열린 서울 서소문 법원 앞에서 이희호 여사와 피고인 가족들이 검정 테이프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입에 붙인 뒤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공개재판을 하라는 항의의 표시였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지난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부인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문을 연 ‘1세대 페미니스트’였다. 유복한 가정환경이 ‘빚’이었다는 이 여사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국내에 알려지기도 전에 가부장제에 맞서고 여성의 권리를 외쳤다.

이 여사가 주도한 여성 운동은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엔 파격이었다. 대표적인 게 ‘혼인 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이다. 당시에는 결혼하고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뒤에 들어온 첩 때문에 본처가 호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여사는 1959년 한국 YWCA(당시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으면서 전국 YWCA에 포스터를 보내고, ‘첩을 둔 남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 ‘아내를 밟는 자 나라 밟는다’ 같은 플래카드를 만들어 거리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또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 여성 교육자 황신덕 여사, 헌정사상 첫 여성 당대표 박순천 여사 등과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를 결성하고 남녀차별 철폐를 주장했다. 연구회는 여성법률상담소를 설치해 억울한 여성들의 동반자가 됐고, ‘근로 여성 실태조사’를 실시해 여성의 노동환경 개선,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 10일 97세로 별세하기까지 여성 운동과 민주화 투쟁, 남북 화해협력에 헌신하며 족적을 남겼다. 이 여사가 1959년부터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1962년까지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로 활동하던 모습. 뉴스1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 10일 97세로 별세하기까지 여성 운동과 민주화 투쟁, 남북 화해협력에 헌신하며 족적을 남겼다. 이 여사가 1959년부터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1962년까지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로 활동하던 모습.
뉴스1

이 여사는 연구회장 시절인 1968년 ‘직업여성 세미나’를 열고 여성 직장인들이 겪는 차별을 폭로하기도 했다. 당시 발표문은 “여성들의 직장 진출이 눈부신 현재에도 남녀 임금 차이, 결혼 즉시 퇴직 등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대우가 여전히 여성에게 가해지고 있다”면서 “최소한 노동법상 규정된 보호 조항이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구회에서 이 여사가 시작한 차별 철폐 운동은 1989년 가족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개정안은 모계·부계 혈족을 모두 8촌까지 인정하는 등 친족 범위의 남녀 차별과 남녀 상속 차별 등의 내용을 없앤다는 게 골자였다. ‘아내의 권리가 남편과 같고, 딸의 권리가 아들과 같다’고 천명한 가족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여성은 비로소 남편이나 아들에게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 주체가 됐고, 이는 2000년대 호주제 폐지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이 여사는 제도뿐 아니라 일상 속에 녹아 있는 남성 중심주의를 타파하려고 애썼다. 그는 자서전 ‘동행’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자는 도둑질 말고는 뭐든지 해도 된다’ 등 무심코 던지는 말 가운데 여성비하가 많다”면서 “이 원인은 가부장제”라고 썼다.

이 여사의 활동은 김 전 대통령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내가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고 수차례 밝혔다.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가 창설되고, 여성부와 문화관광부, 환경부, 보건복지부에서 4명의 여성 장관이 나온 것도 이 여사의 노력과 관련이 깊다. 가정폭력방지법, 남녀차별금지법이 시행된 것도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여성단체들은 11일 성명문을 발표하고 고인을 애도했다.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이 여사께서 협의회 이사로 계셨던 1961~1970년은 전쟁 후 3·15 부정선거를 비롯한 여러 정치 사건이 벌어졌고, 뿌리 깊은 성차별이 남아 여성단체가 싸워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면서 “여사님이 있어 대한민국 여성운동이 지금과 같은 성과를 이뤘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9-06-1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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