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노트르담 화마 이긴 프랑스의 힘...매뉴얼·훈련·기부 ‘삼위일체’

노트르담 화마 이긴 프랑스의 힘...매뉴얼·훈련·기부 ‘삼위일체’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9-04-20 06:00
업데이트 2019-04-20 06: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2008 숭례문 화재와 비교되는 ‘문화강국’ 프랑스의 대처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성당 건물 외벽에서 복구를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파리 AFP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성당 건물 외벽에서 복구를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파리 AFP 연합뉴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구조와 특성은 반복 훈련 덕분에 평소에 잘 숙지하고 있었어요. 종탑의 나선형 계단을 수천 번 오르내리면서 훈련해 왔습니다. 막 출동해보니 현장에서는 성당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산 인해를 이뤘지만 우리는 준비가 돼 있었지요.”

프랑스 파리 소방대(BSPP) 소속의 2년차 여성 소방대원인 미리암 추진스키(27)는 18일(현지시간) 일간 르 파리지앵 등 프랑스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노트르담 성당 지붕 가운데 우뚝하게 솟은 96m 첨탑은 화재 발생 1시간여 만에 화염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지만 추진스키를 비롯한 파리 소방대의 발 빠른 초기 대처 덕분에 성당 전체의 붕괴라는 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프랑스 소방대원들이 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라 철저하게 반복적으로 훈련을 해왔고 개별 문화재별로 화재 매뉴얼이 있었다는 사실은 재난에서도 더욱 강한 ‘문화강국’ 프랑스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과 애정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화재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 500명을 이날 파리 엘리제궁에 초청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시민들은 소방서에 초콜릿과 꽃을 보내는 등 소방 대원들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EPA 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EPA 연합뉴스
●닮은 듯 다른 2008년 숭례문과 2019년 노트르담 화재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모습은 11년전인 2008년 2월 10일 밤에 일어난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화재를 떠올리게한다. 한국인들은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던 국보 1호가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보면서 상실감과 슬픔을 느껴야 했다.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국과 프랑스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대표 문화재다. 숭례문은 건축 시기를 명확히 아는 서울 시내 목조 현존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한 뒤 세종과 세조 때에 보수 공사를 했다. 돌을 쌓아 조성한 석축(石築) 위에 무지개 모양 홍예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측면 2칸인 누각을 올렸다.

파리 시테섬 동쪽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유럽 고딕 양식 건축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꼽힌다.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열었고,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장례식 등 프랑스 역사의 주요 사건이 펼쳐진 무대다.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무대로도 유명하고, 지금도 하루 평균 관광객 3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다.

숭례문 화재는 70세 남성이 토지 보상금에 대한 불만으로 홧깃에 일부러 불을 지른 방화였으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첨탑 보수 작업 과정에서 벌어진 실화로 추정된다.

화재 원인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상층부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유사하다. 숭례문 방화범은 2층 문루에 불을 질렀고,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공사를 위해 첨탑 주변에 촘촘하게 설치한 가설물인 비계와 성당 내부 목재를 중심으로 불이 났다. 프랑스 당국은 성당 지붕 쪽에 설치된 비계의 전기회로에 이상이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으며 전기 합선과 같은 과부하로 발화했을 가능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숭례문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모두 지붕을 잃었다는 점과 다행히 전소를 피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숭례문은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까지 불길이 잡히지 않자 지붕을 해체하기로 결정했고, 오전 2시쯤 누각이 무너져 내렸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화염 속에서 화재 1시간 만에 나무와 납으로 만든 첨탑이 사라졌다. 숭례문은 5년 3개월간 전통 방식에 가깝게 진행한 복구공사 끝에 2013년 5월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으며,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기간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8년 2월 10일 불에 타 무너지는 숭례문의 모습  연합뉴스
2008년 2월 10일 불에 타 무너지는 숭례문의 모습
연합뉴스
●비상 매뉴얼과 소방 당국의 적확한 판단력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첨탑과 전체 지붕의 3분의 2 가량이 무너졌지만 두 개의 종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가시면류관, 루이 9세가 입었던 튜닉 등 주요 유물들은 무사했다. 이는 사전에 갖춰진 매뉴얼과 훈련, 그리고 소방관, 문화재 직원, 사제를 넘어 드론과 로봇까지 동원된 총력전을 펼친 덕분이다.

프랑스는 유물 보호를 위해 번호를 매겨 화재 발생시 외부 반출 우선순위를 정해놓는 비상 매뉴얼도 갖추고 있다. 이번 화재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유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된 것도 바로 이런 매뉴얼을 바탕으로 한 훈련이 빛을 발한 결과다. 화재가 발생한 직후 문화재 관리 부처와 파리시 문화재담당자 100여 명이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소방당국과 함께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논의를 거듭하며 진화작업을 벌였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두 차례 대규모 훈련도 실시했다. 이 훈련은 유물과 성화 등 예술작품을 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화재에 투입된 소방관 500명 중 100명을 예술작품을 구하는데 배치한 것과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외부에서 헬기나 외부 호스로 끄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내부로 진입해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 역시 이같은 훈련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번 화재 때는 무게 13t의 종이 무너져 내리면 성당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소방관들은 첨탑은 포기하고 종탑의 나무 지지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했고 이는 올바른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

●복원 기부금 1조원 돌파한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직후 성당복원을 위한 프랑스와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기부금 행렬이 줄을 이어 하루 반만에 8억 8000만 유로(약 1조 124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문화재 관리를 위해 한해 편성하는 예산(3억 2000만유로)의 2배 이상이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강제 모금을 국민 성금으로 포장하고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킨다는 질타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대기업들의 거액 기부를 놓고 프랑스 좌파 진영에서는 대기업들이 세액 공제 혜택을 받아 정부 세수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자발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기금을 쾌척한 프랑스 대기업 회장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기부금을 내는 개인에게 최대 66%까지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한국의 경우 받을 수 있는 세금감면 최대 공제율이 30%라는 차이가 있지만 문화재를 대하는 의식 자체의 차이라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많이 본 뉴스

22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선거 뒤 국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할 사안은 무엇일까요.
경기 활성화
복지정책 강화
사회 갈등 완화
의료 공백 해결
정치 개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