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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원본 ‘서한연의’가 삼국지의 아류?… 이문열, 오해한 것”

“초한지 원본 ‘서한연의’가 삼국지의 아류?… 이문열, 오해한 것”

이슬기 기자
입력 2019-02-20 20:32
업데이트 2019-02-2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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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초한지’ 펴낸 인문학자 김영문

“삼국지에 버금가는 역사 디테일·묘사
역사 비틀고 지나치게 엇바꾼 것 아닌
그 시대에 따른 민중의 관심·유습 반영
17세기 견위도 민간 이야기 섞어 출간
초한지, 이합집산 거듭하는 현재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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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원전을 완역 출간한 김영문씨에게 물었다. 특히 어떤 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은지. “욕심은 다들 읽으면 좋겠죠(웃음). 30대 초반 정도 되는 직장 생활 시작하시는 분들께 권하고 싶어요. 인물들끼리 거래를 주고받는 모습이라든가, 더 올바른 선택에 대한 고민 같은 데서 배울 점이 많거든요. 우리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수용해서 당대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거예요.”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초한지’ 원전을 완역 출간한 김영문씨에게 물었다. 특히 어떤 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은지. “욕심은 다들 읽으면 좋겠죠(웃음). 30대 초반 정도 되는 직장 생활 시작하시는 분들께 권하고 싶어요. 인물들끼리 거래를 주고받는 모습이라든가, 더 올바른 선택에 대한 고민 같은 데서 배울 점이 많거든요. 우리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수용해서 당대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거예요.”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사면초가, 지록위마, 토사구팽, 낭중지추…. 이 많은 사자성어들은 다 ‘초한지’에서 왔다. 유방은 유비보다 멀고, 초·한은 장기판에서나 보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우리 실생활에 근접해 있는 게 초한지다. 정비석, 김홍신, 이문열 등의 책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초한지의 원본인 견위(생몰연대 미상)의 ‘서한연의’를 저본으로 완역한 것은 국내에 한 권도 없었다. 국내 최초 ‘루쉰전집’ 발간에 참여하고 ‘동주 열국지’를 완역한 인문학자 김영문(59)씨가 이번에는 ‘원본 초한지’(전3권·교유서가)를 내놨다. 그를 지난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초한지를 완역한 계기는 무엇인가.

“2015년에 내놓은 ‘동주 열국지’ 후속작을 고민하다 동주 열국지(춘추전국시대) 다음 시대가 초한지라서 보게 됐다. 원본이 ‘서한연의’라는 건 알았지만 이문열씨가 ‘초한지’ 서문에 서한연의에 대해 혹평을 해 놓은 걸 보고 선뜻 마음이 가질 않더라. 그래서 초·한에 관한 다른 소설이 있는지 조사해 봤지만 역시 서한연의밖에 없었다. 구입해서 읽어 보니 여러 가지 플롯이라든가, 역사 디테일, 묘사 기법이 삼국지에 버금가서 원전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금까지 ‘서한연의’는 완역이 되지 않았을까.

“조선시대에 완역이 되기는 했다. 1612년 견위가 ‘서한연의전’을 완성하고 금방 들어왔던 거 같다. 지금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셔한연의’ 언해 필사본 등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셔한연의’라는 이름으로 출간이 됐지만 그때 나온 건 조선시대 서한연의 언해본을 축약하고 편역한 것들이다. 이후 출간된 것들은 유명 작가들이 초한지 내용에 상당 부분 편역, 윤색을 하고 작가적 필력을 가미해서 낸 것들이다. 조선시대에 서한연의 언해본이 나왔는데도 해방 이후에는 원저자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초한지는 마치 저자가 없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지금도 검색해 보면 초한지는 저자가 없다는 설명이 많다.”

-이문열 작가는 2008년 출간된 ‘초한지’ 서문에서 ‘서한연의’에 대해 ‘원전이 뻔히 보이는 아류’라며 ‘사실을 지나치게 뒤틀고 엇바꿔 ‘칠 푼의 진실과 서 푼의 허구’라는 연의의 본령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렸다’고 적었다.

“(이 작가가) 오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가는 ‘견위가 나관중의 상상력을 빌렸다’고 썼는데, 견위나 나관중 이전에 이미 중국 민간에서는 삼국지·초한지·열국지처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들을 서로 섞어서 공연했다. 이걸 가지고 1300년대에 나관중이 그러했던 것처럼 1600년대에 견위도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조금씩 윤색해서 배치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 거다. 이 작가가 ‘역사를 뒤틀고 엇바꿈이 지나치다’고 말했던 ‘구리산 십면매복’ 같은 부분은 실제 이 작가가 서한연의의 원전 서사로 인정한 ‘삼국지통속연의’ 현존 최고본(1522) 중 관우가 ‘한 고조(유방)가 항우에게 구리산 일전에서 성공을 거두어 400년 기업을 열었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견위는 책 서문에서 ‘서한권을 읽어 보니 견강부회하고 저속한 대목이 많았다’고 썼다. 이 작가가 초한지를 나름의 문학관과 역사관에 입각해 쓴 것과 똑같은 입장이다. 연의 소설 안에는 청중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들을 집어넣는 유습이 있는데 그것은 실상 ‘적벽대전’ 같은 허구가 들어간 삼국지나 초한지나 비슷하다. 삼국지의 사실 대비 허구 비율이 6대4 정도라면 초한지도 그 정도 된다.”
-견위표 ‘서한연의’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단 스토리라인이 명쾌하다. 초·한 딱 두 나라가 쟁패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촉·오 세 나라가 뒤얽힌 삼국지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이문열의 초한지가 인물 심리나 장면 묘사에 치중한 반면 견위의 서한연의는 훨씬 간명해 독자들이 독서 속도를 높이면서 전반적인 디테일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유방의 대군이 낙양땅에 와서 항우와 정면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에 동삼로라는 사람을 만난다. 항우가 자신이 옹립한 황제 의제를 시해했을 때 그 시신을 건졌던 사람이다. 동삼로는 유방의 수레를 잡고 ‘당신이 전쟁을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래서는 천하의 민심을 얻을 수 없으니 의제를 위해 소복을 입으라’고 한다. 동삼로가 유방의 정복 전쟁에 ‘대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부여해 준 거다. 나중에 초·한이 일진일퇴하다가 홍구를 경계로 땅을 나눌 때 유방의 모사들은 협정을 파기하고 초나라를 쳐야 한다고 말한다. 대의·민의 같은 이데올로기가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깨지는 거다. 어떻게 보면 대의는 명분으로 놔두고 정당 이익에 의해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현실과 비슷한 것 같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02-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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