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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不·on)한 회의] 불신의 기레기 탈출구는 팩트다

[불온(不·on)한 회의] 불신의 기레기 탈출구는 팩트다

곽혜진 기자
입력 2018-12-13 17:50
업데이트 2018-12-14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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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뉴스의 속보 경쟁…진실을 흔드는 혼돈의 벽에 갇힌 언론의 고민
맥도날드 갑질·이수역 폭행 논란 공분의 벽에 갇힌 대중의 시선


기사의 생명은 정확성, 신뢰성입니다. 이상적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팩트체크나 후속보도에 소홀할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가장 먼저 뉴스를 전하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죠. 속보 경쟁에서 이기려면 때론 ‘신속성’이 최우선 가치가 되곤 합니다. 때문에 기자들은 정확성과 신속성 사이에서 종종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번 ‘불온한 회의’에서는 실시간으로 뉴스가 쏟아지는 시대에 기자들은 어떻게 저널리즘을 지키고, 독자들은 어떻게 기사를 취해야 할지 이야기해 봅니다.
연신내 맥도날드 영상(①)
연신내 맥도날드 영상(①)
부장: 맥도날드 매장에서 한 고객이 점원에게 햄버거를 던지는 영상이 공개돼 공분이 일었는데.

유민: 폐쇄회로(CC)TV에 찍힌 장면만으로는 고객의 일방적인 갑질로 보였어요. 그래서 대다수 언론이 ‘연신내 맥도날드 갑질 사건’으로 보도했죠. 우리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실제론 양측 모두 잘못이 있었고, 서로 사과하면서 잘 마무리된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달란: 요즘 CCTV 화면을 너무 맹신하는 풍조가 있어요. 영상이 원본 그대로인지 편집한 것인지 알 수 없잖아요. 제보하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강조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점에서 판단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진호: 연신내 맥도날드 영상(①)도 진실은 영상 외적인 부분에 있었어요. CCTV 화면에는 앞뒤 맥락 없이 손님이 화내는 부분만 담겨 있었거든요. 이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화면에 속은 셈이죠.

세진: 그 사건이 갑질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는 영상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대등한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 사이에는 점원과 손님이라는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최초로 보도한 매체가 이에 집중해 갑질 사건으로 규정했고, 이슈가 되자 다른 매체들도 따라 쓴 거죠.

혜진: 언론의 책무는 완벽한 진실은 아닐지라도 최대한 진실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취재원이 하는 말을 일단 받아 써서 내보내는 건 너무 무책임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이런 걸 ‘따옴표 저널리즘’(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를 서둘러 보도하는 행태)이라고 합니다. 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따옴표 처리라는 비겁한 수단을 사용하는 거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든지 혹은 사건의 이면을 보여 주든지, 조금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진호: 대중은 상황에 대한 콘텍스트(맥락)를 알려주길 원해요. 그냥 ‘맥도날드 폭행사건’보다 ‘맥도날드 갑질 사건’에 사람들이 더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죠. 개개인의 사사로운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하는 공적 사안처럼 느껴지니까. 그래서 이번처럼 공적인 이슈가 아닌데도 언론이 억지로 끼워 맞춰서 공론화하는 경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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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 모자 성폭행 조작사건’(②)
2015년 ‘세 모자 성폭행 조작사건’(②)
유민: 2015년 ‘세 모자 성폭행 조작사건’(②)이 대표적인 오보였어요. 당시 세 모자가 수십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또 성매매까지 강요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국민적 공분을 샀어요. 언론도 일제히 보도했고요. 하지만 얼마 후 모두 거짓 주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수역 사건(③)
이수역 사건(③)
달란: 이수역 사건(③)도 마찬가지예요. 당시엔 여성들이 남성들한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저 역시 그런 맥락으로 썼어요. 남성에게 폭행당하는 여성에 관한 사건은 일상적이니까요. 의심할 만한 여지가 없었죠.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쌍방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는 것 외엔 무엇이 진실인지 알려지지 않았어요.

진호: 그럴 땐 안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성 언론이 안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대안 언론도 많잖아요. 그들 역시 여론을 장악하는 영향력이 강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확산은 될 겁니다.

달란: 이처럼 영상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사건을 접할 때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 있어요. ‘일단 피카추 배를 만지겠다’고 말합니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한 장면에서 비롯된 표현인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판단을 유예하겠다는 뜻이에요.

혜진: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의제 설정입니다. 어떤 뉴스를 선택해 공론화할 것인지 사전에 판단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보라면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 않아도 보도하고요. 반대로 가치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파급력이 있어도 보도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안 언론은 이 같은 게이트키핑(뉴스 결정권자의 취사선택)이 약해요. 대중의 반응에 끌려가는 편이죠.

달란: 그래서 보도를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단 언론이 조금이라도 팩트를 찾아서 전달하는 게 낫다고 봐요.

진호: 맞아요. 그조차도 하지 않으면 언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부장: 요즘은 이슈의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은데.

달란: 과거엔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언론에 제보하거나 국가기관에 신고하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국민청원이란 창구가 생긴 후론 누군가가 나서서 억울함을 토로하면 모든 언론이 달라붙어요. 확산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죠. 대신 검증 절차는 점차 생략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오보가 발생하고 언론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진호: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상당해요. 사람들이 공권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국민청원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사건이 종결돼도 믿지 않는 사태가 벌어져요.

세진: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이 그런 경우입니다. 범인의 동생이 공범인가 아닌가 진실 공방이 있었어요. 경찰이 동생을 공범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려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자꾸 내막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거죠.

달란: 신뢰를 되찾으려면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팩트체크’가 중요해요. 수사기관을 통해서 사실관계를 철저히 파악하고, 당사자 또는 목격자와 어떻게든 접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현장에 가서 직접 취재도 해야 하고요.

유민: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 기사에 전제를 다는 거죠. 이 사건은 아직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포함됐을 뿐이라고 말이에요. 자살 보도할 때 하단에 자살을 예방하는 문구를 넣는 것처럼요.

부장: 인공지능이 개인의 취향에 맞는 뉴스만 제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기 힘든 점도 한몫하지.

달란: 개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취하게 되죠. ‘확증 편향’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현재 여론의 생리가 점점 더 그렇게 변하고 있어요. 또 언론의 보도보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분석해 주는 정보를 더 믿는 것 같아요.

유민: 정보의 양은 넘쳐나는데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죠. ‘증권가 지라시’에 도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근거도 없는 음모론을 사실이라 믿고 퍼트려요.

진호: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더욱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명확한 팩트가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달란: 이건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진호: 사실 우리조차 선을 넘을 때가 있어요.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면 사건 자체는 뜨겁더라도 우리는 차갑게 써야겠죠.

정리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2018-12-14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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