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길섶에서] 기억의 처분/황성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기억의 처분/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18-11-11 22:08
업데이트 2018-11-11 23:3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1년 반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던 탓일까. 오래된 가구, 전기제품 같은 물건은 고사하고 책이나 앨범, 잡화들이 거의 없어졌다. 버리는 데 도가 텄지만, 그래도 처분 못 하고 남은 물건은 상자 몇 개에 넣어 이사 때마다 들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남은 게 책 300권 정도에 정리 안 된 사진, 편지, 연하장, 소품 정도다. 지금의 집에 산 지도 3년이 다 돼 가니, 뱃속에서 그 몹쓸 역마살이 꼼지락거리며 올라오는 듯하다.

참다 참다, 내 ‘유품의 생전 정리’를 핑계로 마지막까지 넘지 말아야 선으로 삼았던 케케묵은 편지와 연하장, 일기 등에 손을 대고야 만다. 수십 년간 소중히 보관해 온 기록과 사진을 가차없이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젊은 날의 치기가 새삼스럽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도 있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건강하라’는 당부가 있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량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잘 입지 않은 옷, 거들떠보지 않은 소품은 가급적 버린다. 기한은 정해놓은 게 없다.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30대 초반의 작가는 ‘2년’을 기한으로 삼았다. 안 좋은 기억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동처분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18-11-12 29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