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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슬픔이 아름다움에게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슬픔이 아름다움에게

입력 2018-10-30 17:40
업데이트 2018-10-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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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네 베레프킨은 18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네 살 아래인 알렉세이 야블렌스키를 만났다. 베레프킨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가 일리야 레핀의 문하생 중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야블렌스키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부임했지만, 그림이 좋아 공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에게 반한 베레프킨은 이 남자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오늘날에는 사랑만으로 자신의 목표를 간단히 포기한 그녀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여성 미술가가 드물었던 시대에 자신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작용했던 것 같다. 가난해서 결혼에 대한 희망을 접었던 야블렌스키는 베레프킨과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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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네 베레프킨, ‘가을의 목가’, 1910년쯤, 78※60㎝, 아스코나 현대미술관, 스위스 아스코나.
마리안네 베레프킨, ‘가을의 목가’, 1910년쯤, 78※60㎝, 아스코나 현대미술관, 스위스 아스코나.
두 사람은 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던 뮌헨으로 갔다. 아내는 전심전력을 다해 남편을 지원했다. 슈바빙 기젤라스트라세에 있던 두 사람의 집에는 여러 국적의 예술가들이 모여 북적거렸다. 아무 걱정 없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남편은 아내의 기대만큼 빨리 발전하지 못했다. 베레프킨은 괴로워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남편이 십대 하녀와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고통과 함께 환상에서 깨어났다.

베레프킨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을 놓은 지 10년 만이었다.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강박적으로. 물감을 다루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심장을 갉아먹는다.” 베레프킨의 그림에는 격정과 공허함이 교차한다. 선명한 원색은 불안한 화음을 이루고, 움직이는 것 같은 굵은 선이 공간을 파격적으로 분할한다. 야블렌스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개성적 세계를 이루었으나 그녀가 두려워했던 대로 미술시장이나 비평계는 반응하지 않았다. 야블렌스키는 성공하자 아내를 떠나 아들의 생모에게 갔고, 빈털터리로 남겨진 베레프킨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여생을 마쳤다.

‘가을의 목가’는 뮌헨 인근 산악 지대에서 그린 것이다. 원경에는 가파른 산봉우리가 겹쳐 있고, 단풍나무들은 폭발한 것 같다. 아기를 어르는 부부는 세상 모르고 평화롭다. 이들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미술평론가

2018-10-31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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