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KAI의 고배, 보잉의 축배… ‘덤핑’ 탓만 하기에는 예견된 실패?

KAI의 고배, 보잉의 축배… ‘덤핑’ 탓만 하기에는 예견된 실패?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8-09-28 19:37
업데이트 2018-09-28 20:17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美공군 고등훈련기 수주전 탈락…가격外 트럼프 정책, 차세대 기술 차이도 살펴야

이미지 확대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이 개발한 미국 고등훈련기 BTX1 보잉 홈페이지 캡쳐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이 개발한 미국 고등훈련기 BTX1 보잉 홈페이지 캡쳐
이미지 확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이 공동개발한 고등훈련기 T50A  서울신문 DB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이 공동개발한 고등훈련기 T50A 서울신문 DB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이 27일(현지시간)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수주전에서 탈락하면서 승자인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의 ‘덤핑 입찰’이 승패를 가른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내에서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자존심 대결 양상을 띠며 사실상 2파전으로 전개됐던 이번 수주전 결과를 단순히 가격 차이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정책과 기술적 측면에서 예견된 실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등훈련기는 예비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투기 운용에 필요한 고난이도의 조종 기량과 다양한 전술 등을 익힐 수 있는 항공기다. 이번 사업은 57년된 미 공군의 T38C 훈련기 350여대를 교체한다는 점에서 향후 파생 효과가 만만찮고 그만큼 세계 무대에서 한층 도약할 기회를 엿보던 KAI로서는 입찰 성공이 절실했다.

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미국산 90% 이상 사용 보잉의 전략 먹혔나

미 공군은 이날 보잉·사브 컨소시엄측과 92억 달러(약 10조 2000억원) 규모의 훈련기 교체사업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노후화된 T38C 기종 위주의 교육훈련사령부 시설을 교체하고 351대의 새 고등훈련기와 46대의 시뮬레이터를 구매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미 공군은 계약상 일차적으로 2023년부터 훈련기 351대와 시뮬레이터 46대를 보잉·사브로부터 인도받는다. 이후 공군이 필요하면 추가로 훈련기 125대, 시뮬레이터 74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해 모두 훈련기 475대와 시뮬레이터 120대까지 갖출 수 있도록 했다.

당초 미 공군은 훈련기 351대를 교체하는데 197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쟁 입찰을 통해 비용을 92억달러까지 줄였다. 시장에서 예상했던 가격이 163억 달러였다는 점과 비교해도 현저하게 낮다. KAI·록히드마틴측이 197억 달러에서 절반 이상인 105억 달러를 깎아준 보잉·사브측의 저가 입찰에 밀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수주전에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KAI도 수주 주체를 미국 록히드마틴으로 내세웠다.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은 1997~2006년 2조원 가량을 들여 공동 개발한 T50 훈련기의 개량 모델 T50A를 내세워 입찰에 참여했다. KAI는 부품 생산과 반제품 조립, 록히드마틴은 최종 조립과 훈련용 소프트웨어 공급 역할을 맡고 최종적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조립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T50A 모델 부품의 60~70%가 미국 내 공장에서 제조된다고 홍보했다.

반면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개발한 BTX1 훈련기의 경우 90%가 미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측은 텍사스의 공급업체를 선정해 날개와 그 밖의 구조 제작을 하고 세인트루이스의 보잉 공장에서 최종 생산을 한다는 계획이다. 미 공군이 BTX를 선정한다면 미국 내 34개 주에서 1만 7000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것을 강조했다. 미국산 부품의 비율과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밀린 셈이다.

스마트폰 세대에 적합한 보잉의 터치스크린 방식 디스플레이도 각광

기술적 측면에서 보잉은 지난 1월 BTX1 훈련기의 조종석을 공개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보잉은 항공기 전후방 조종석에 터치스크린 방식의 대형 디스플레이를 동일하게 설치해 비행중 학생 조종사와 교관이 각종 정보를 동일하게 볼 수 있으며, 전방석의 조종사가 어떤 입력을 선택하는지 후방석의 교관이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계식 버튼이 거의 없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익숙한 세대를 염두에 둔 조종석인 셈이다.

반면 KAI와 협력한 록히드마틴은 KAI의 T50이 예비 조종사들에게 기본 비행술을 가르치기 충분할 만큼 다루기 쉽고, 첨단 전술환경 훈련도 할 수 있는 탁월한 항공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보잉·사브측의 BTX1이 2016년 12월 초도 시험비행을 마친 개발중인 비행기임에 비해 KAI의 T50 계열기 150대 이상이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고 2000명 이상의 조종사들이 T50을 통해 훈련 받았다는 점도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밖에 T50A의 조종석이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공군 주력 스텔스 전투기인 F35, F22와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AI는 이번 사업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검찰 수사 등을 받으며 홍역을 앓기도 했다. 검찰 수사는 대규모 매출조작과 납품원가 부풀리기 등의 경영비리 의혹으로 확장됐고 KAI는 방산 비리 집단으로 내몰렸다. 하성용 전 KAI 사장은 지난해 10월 구속기소되기도 했다. 경쟁사들이 KAI의 방산 비리 의혹을 활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필사적으로 매달린 보잉, 군수산업에서의 입지 회복할 듯

이번 TX 사업은 미국 군수시장에서 열세에 놓였던 보잉의 입지를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보잉은 2001년 당시 미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 입찰 경쟁에서 록히드마틴의 F35에 패배했고, 2015년에는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사업에서 노드롭그루먼에 밀린 뼈아픈 추억이 있다. 보잉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군수 산업의 비중이 2010년 50% 수준에서 지난해 23%까지 떨어졌다는 점에서 F35, F22 등으로 입지를 확고히 다진 록히드마틴보다는 이번 TX사업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보잉의 이번 승리는 지난 수십년간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폭격기 사업에서 밀려 위기에 몰렸던 보잉의 군수 부문에 활기를 가져올 것”이라며 “록히드마틴과 KAI는 T50 계열 항공기가 여전히 탄탄한 국내 시장과 수출 실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쟁에서의 패배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