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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추억도 상영중

[포토 다큐] 추억도 상영중

박윤슬 기자
입력 2018-08-02 22:24
업데이트 2018-08-0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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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한 단관 영화관 ‘동광극장’

경기 동두천에는 ‘와칸다 극장’이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가상의 나라 와칸다는 자연 속에 숨겨져 있어 문명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 내부는 최첨단 기술을 갖춘 선진국가다. 동두천 한 작은 마을에 위치한 이 노란 간판의 극장이 어떻게 이런 별명을 얻게 됐는지 직접 찾아가 봤다.
작은 골목에 상점들과 함께 위치한 동광극장은 노란색 간판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은 골목에 상점들과 함께 위치한 동광극장은 노란색 간판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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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건물 밖에 ‘동광극장상영중’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영화관 건물 밖에 ‘동광극장상영중’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동광극장은 국내에 하나 남은 ‘단독 건물의 단관 개봉관’이다. 노년층 전용관, 다양성 영화관, 추억의 명화 등을 상영하는 극장들을 제외한 단관극장은 사실상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 영화관의 대기업화 바람이 불면서 옛 극장들은 폐업하거나 일부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959년 지어진 동광극장은 고재서(62) 대표가 1986년 인수한 이래로 30여년간 옛 모습을 지키며 지금까지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대기실의 한 관객이 35㎜ 영사기로 상영되는 영상을 보고 있다. 고 대표로부터 들을 수 있는 생생한 한국영화사(史)는 동광극장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대기실의 한 관객이 35㎜ 영사기로 상영되는 영상을 보고 있다. 고 대표로부터 들을 수 있는 생생한 한국영화사(史)는 동광극장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한쪽 벽에 아날로그 시절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종이 걸려 있다. 고 대표가 극장을 인수한 뒤 대대적인 수리를 하던 1993년 지붕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쪽 벽에 아날로그 시절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종이 걸려 있다. 고 대표가 극장을 인수한 뒤 대대적인 수리를 하던 1993년 지붕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기실 한편에 고 대표가 개봉작인 ‘쥬라기 월드’를 홍보하기 위해 직접 구입한 공룡 피규어들로 꾸며 놓은 수족관이 전시돼 있다.
대기실 한편에 고 대표가 개봉작인 ‘쥬라기 월드’를 홍보하기 위해 직접 구입한 공룡 피규어들로 꾸며 놓은 수족관이 전시돼 있다.
동광극장은 단관극장이라는 것 말고도 꽤 흥미로운 곳이다. 영화관 내부로 들어가면 곧장 매표소와 매점, 넓은 대기실이 눈에 들어온다. 매표소에서 고 대표에게 표를 산 뒤 매점으로 가면 역시 고 대표가 직접 주문을 받는다. 사실상 홀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대기실엔 고 대표가 취미로 수집한 작은 수족관들과 영화 관련 피규어들이 전시돼 있고, 한쪽엔 동광극장의 옛 모습 사진 등이 걸려 있다. 특히 디지털 영화 시대로 돌입한 이후 사라진 35㎜ 필름영사기가 눈에 띈다. 이 영사기는 이제 대기 관객을 위해 돌아간다.
한 관객이 1층석 소파에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한 관객이 1층석 소파에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한 관객이 2층석 앞자리열에서 난간에 다리를 뻗은 채 비치돼 있는 충전기로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있다.
한 관객이 2층석 앞자리열에서 난간에 다리를 뻗은 채 비치돼 있는 충전기로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있다.
극장 내부는 의외로 크다. 총 283석이다. 스크린도 웬만한 복합영화관과 견주어 절대 작지 않다. 그런데 관객석을 자세히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2층 첫 줄의 관객석 앞엔 다리를 올릴 수 있는 시트가 설치돼 있다. ‘신발을 벗고 다리를 올려라’는 문구는 경고문이 아니라 안내문이다. 군데군데 콘센트도 설치돼 있고 양쪽 끝엔 아예 휴대전화 케이블이 놓여 있다. 1층은 더욱 흥미롭다. 복합영화관의 VIP 석, 골든 클래스에서나 볼 수 있는 리클라이너 소파는 물론 가지각색의 의자들이 놓여 있다. 간식거리를 놓을 수 있는 테이블도 보인다. ‘와칸다 극장’이라는 별칭, ‘응답하라 1988’·‘시그널’ 등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관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근처 부대에서 휴가 나온 군인과 가족들 또는 동네 주민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영화를 보러 온 전수규(46)씨는 이제 딸과 함께 동광극장을 찾는다며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 없어지면 슬플 것 같다’고 애정을 표했다.

‘영화관이 재미있다’는 한 관객의 말에 고 대표는 진지한 목소리로 “재미만 있으면 안 돼. (관람할 때) 편안해야지”라며 받아친다. 동광극장이 단순히 오래되고 엉뚱한 곳으로 비치는 것이 아쉽단다. 여전히 영화를 즐기기 위해 오는 관객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대형 멀티플렉스보다 앞서 혁신한 스크린과 관람석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고 대표의 모습엔 자부심도 느껴졌다.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장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달 관객 수는 많아야 200명을 넘지 못한다. “되는 데까지 해 보겠다”는 고대표의 말이 서글프게 들린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낡아도 괜찮았다. 그 속에 역사가 있고 사람이 있었다. 가지각색의 관람석처럼 지나간 사람들의 추억이 이곳에 남아 있다. 내일도,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동광극장이 여전히 ‘상영 중’이길 바란다.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영화관 밖 상영시간표는 수기로 직접 작성한다. 손님이 없는 평일은 첫 상영 회차가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영화관 밖 상영시간표는 수기로 직접 작성한다. 손님이 없는 평일은 첫 상영 회차가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영화관 건물 밖에 상영안내 모니터와 작은 벽걸이 시계가 설치돼 있다.
영화관 건물 밖에 상영안내 모니터와 작은 벽걸이 시계가 설치돼 있다.
●동광극장 이용법

#1 첫 회차 관객이라면 도착 시 셔터가 내려져 있거나 매표소에 사람이 없을 수 있다. 당황하지 말고 안내되어 있는 번호로 전화하고 잠시 기다려라. 곧 동광극장 대표가 나타난다.

#2 영화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길 추천한다. 대기실에 넉넉하고 편안한 다방 소파는 물론 피라냐(현재는 수입제한어종)와 철갑상어를 비롯한 수십개의 작은 수족관, 이젠 보기 힘든 필름영사기, 영화관련 피규어 소품 등 구경거리가 아주 많다.

#3 지정좌석제가 아니므로 빠른 자가 VIP석을 차지할 수 있다. 1층의 푹신한 리클라이너(등받이가 뒤로 넘어가는 안락의자)석과, 편안히 다리를 뻗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2층 맨 앞좌석이 인기다.

#4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영화표값은 청소년 6000원, 성인 8000원. 시간, 좌석에 상관없이 정액제다. 단돈 8000원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골든 클래스를 느껴 보자.

#5 추가 팁. 늦게 와서 앞부분을 놓쳤다면, 다음 영화 시작 전까지 기다렸다가 마저 보고 가도 된다.(단 교차 상영이 아닌 단일 영화 상영 시)
2018-08-0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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