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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도보다리 친교’ 시즌/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도보다리 친교’ 시즌/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8-05-02 23:00
업데이트 2018-05-0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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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는 호감이 가는 사람의 행동을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따라한다는 심리학 용어다. 예컨대 상대방이 팔짱을 끼면 나도 팔짱을 끼고, 상대가 벽에 기대는 행동을 하면 나도 따라서 벽에 기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심리학자들은 상대방과 똑같은 동작을 취하면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미러링을 잘 활용만 해도 상대로부터 50% 동의를 얻고, 흥미를 이끌어 내는 기회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게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도보다리 회담’을 미러링 효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가 상대방 입술만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는 독화까지 덩달아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두 정상이 판문점 습지 위에 만든 도보다리에서 수행원 없이 의자에 마주 앉아 30분간 친교(親交)를 가진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취재진을 물려 들리는 것이라고는 판문점의 새 소리와 바람 소리였을 뿐이다.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로 김 위원장이 묻고 문 대통령이 답했다.

다리 끝 벤치에 단둘이 남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박자와 조화, 리듬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문 대통령이 도보다리 벤치에 앉은 지 5분여 뒤 오른손으로 안경을 올리자 김 위원장도 오른손으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주로 문 대통령이 먼저 하고 김 위원장이 나중에 따라했다. 두 정상 간의 스텝이 맞지 않다가도 나중엔 걸음 속도가 같아지고, 오른발과 왼발이 같이 나가기도 했다. 무의식중에 따라 하는 이런 미러링 현상은 협상이 잘 풀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으리라.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백미는 단연 도보다리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정상은 평화로운 도보다리에서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를 위해 서로를 설득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유엔군사령부는 푸른색을 칠한 다리라는 의미에서 ‘블루 브리지’(Blue Bridge), 즉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색 다리’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도보다리가 있는 판문점 남측 지역이 북ㆍ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평화의집 등을 직접 언급하면서다. 물론 그때에도 도보다리는 북ㆍ미 정상의 흉금을 털어놓는 공간이 될 것이다. 북ㆍ미 정상이 완전 핵폐기를 선언하고, 문 대통령이 함께 종전선언을 한다면 도보다리는 21세기 최고의 역사 현장으로 남지 않겠는가.

ksp@seoul.co.kr
2018-05-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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