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가게·日 통해 영상 복원 기기 공수
“1981년 해운대 야외 공연 영상 찾는 중”
1000쪽 분량 대백과사전 개정판 준비
‘조용필 팬덤’은 1980년대 서울신문사가 발간했던 ‘TV가이드’에서 모집한 ‘음악가족’부터 시작해 1985년 자발적으로 꾸려진 ‘새암회’ 등을 거쳐 현재 ‘이터널리’, ‘미지의세계’, ‘위대한탄생’ 등 3대 팬클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화보집이나 굿즈(기념품)를 제작하기도 하고, 조용필 모교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팬클럽 연합 체육대회를 여는 등 조용필 음악을 축으로 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조용필 헌정밴드 ‘미지 밴드’가 결성되기도 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올해 조용필의 팬들은 오래된 비디오 영상들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백과사전을 만드는 등 조용필 50년 음악사를 기록하는 작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백씨가 들고 온 비디오테이프 30여개를 풀어놓았다. 그중 하나를 재생시키자 1980년대 초반 잠자리 안경을 낀 채 개그 연기를 하고 있는 조용필의 모습이 나왔다. 보관이 잘된 덕분에 화질과 음색이 비교적 선명했다. 백씨는 “이때만 해도 오빠(조용필)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오던 시절”이라며 “어릴 적 음악을 좋아했던 아버지 덕택에 80년대 초반부터 조용필이 나오는 영상을 거의 빠짐없이 녹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일반 가정집에 널리 보급된 VHS비디오가 나오기 전 잠깐 나왔다 사라진 베타 방식의 비디오테이프까지 모두 70개가량의 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이들이 소장하거나 다른 회원들이 기증한 과거 영상은 대체로 베타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것이 많다. 이 영상을 복원하기 위해 전씨는 올해 초 서울풍물시장 골동품 가게들을 일일이 찾아다닌 끝에 1980년대 사라진 베타 방식 비디오 기기까지 구했다. 또 일본 옥션을 통해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의 영상과 음질을 최대한 살려 복원해 주는 기기도 추가로 구입했다. 전씨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비디오도 귀하던 시절인지라 이때의 영상들을 수집해 기록하는 것은 대중음악사 사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면서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 조용필의 다양한 활동이 담긴 귀한 영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복원한 영상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팬클럽 홈페이지(www.choyongpil.net)의 디지털 박물관에 모두 올리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조용필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CF 광고 등을 비롯해 조용필 정규 1집부터 19집까지 수록된 189곡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 올렸다. 전씨는 “이 영상들을 시간순으로 보면 조용필의 목소리 톤이나 창법, 의상, 머리스타일까지 변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면서 “특히 13집을 분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조용필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인생을 좀더 크게 보는 확장성을 지니고 있어 나이가 들수록 지난 노래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팬클럽에서 가장 절실하게 찾고 있는 영상은 1981년 8월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비치 페스티벌 공연이다. ‘고추잠자리’, ‘여와 남’, ‘미워 미워 미워’ 등이 수록된 3집 앨범을 처음 선보인 자리로 팬들 사이에서는 명품 공연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녹화 영상이 KBS ‘100분 쇼’로도 방영했으나 아무리 수소문해도 방송 영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영상을 찾으려고 일본 NHK방송국까지 다녀왔다는 전씨는 “혹시라도 당시 영상을 녹화한 사람이 있다면 꼭 연락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팬클럽인 ‘미지의세계’에서는 조용필 대백과사전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미지의세계’ 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순(49·여)씨는 팬클럽 운영진과 함께 2015년 11월에 조용필 대백과사전 ‘더 조용필’을 발간했다. 1000쪽 분량의 백과사전에는 조용필 출생에서부터 각종 앨범과 육필 악보, 어록, 공연 기록과 포스터, 노래연습실 목록까지 조용필의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 이씨는 “조용필 음악의 역사와 업적들은 정말 어마어마한데 제대로 정리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집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팬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50년 가까이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백과사전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팬들이 갖고 있던 스크랩과 메모글, 과거 신문, 잡지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데만 꼬박 2년 반이 걸렸다. 각 앨범과 콘서트에 대한 소개는 물론 리뷰도 정리했다. 그렇게 해서 팬들과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300권(비매품)을 찍어 60권가량을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기증했다.
그러나 처음 조용필 회사 사무실에 들고 갔을 땐 소속사 실장으로부터 “이런 걸 왜 만들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평소 조용필이 자신의 업적이나 기록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이씨는 “나중에는 잘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위안이 됐다”면서 “미숙한 부분이나 틀린 내용들을 보완해 50주년 기록까지 넣어 완성도 높은 개정판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