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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3·1운동 100주년의 새 동북아질서를 그려본다/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열린세상] 3·1운동 100주년의 새 동북아질서를 그려본다/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입력 2018-04-22 17:24
업데이트 2018-04-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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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의 해다. 필자가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생각한 것은 2년 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였다. 그날 더블린은 부활절 봉기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1916년 4월 24일 아일랜드인들은 800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무장봉기했고 영국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수백명이 죽고 주동자들은 즉각 처형됐다. 그러나 100주년 행사에는 영국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는 보이지 않았다. 주요 행사에는 영국대사도 참석했다.

우리 정부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2019년에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현재의 한일관계로 볼 때 침략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저급한 발언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인들로 인해 일제 침략의 잔혹성이 더욱 상기될 것 같다. 같은 해 5·4운동 100주년을 맞는 중국도 일본의 침략역사를 꾸짖을 것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남과 북이 합동으로 기념행사를 할 수도 있다. 결국 고립된 일본은 “한국이 중국과 놀아난다”고 미국에 고자질하고 미국은 중국 견제와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일 결속을 명분으로 한국을 압박할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에 일본뿐 아니라 중국, 미국, 북한이 얽히게 된다. 역사가 국제정치 문제화되는 사례다.

그렇다고 한국이 먼저 일본에 화해 제스처를 하고 아일랜드처럼 축제 분위기로 2019년을 보낼 수도 없다. 화해는 진정한 사과 뒤에 오는 결과라는 것이 국제적인 상식이다. 일본이 내년에 당장 과거사 문제를 독일처럼 깔끔하게 해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본과 개별 역사문제에 관한 정치적 타협도 무의미해졌다. 물론 역사학자들 간의 대화가 역사 화해를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과거 한시적인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외에는 역사학자들 간에 이렇다 할 역사포럼조차 없는 실정이다. 일본 사회의 특성상 역사학자들이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을 변화시키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국만이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다. 미국은 1854년 일본을 개방시킨 이후 일본과의 협력을 최우선시하는 동아시아 정책을 유지했다. 중국 중심의 오래된 아시아 역사는 고려된 적이 없다. 냉전시기에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 근대화모델을 내세우며 침략 역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었다. 요즘 중국은 일본의 역사 문제를 중국 패권의 도덕성을 내세우는 데 이용한다. 중국과 북한이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은 침략 책임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본의 역사관을 미국이 비호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무게를 무시해 온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여전히 19세기적 동북아 구도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일본으로 인해 역사의 채무자가 됐다.

지금 모두 북핵 문제나 남북, 북·미 정상회담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올해 6월 초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일 관계에도 탄력이 붙으면 일본의 식민지침략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이다. 모든 동북아 정세가 3·1절 100주년이라는 역사의 해와 궤를 같이하며 움직이고 있다. 내년에는 일본을 피고로 하는 역사 문제가 미·중 대립과 북핵 문제와 얽혀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기존 지혜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 시기에 미국이 일본의 역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미국은 할 수 있다- 정책의 도덕적 기반도 그만큼 강화될 것이고 한·미·일 협력관계도 더 탄탄해질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의 향배와 함께 동북아의 신질서 형성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것이다. 조만간 한국이 정부 간 외교 의제로서든 공공외교의 주제로든 미국에 일본의 역사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이유다.

3·1운동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민족사적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비폭력 평화적 성격은 오늘날 오히려 더 큰 국제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 3·1운동 100주년은 북핵 문제 해결을 넘어 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질서 형성 과정까지 우리가 운전자 역할을 확대할 기회를 제공한다. 100주년이라는 시대의 구획을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인 의미를 미리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18-04-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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