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동안 개봉한 영화만 총 1621편. 스크린에 걸리는 작품 편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방송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종편·케이블 등 매체의 다양화로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드라마 편수도 급증하고 있다. 관객, 시청자들의 눈에 들기가 더욱 치열해진 것. 이 때문에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제목 뽑기’는 흥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열쇠가 되기도 한다.
최근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지난 2월 개봉한 ‘월요일이 사라졌다’가 ‘제목 잘 뽑아 흥행한 작품’으로 회자된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넷플릭스에서만 보여졌던 이 영화는 국내에서 CGV 단독 개봉임에도 불구하고 100만명 가까이 관객을 모았다. ‘월요일이 사라졌다’의 원제는 ‘월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왓 해픈 투 먼데이)와 ‘일곱 자매들’(세븐 시스터스).
하지만 원제가 길고 발음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수입·배급·홍보사 모두 매달려 제목을 손질했다. 그 결과가 ‘월요일이 사라졌다’였다. 이 제목은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동시에 ‘월요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직장인들의 바람을 이뤄 주는 ‘쾌감’까지 담은 중의적 의미로 관심을 이끌어 냈다.
영화를 수입한 퍼스트런의 이소라 마케팅팀 과장은 “제목을 고심했을 당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월요일이 사라졌다’로 결정했다”며 “제목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이 영화 인지도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진짜 월요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콘텐츠들도 다수 올려 영화의 주 타깃층인 2030 관객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잘 뽑은 제목으로 꼽힌다. 남녀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밥 사준다’는 말의 중의적 뉘앙스와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예쁜 누나’에 대한 남성들의 환상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송중기·송혜교 커플 인터뷰에서 송중기가 송혜교에 대해 ‘밥 잘 사주는 좋은 누나’라고 얘기하다가 둘이 결혼하는 것을 보고 위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제목에 얽힌 뒷얘기를 소개했다. 드라마는 지난 14일 방송 6회 만에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전국 6.2%, 순간 최고 시청률 8.5%)를 차지했다. TV 화제성 지수로도 드라마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를 기록했다.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의 제목은 작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관객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첫 계기’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유치원생부터 노년층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쉽고 간결하면서도 강한 각인 효과를 주는 제목을 뽑기 위한 제작진, 홍보 담당자들의 고군분투는 치열하다.
●‘미스티’·‘꾼’ 등 강렬하고 짧은 제목 선호
최근 예상 밖의 흥행을 이룬 공포영화 ‘곤지암’(260만명), 지난해 인기를 끈 ‘1987’(723만명), ‘꾼’(401만명), ‘택시운전사’(1218만명)처럼 요즘에는 단번에 인지가 되도록 단순하고 짧은 단어로 이뤄진 제목들을 선호하는 추세다. 드라마에서도 입에 잘 붙으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한 단어의 제목을 짓는 경우가 많다. ‘라이브’(tvN), ‘마더’(tvN), ‘리턴’(SBS), ‘미스티’(JTBC) 등이 대표적이다. 수식어를 포함해 두 어절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가능한 한 5~6자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는 게 드라마 제작진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외화 제목도 과거에는 의역해 대폭 손질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원제 그대로 따르는 추세다. 2000년대나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등 길고 문학적인 제목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제목들을 직접 지은 영화 홍보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당시에는 문학성 있고 사색적인 분위기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제목을 짓는 게 트렌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체의 다양화, 전 세계 동시 개봉 등으로 관객들이 접하는 정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 직관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짧은 제목, 언어유희를 이용한 흥미로운 제목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외화 원제 그대로 살리는 추세
요즘은 방송 프로그램 제목이나 아이돌 그룹 음원 제목들이 영어로 지어진 것들이 많아 외화 제목을 굳이 우리말 제목으로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졌다는 의견도 있다. 강동영 롯데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지금 영화를 받아들이는 세대는 영어에 대한 이해력이 높고 대작들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홍보가 이뤄지고 뉴스가 쏟아지기 때문에 어설프게 제목을 바꾸면 되레 젊은 관객층의 반감이 크다”며 “요즘은 외화 제목을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기보다 원제에서 오는 인지도를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