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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 놓고 편히 죽을 수 있을까요”...발달장애 부모로 산다는 것

“우리 애 놓고 편히 죽을 수 있을까요”...발달장애 부모로 산다는 것

이하영 기자
입력 2018-04-19 22:42
업데이트 2018-04-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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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24시간 농성하는 부모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우리 아이, 저 없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차라리 같이 죽을까 생각까지 해요.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아이를 생각하며 웃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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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300여명이 19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앞길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날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님 발달장애인도 사회에서 구성원으로 살고 싶습니다”고 외쳤다. 일부 부모들은 지난 2일부터 18일째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300여명이 19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앞길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날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님 발달장애인도 사회에서 구성원으로 살고 싶습니다”고 외쳤다. 일부 부모들은 지난 2일부터 18일째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8일 청와대 인근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부둥켜안은 부모 20여명이 보도블록 위에 녹색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라는 손팻말을 든 채였다. 이들은 지난 2일부터 보름 넘게 간이 천막을 치고 24시간 릴레이 농성을 하고 있다. 매일 밤 5~6명의 부모는 천막 속 차가운 바닥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지난 2일부터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간이 천막을 치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천막 안 모습.
지난 2일부터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간이 천막을 치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천막 안 모습.
농성 중 서울신문과 만난 홍인화(여·가명)씨는 전북 전주에서 지적장애 1급 자녀를 키우고 있다. 37세 성인 자녀지만 지능은 유치원생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홍씨는 자녀 이발에서부터 뒷물을 받아 내는 것까지 오롯이 홀로 감당한다. 가장 힘든 점을 묻자 “내가 죽을 때,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라고 답했다. 홍씨는 “사실 지난해 딸과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그러곤 “지난해 6월 응급실에 누워 딸과 위세척을 받으면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끝까지 지켜 줘야지 굳게 다짐했다”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곁에 있던 자녀는 우는 엄마를 보곤 그 가슴에 마구 얼굴을 비벼 댔다.

홍씨의 이야기를 함께 듣던 다른 부모들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다들 극단적인 선택을 두고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라고 입을 뗐다. 자녀를 돌보기 싫다거나 미워서가 아니다. 부모가 죽고 나면 자녀가 살 방도가 없어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단다. 부모들은 “내가 죽을 때 아이의 생사를 걱정하지 않게끔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국가가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 성장하지 못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말한다. 영화 ‘말아톤’이나 ‘맨발의 기봉이’의 주인공이 바로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이 성인이 돼 의무 교육이 끝나면 지능은 여전히 아이에 머물러 있더라도 갈 곳은 사라진다. 많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집에서 TV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자폐성 장애인의 82.9%(지적장애인 65.3%)는 부모의 돌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적장애인의 4.5%, 자폐성 장애인의 1.5%만이 홀로 일상 생활이 가능했다.

2014년 4월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자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은 크게 안도했다. 그러나 법률만 생겼을 뿐 갈 길이 멀다. 중증장애인 직업훈련 시설, 낮 활동 지원 제도 등이 추진돼야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시설에서만 작은 규모의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국가 수준의 지원 종합 계획을 수립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최소한 ‘주간 활동 서비스’를 제도화해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달라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19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런 내용이 담긴 호소문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글 사진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8-04-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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